연극성과 진정성, 얼핏 보면 서로의 반대말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극성’은 현실과 유리되거나 거짓됨을 의미하는 반면, ‘진정성’은 진짜 혹은 진실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양극단의 이념을 자신의 현실 속에서, 생활양식 속에서 하나로 융통하여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이순신, 도끼를 둔 망나니 앞에서 자신의 짧은 목을 조심히 내리쳐달라던 토마스 모어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죽음에 이르러 보여준 단편적인 사건으로 그들의 삶을 예단할 수는 없다. 그들의 진정한 삶은 마지막 순간에까지 이른 지난한 연극으로 완성되었고, 일관된 연극적 실천은 그들의 온 생애를 반추하는 빛이 되었다. 위대한 죽음이 현시하는 것은 이런 완전한 삶이다.
연극적인 삶을 실천해보는 하나의 예로 ‘라디오 극’을 해보았다. 이 사람, 저 사람의 가면을 쓰고 목소리 톤과 세기를 바꾸며 타자가 되어보는 연습이다. 쑥스러움은 잠시 뿐, 목소리를 바꾸며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유대교 사제, 가야파가 되어 예수에게 죄를 묻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예수가 되어 그의 침묵에 동참해 보기도 했다.
끊임없이 이동하면서도 신념을 잃지 않은 주체가 자신을 옥죄던 그 형식을 넘어 자기화하는 지경, 궁극의 연극적 실천이 상도해야 할 자기 구제의 길은 내 이웃을 향한 동시 구제의 길이기도 하다. 옆집에 사는 예수도 알아보지 못하는 세속이지만, 이런 세속의 야속함마저도 비워내고 내 의도의 밖으로 나오려는 근기있는 연극적 실천이야말로 진정으로 타자를 돕는 길이자 공부의 본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