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이 예쁘고 세련된 커피숍이 많았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번화가 큰 길을 가든, 골목골목 작은 길을 가든 어디든 어여쁜 카페가 향긋한 분위기를 내며 들어서 있다. 향긋한 겉모습과 같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페의 내부 장식 또한 살뜰히 꾸며져있다. 가게 마다 사장님의 취향에 따라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대체로 예쁘다는 식의 감상이 튀어나온다. 손님을 맞는 주인 또한 정형화된 응대법이라도 있는 양 모두 표준어를 구사하며 비슷하게 친절한 표정으로(적당한 거리감으로) 주문을 받는다.
오늘은 몇일전부터 상태가 좋지 않던 몸을 끌고 병원을 향하였다. 병원의 점심시간을 피하려 부러 2시쯤 도착하게끔 간것이 무색하게 2시 30분은 되어야 점심시간이 끝난다고 했다. 잠시 난감하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인지라 가까운 커피숍에라도 가있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며, 지근거리에 있던 전형적인 큰 매장인 투ㅇ 커피숍을 지나, 요즘 핫하다는 젊은 감각의 구ㅇ 매장을 옆으로 하고는, 늘 눈에 밟히던 동네의 작은 커피숍을 향하였다. 눈에 밟혔던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저런 후미진 곳에서 과연 장사가 될까?라는 의문에서 였다. '얼마안가 문 닫겠네'라고 생각하면서도 문 닫기전에 한 번은 팔아줘야지 했던 곳인데, 의외로 몇 달이 지나도록 문을 닫지 않았고 가정의 달 이벤트니 할인 행사니 하며 홍보물을 붙여 놓았던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상과 다르게 손님이 많았다. 좁은 매장 안의 테이블이 옹기종기 4개 였는데, 두 개의 테이블에 사람들이 각 2명씩 앉아 있었고 내가 들어가니 세 테이블, 그리고 테이크아웃 하러 온 손님이 둘 있었으니 이정도면 꽤 괜찮은데? 싶었다. 그런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부터 온몸으로 느껴진 이질감이 있었다. 이 글을 쓴 이유이기도 한 그 이질감은 뭔가 어설픈 매장의 배치나 구색에서 부터 오는 것이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무엇인지 정확히 알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추정하건데 50대 후반쯤 아니면 60대 초반쯤 되어 보이시는 여사장님께서,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던 나를 부르는 데서부터 '이게 뭘까?'하고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먼저 여사장님은 커피를 기다리고 있던 내게 "아가씨~ 커피좀 가져가주세요!"하는 것이었다. 아가씨라니. 내가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아줌마라는 것을 떠나 언젠가부터 주변에서 들을 수 없어져 어색한 단어였다.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은 곰곰 생각해 보시길, 과연 아가씨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언제 인지. 그리고나서 커피를 가지러 갔을 때 다시 한번 '이건 뭘까?'하는 인심 혹은 어설픔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카페에서 흔히 쓰이는 나무 트레이 위에 두 조각의 사과가 껍질을 조금씩 붙여두고는 작은 사각 접시위에 나란히 있었고, 한쪽엔 커피빵 세 개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라떼를 담을 법한 넓은 커피잔엔 아메리카노가 검은 물결을 출렁이며 넘치고 있었다. '아이고야~! 커피를 너무 많이 담았네' 하시는 사장님의 말이 욍욍거리며 귀곁을 지나갔다. 저 넓은 커피잔에 가득 담긴 아메리카노란 조금만 흔들려도 넘치고도 남았던 것이다.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사과 두 조각, 커피빵 3개, 넓적한 컵에 담긴 아메리카노가 놓인 트레이를 들고 내 자리로 돌아와 요즘 공부 중인 일본어 책을 폈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에 열중하려던 찰라, 가게에 계신 손님이 지인분이셨던지 앞테이블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본격적으로 낯섦의 실체가 튀어나왔다. 여사장님은 무려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시며 지인분들과 사적 대화를 나누고 계셨던 것이다. 충청도 한 복판에 살며 들어보기 힘든 경상도 말씨가 생경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내가 낯섦을 느낀 이유는 여사장님의 태도 였는데, 그것은 요즘같은 서비스제공-소비자 공간인 가게 혹은 매장안에서 그 관계를 비트는 정서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나이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어보이는 사장님의 지인분들은 가게 오픈 소식을 듣고도 이제사 방문하신것을 미안해 하시는 말을 시작으로 서로 아팠던 이야기와 주문해서 제공된 상품(커피빵)의 값을 주네 안받네하는 식의 대화를 하셨다. 대화를 하던 중에도 밖에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셨는지 달려가 굳이 붙잡아서는 무언가를 챙겨주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더니 그 여사장님은 급기야 '아가씨~ 잠깐 저 나갔다올께요'를 하시곤 지인들 배웅을 나가셔서 30분은 더 지난 후에야 가게로 돌아오셨다. 요즘같은 시대, 이름 모를 아가씨에게 가게를 맡기고 지인배웅을 다녀오신 사장님은 들어오시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가씨 손님 없었어요??' 하며 물으셨다. 그 순간 마치,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이 2020년 커피숍인지 1990년대 그래도 아직은 순박했던 그 시절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마음을 바꿔먹고 오늘 영업하신 돈을 몽땅 털어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이리 안오시나 했던 생각이 무색하게 참 걱정없는 모습이셨다. 사장님이 오시자마자 병원의 점심시간이 끝나고도 한 참 지난 시간이라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기 전 부담스럽게 넓은 커피잔 속의 아메리카노를 한 입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 숨을 한 번 쉬고는 사장님께서 남겨진 커피를 보고 마음 상하실 것이 걱정되어 꿀꺽꿀꺽 사발 수준의 커피잔을 비웠다.
가게를 나오며, 내가 과연 이 낯선 (타임머신 같은)장소를 다시 올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사장님이 만들어 낸 장소라기엔 여사장님 조차 너무 '요즘' 과 같지 않은 '이질적 장소'. 선선하니 화창하여 기분좋던 날씨가 돌아오는 길엔 비까지 뿌려주니 참, 여러모로 의문스런 외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