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신독(愼獨)과 상제(上帝)

by 冠赫 posted Dec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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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신독.jpg



君子 處暗室之中 戰戰栗栗 不敢爲惡 (군자 처암실지중 전전율율 불감위악)

군자가 어두운 방에 가운데 있을 때도 두려워하여 감히 악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知有其上帝臨女也 (지유기상제임여야)

상제께서 임하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不信降監者, 必無以愼其獨矣 (불신강감자 필무이신기독의)

(하늘에서) 내려와 감시하는 이를 믿지 못하는 자, 필시 그 홀로 있음에 삼감이 없을 것이다.

 

中庸自箴(중용자잠)』   茶山 丁若鏞(다산 정약용)

 


유교 윤리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신독(愼獨)의 전제조건으로 다산은 상제(上帝)라는 개념을 끌어왔다. 그가 상제(上帝) 혹은 강감(降監)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천주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겠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독(愼獨)에 대한 기존 해석을 새롭게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산은 로 보는(天卽理) 전통적 주자 성리학적 관점을 벗어나 천()을 이신론적(理神論的) 존재가 아닌 인격신적(人格神的) 특성을 띄고 있는 존재(上帝)로 보았다. 홀로 있을 때 조신하게 삼가는 유교의 신독(愼獨) 윤리가 서양의 기독교의 윤리(“신 앞에 선 단독자”)와 상통되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다. 다산의 신독(愼獨)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통해 서학(西學)을 포함한 다양한 사상을 편견 없이 대했던 그의 개방적인 학문적 태도와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성을 담지하고 있는 그의 사상의 일면(一面)을 보게 된다.

 

다산이 원시유가의 상제(上帝) 관념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인간을 보다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윤리의식을 가진 존재로 재규정하는 토대로 작용했다. 다산에게 인간 존재는 기존 주자 성리학의 성즉리(性卽理)가 함의하고 있는 ()에 지배를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다산은 인간을 상제(上帝)의 주재(主宰) 아래, 개인의 실존적인 수양을 통해 자신만의 성()을 주체적으로 구성해나갈 수 있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보고자 했다. 인간은 자신의 일상에서 감찰하시는(上帝)을 항상 의식함으로써 홀로 삼감(愼獨)을 실천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다산은 전통적인 주자 성리학의 성즉리(性卽理) 관점과는 다르게 인간 존재에게 사물,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격(의식을 가진 존재)을 부여하였고,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주어진 단서(四端)를 계발하고 공부를 함으로써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신(上帝)의 섭리와 인간의 실존적 노력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조화시키고자 한 다산의 통섭이 돋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