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회 속속 복습 문장 모음

by 유재 posted Aug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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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회 속속 복습 문장 모음

 

1. 연이정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왜 <우회> 할 수 밖에 없는가?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이고 타자와 관계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우회 할 수 밖에 없다.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과거 - 현재 - 미래를 통으로 볼 수 없고, 모든 것은 변하고 고정된 것은 없으므로 절대적인 관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인간은 홀로 존재 할 수 없고, 타자와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회적일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언어와 상징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것은 이미 해석(우회)되어 우리에게 온다.

 

2. 상인

 

마음이 크려면 몸이 장소를 만들어 줘야 한다,

  

3. 유ㅅㅈ

 

'장작을 때어 방을 덥힌 후 방이 완전히 식기 전에 다시 불을 때야 쉽게 데워진다. 다 식은 방을 다시 데우려면 불을 오래 때야 한다.' 라고 하신 말씀은 공부에도 운동에도 인간 관계에도 두루 통용된다. 무엇이든 맥이 끊어지면 다시 시작하거나 이전과 같은 상태로의 복귀가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무의식이 꺼지지 않도록, 근육이 완전히 살로 돌아가지 않도록 공부도 운동도 반복하고 오래하여 몸과 정신의 방을 식히지 않아야 한다.

 

4. 김ㅅㅇ

자기 생활에서는 이기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지는 삶을 살아라.

강연에서 반복되는 선생님의 이 말씀을 생활의 화두로 정하고 집중해서 실천해보고자 합니다.

 

5. 단빈

 

"우리가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새로운 언어의 꽃을 가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의 꽃을 피우는 정원을 가꾸는 것이 아닐까"

 

6. 독하

 

선생님께서 이번 속속에서 사유는 끝(뿌리)까지 가는 것이다'라고 몇 차례 말씀하셨는데 '사무친다는 것은 깊이 스며든다는 것'이라는 말씀과 겹침을 이뤘다. 공부를 하다 보면 몸(정신)의 변화에 맞물려 선생님의 개념이나 문장이 사무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것을 화두삼아 붙안고 글쓰기를 매개로 끝까지 가보는 것, 그것이 내가 공부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7. 김ㅁㅇ

 

숙인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생각했다. 숙인들은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책을 읽는 등 자신의 시간을 '공부'하는데 혹은 '공부'하기 알맞은 무언가를 만드는데 사용한다

나는 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8. 여일


8. 1. 무의식은 적당히 데워져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주체는 의식이지만, 뒷배는 무의식(귀신/하느님)이다. 이 뒷배가 나를 두텁게 한다는 말씀이 힘있게 다가온다.

8. 2.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핵심 동력이 고립된 개인들의 절망과 증오를 기반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와 테러임을 강조한다. 전 정권의 계엄사태로 드러난 엘리트의 민낯을 어느 학자는 내면화된 후기파시즘이라 진단한다. 선생님은 파시즘의 주체는 외로움으로 무장한 대중이라고 말하였다. 외로움과 파시스트가 한쌍이라니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외로움과 파시스트 사이에 무사유가 어깨동무하고 있구나!

 

9. 조ㅇㄴ


숙비가 자기소개 시간에 생활 중 집중의 방식으로 서예를 추가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에 응하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뉴턴은 거의 히끼꼬모리에 가까웠다. 마음자리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것이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공부는 의식이 하는 것이지만 무의식이 데워져 있어야 한다. 주체는 의식이지만 뒷배는 무의식이다. 자기 목적에 맞는 방을 만들어서 몸의 반복, 정신의 반복을 통해 장소화해라. 그래서 나보다 더 큰 나가 감화해서 돕도록 해라.

 

10. 임ㅁㅇ


한문 강독 시간, 里仁편의, 子曰, "苟志於人矣, 無惡也"여백개념을 설명하시며, 선생님은 시몬 베유(Simone Weir)의 말을 인용하셨다. "사람이 악을 죽이는 데는 집중밖에 없다. 산란해지면 악이 생성된다"(Evil, when we are in its power, is not felt as evil but as a necessity, or even as a duty. Only attention can kill it)-Simone Weir. 집중은 그림 그리기 좋은 하얀 상태() , ‘의 상태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인데, 자기의 집중을 통해 그 힘으로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집중하거나 적경하거나, 자기 마음에 한 자리를 얻어가는 것도, 공부하고 집중하는 양대 진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셨다.

상인은 전에는 몰랐던 것을 하나씩 벗긴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남 탓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참 남 탓하는 발견을 잘 한다. 내가 요상한 재주를 지녔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잘못된 것이고 나 하는 것, 이런 것을 알게 되듯, 나 자신을 좀 더 알게 되면, 좀 더 따뜻해질 것 같다.”라며 자신의 자득을 말했는데, 이런 상인의 말에 연결해서 선생님은, '’슬금하다'라는 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어리눅다'라는 태도와 닮아있다고 하셨다. 나이 먹을수록 이런 태도는 중요한데, 슬금하다는, 첫째 지혜롭다는 말이고, 둘째로는 남을 잘 용서한다는 뜻을 가진다고 하셨다. 결국, 보이는 것이 많지만/많아도, ‘보이는 것을 잘 참아낸다라는 중요한 태도라고 말이다.

는길은 자기소개 중, 선생님의 책 속에 등장하는 한끝이라는 개념을 말했는데, 이에 관하여 선생님은 "살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근육"을 말씀하셨다. “공부도 그런 것입니다. 근육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의 유지를 위한 노력이 장소화이고, 장소를 이루면서 사람이 크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만들려고 하는데, 고추 말리는 방에 넣으면 그게 되겠습니까, 거기에 맞는 장소에 넣어야지요. 공부를 통해 한끝을 보려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그렇게 장소화 시켜야 합니다. 근육이 지속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렌트도 사유도 그 자체가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뿌리까지 하는 것이 사유인데, 자기를 키우려고 하면, 어떤 마음의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통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방에서 정신적인 근육 운동을 하는 것 그것이 공부입니다.” 또 이 말씀은 수업시간에도 이어졌다. “전에 장작을 때는 한옥에 살았었는데, 방이 식기 전에 불을 때야 합니다. 한 번 식어버리면 다시 덮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적정한 정도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무의식이 활성화되어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이 데워져 있어야. 무의식의 감화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부의 주체는 의식이지만, 내 뒷배는 무의식(귀신/하나님)이니까. 이 뒷배가 나를 두텁게 지켜줘야 합니다. 그리고, 엉뚱한 방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을 유념하세요. 몸의 반복이나 정신적인 반복이 공부의 기본인데, 그때 필요한 것이 장소화이니, 마음의 장소화는 약간 덥혀 놓는 것, ‘activating’입니다.”

 

11. 아무


집중한다는 것은 한 상태 (그림 그리기 전 하얀 상태)이고 사람의 한 형태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인데,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잘 못하게 된다. 자기의 입장이 분명해야 혹은 하얘야 상대가 잘 보인다. 집중하거나 적경 하면서 자기 마음의 소(하얀)한 자리를 얻는 것도 사실 공부의 중요한 점이다.

우리 공부도 어울려 하는 공부이다. 지혜로워지는 방식이 많겠지만 그중에 어떤 근본적인 깨침이 필요한 대목은 빚진다는 사실에 대한 깨침이다. 이것은 인연생기를 깨우친 부처님의 깨우침과 다 연결된다. 과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을 해야 되고, 그 빚짐에 대한 그 뿌리 깊은 체험이 있어야 된다.

 

12. 지린


시간적인 존재이며,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인 우리는, 이 두 가지 조건 때문에 직접 진리를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우회만이 길이요 다른 길은 없다고 강의해 주셨는데, 시간이 흐르고 다시, 다른 방식으로 진리를 물으셨다. ,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예수란 사람이 복음이다. 신이 사람이 되어 온 복음이다. 내용이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진리를 볼 수 없겠는가? , 어떤 사건, 형식이 진리가 될 수 있겠는가?

 

13. 는길


한나 아렌트는 자기의 사상은 임시적이며, 그 시대에 박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렌트 사상의 특징으로 <denken ohne geländer 난간 없는 사유>라는 어휘를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기댈 데를 두지 않는 자발적, 독자적인 사유를 말합니다.

또 하나 아렌트에게 사유, 시대에 임하는 시의성 즉 시대의 고통으로부터 출발하여 중단 없이 뿌리까지 내려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뿌리를 모르는 사유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요.

덧붙여, 선생님께서는 생각이 어떻게 사상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하시며, 좋은 발효실에서 생각이 오래 지속되어야 생각이 아닌 사상이 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음의 장소화>를 알려주셨는데, 공부하는 이의 생활을 그렇게 꾸려나가기로 하며, 배운 내용을 기록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살이 아닌 근육의 상태를 유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를 통해서 한끝을 보려는 사람은 공부가 진행되는 자기 마음을 장소화 시켜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정신적인 근육 운동이 지속되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한나 아렌트는 뿌리까지 가는 것이 사유라고 했는데, 사람이 자기를 키우려고 하면 어떤 마음의 방을 만들어야 해요. 그 마음의 방이 없는 사람은 오래 못합니다.” 

한옥에 살아본 적이 있는데 장작을 때면 일박 이일이면 식습니다. 식기 전에 장작을 피우면 훨씬 빠르게 따듯해집니다. 적정한 상태로 마음이 데워져 있는 게 마음의 장소화입니다. 달리 말하면 무의식의 활성화이기도 하죠. 공부는 의식이 하지만 무의식이 데워져 있어야 무의식의 감화를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방을 식히지 말아야 하고, 오래 해야 하고, 자기 목적에 맞는 방을 만들어야 합니다몸의 반복이나 정신적인 반복을 주는 것이 정신의 기본이며 장소화입니다. 약간 데워 놓는 것. 그래야 하나님, 귀신(), 신명, 무의식이... 도탑게 나를 감화시키며 훨씬 좋은 것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협력해야 공부가 수월합니다.”

 

14. 숙비

 

우리가 진리를 어떤 문장의 내용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사건, 행위, 형식에도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기독교의 복음관에 기대해서, 반드시 어떤 명제가 진리가 아니고 어떤 사건, 사람, 행위, 형식이 진리가 된다면 어떤 사태인 것인가?

 

15. 유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적정한 상태로 마음이 되어 있는 것이 마음의 장소화인 것입니다. 공부는 의식이 하지만, 무의식이 데워져 있어야 마음이 감화를 받을 수 있어요. 이를 위해서 세 가지 할 것이 있습니다: 1) 오래해야 하고, 2) 방을 식히지 말아야 하고, 3) 자기의 방을 만들어야 합니다. (포도주 만드는 방과 고추 말리는 방이 다르므로, 엉뚱한 방을 만들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