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책의 원제목은 '사랑, 사치와 자본주의(Liebe, Luxus und Kapitalismus)'이다...왜냐하면 이 책의 근본사상은 유럽사회가 십자군 전쟁 이후 겪은 변화에 의해서 남녀간의 관계가 바뀌었으며, 또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지배계급의 생활양식 전체도 새롭게 형성되었고, 이 새로운 형성이 근대적인 경제체제의 형성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중세 유럽은 남녀간의 사랑의 현상도 신에 대한 봉사에 예속시켰다. 즉 세속적 사랑의 감정이 종교적 祝聖을 받아 초세속적인 목적을 향해 방향이 돌려졌거나('마리아숭배'의 경우처럼), 아니면 제도적으로 구속되었고, 교회가 축성하지 않은 제도는 모두 죄(罪)의 낙인이 찍혔다.
3. 사랑에 대한 다른 견해는 연가(戀歌, Minnesang)의 시대, 즉 모든 점에서 생활양식의 세속화가 시작된 11세기 이후의 일이다...13세기를 지나면서 이태리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숭배가 자리잡은 유일한 곳이었으며, 연가와 그 사춘기적 에로티즘은 근대적 사랑의 시작을 고지한다. 14세기 말에 이르러 여성의 나체가 사회적으로 드러났고 그 아름다움이 발견되었으며, 감각적 사랑의 매력이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태리의 사랑의 문화가 프랑스로 유입되면서 동시에 여성숭배의 풍조도 함께 자리를 잡는다. 17~18세기에는 프랑스가 사랑의 대학교(die hohe Schule der Liebe)가 되어 여태껏 그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4. 중세 후기의 창녀 계층은 차츰 여인들의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490년 인구 10만 명 미만의 로마에서 6800명의 창녀가 활동했으며, 이후 런던이나 파리는 이들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아내 외에 우아한 여인들을 두는 풍습이 일반화했고, 고급창녀들의 습성은 여인들의 문화(청결, 복색 등)에 다대한 영향을 행사했다. 17~8세기 살롱(salon) 문화조차 15세기 이태리 고급창녀들의 재기발랄한 모임의 속편으로 보인다.
5. '애첩경제(Maistressenwirtschaft)는 군주지배의 필연적인 부수현상이다. 궁정사회는 군주들의 공인된 情婦들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에 있었으며, 당시는 혼외의 애정에 의해 초래되는 비용이 재산가들의 생활비 중에서 최대의 액수를 점하고 있었다. 사치의 기조는 이런 생활을 하고 있던 궁정이나 귀족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14~15세기의 이태리 제후들이 여자들만을 위해 살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는 새 애인이 생길 때마다 사치의 홍수가 벌어졌다. 애첩들을 거느리는 게 18세기 구라파의 상류사회에서는 일반적이었다...문제는 군주와 제후, 그리고 귀족들의 애첩들과 더불어 생긴 사치의 현상이 우리 시대의 외적 생활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사실을 밝히는 데 있다.
6. 17~18세기에는 사람들이 사치가 발생 중인 자본주의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점을 널리 인정했다. 당시 경제적 진보의 지지자들은 대체로 사치의 옹호자였던 것이다. 나중에 루소주의자들 등 반자본주의자들의 반대운동이 생기기도 했지만, 대개 사치의 시장형성력에 공감하였다. 특히 상품거래를 대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치상품의 거래에 의한 것이었다.
7. 질적인 사치는 문화의 세련화(Verfeinerung)와 관련된다...감각을 자극하는 수단을 세련되게 하고, 그 종류를 늘리고 싶은 욕망은 모두 성생활에 기반하고 있었다. 사치의 전개에서 첫째가는 충동은 성애의 감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富가 축적되고 성생활이 자유롭고 대담하게 표현되는 곳이면 사치도 함께 유행하였다. 사치가 개인적, 물질적 사치로 존재하려면 감각적 향락이 활기를 띠어야 하며, 특히 에로티시즘이 생활양식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