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들과 대적해서 그 가시들을 삼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인식론이나 대화의 문제, 심지어 관계의 문제도 아니다. 그 속이 하아얗게 변할 정도로 속을 비우는 허실생백(虛室生白)의 삶이, 차분한 집중의 삶이 가능한가를 묻는 일이다. 비울 때에야 비로소 생기는 하얀 것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다. (<집중과 영혼>, 5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