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인 유재의 신간, <잊혀진 비평> 출간

by 孰定而匪 posted Aug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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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비평---목업.jpg





 (서문 )

내가 읽은 플라톤이 공인된 비평사 속의 그와는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 속에 기미(機微)는 흔적(痕迹)이 되었다.

그는 하나의 형상이 아니라 이중 접합지였다그로 인하여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나는 비평사에서 잊혀진 하나의 성좌(星座)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도 명백하게그러나 연약하게 이어져 온 별들의 자리였다

나는 그것에 응답하지 않고는 어찌할 수 없었다

내가 여기에서 쓰고자 한 것은 그 응답이다.”






*

숙인 유재의 이 출간되었습니다.

<잊혀진 비평>이 출간의 형식을 띄고 세상에 나오도록 돕는 일을 하며 알게 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 한자의 책임’, 혹은 존재자로서 게시揭示될 말에 대한 존재의 떨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녀 유재는 그 떨림을 묵묵한 입매의 형상으로서 기꺼이 지탱하고 마주하며자기 존재의 형식(정신)을 알려 왔습니다

지탱하는 정신’, 제가 만난 저자는 그러했습니다

많은 독자들 또한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 내용의 알곡을 취하고 유재라는 정신과 조우하는 행운을 얻기를 바랍니다.

<잊혀진 비평>의 출간을 깊이 깊이 축하합니다.



** 

(책 소개)

<잊혀진 비평>은 '의미의 비평사’ 속에서, '잊혀진 비평'의 길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해 나아갑니다저자에 따르면최초의 비평가였던 플라톤에 의해 두 비평사가 나뉘어지며 우리는 쉽고 유용한 의미의 비평사’ 속에 남겨지게 됩니다최초의 비평이 문학을 맞닥뜨렸을 때비평은 신들림 혹은 광기의 상태였을 것인데, ‘이를 어떻게 다루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비평의 길을 보아낸 것입니다. <잊혀진 비평>은 모두가 체계내의 의미의 비평사에 익숙해져 다른 길을 보는 눈이 사라져가는 시대에정신의 외현으로부터 체계의 내부를 두드립니다.

또한 읽는 것만으로도읽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내용과 형식이 어우러진 글쓰기가 인상적입니다내용만을 따라가도내용을 주안에 두지 않고문장 읽기만을 따라가더라도 우리 정신의 구조를 건드려 재배치하게 되는 저자의 천재가 빛을 발합니다.



(서론 )

비평은 유령을 보고도 미치지 않음으로써, 광기로부터 자신을 지탱함으로써, 자신의 대상인 유령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 실로 비평은 있지도, 있지 않지도 않은 무엇을, 자신이 보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그래서 무언가에 관하여말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임의 성립은 불가능한 무언가를 말하면서 탄생한 것이다.”(15)

 

(국가의 시인 추방)

시인의 추방과 비평의 죽음이 같은 순간에 일어났기에, 나는 플라톤이 시를 추방시키면서 동시에 내버린 자기 자신의 부분, 그 시에 붙들린 자기의 논리를 비평의 시신(屍身)으로 건져낼 수 있었다. 그것은 시란 형성하는 것임을, 그것도 마치 복제시키듯 자신의 상태에로 사로잡혀 들어가게끔 하는 '낙인찍은 붙들음'임을 주장했던, 바로 그 부분이다.”(78)

 

(칸트 인간학과 그 현대과학적 귀결점의 탐색: 자기조직화 )

광기가 규정되는 곳은 따로 있다. 광기란 지성이 맺는 표상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며, 감성 직관의 표상에 생긴 문제를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착각이거나 기만이거나, 매혹되는 것이거나 현혹되는 것인 가상들이지 광기가 아니다. 그래서 칸트는 감관들을 탄핵하는 것에 대한 감성의 변호를 수행한다.”(162)

 

 (데카르트의 주체론과 시뮬라크르 )

 우리 사회의 인간들은 환각을 체험주의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마침내 도핑주의로 안착했는데, 이는 시뮬라시옹과는 다르게 자아상태를 안전하게 극한화한 것임이 밝혀질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예견과 달리 시뮬라시옹은 허무주의로 미끄러지지 않았다.

시뮬라시옹은 긍정적 함입을 겪을 예정이다.”(253)

 

('의도의 죽음'으로 유령을 완수하는 주체)

햄릿이란 유일하게 유령이 하는 자다, 다시 말해 유령의 말을 들을수 있으며 유령과 대화하는 자다. 햄릿의 상속은 무엇보다 유령의 언어를 알아보는 데에서 성립한다. 사무쳐 있고 무언가를 요구하며 약속하는 슬픈 존재, 시간도 갖고 있지 않고 몸이라는 비밀을 장소로 할 수밖에 없는 이 떠도는 존재의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두말할 것 없이 유령의 의도를 추측해내어 그의 원한을 풀고 복수를 완수함으로써 정의를 이룰 것인가?”(326)

 

 (결론 )

주체만이 유령을 볼 수 있다: 주체만이 유령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주체만이 유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유령이 될 수 없는 자는 유령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 왜 주체만이 유령이 될 수 있는가? 그건 인간이 균형상태를 유지하려 한다면 주체는 중간상태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본질과 실존 사이에 맺힌 존재라면, 주체는 본질과 실존의 어긋남 속에 몸부림치는 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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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판매 경로가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주의 초 즈음에 가능해질 듯 싶습니다.

판매 경로가 열리는 데로 링크를 첨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