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회 속속 복습 문장 모음

by 유재 posted Sep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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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회 속속 복습 문장 모음

 

1. 유ㅅ진

1.1. 공자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알려질 수 있도록 하라'고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를 알아주는 것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가 없으니 동물이나 사물과 신뢰의 관계를 맺는 것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결국 화살은 또 나를 향했다. 나는 나 자신과 신뢰의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묻게 되었고, 사소하지만 작은 것들을 지키며 자신에게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1.2. 'wakeful rest''깨어 있지만 조용히 쉬고 있는 상태'default mode가 되는 것이다. 내게 요긴할 것 같아 단중과 적경에 더해 wakeful rest도 시간을 정해 해보기로 하였다.

 

2. 연이정

안보고 싶은데 계속 본다는 것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무의식)가 촉발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기와 자기를 돕지 않는 자아가 그것을 계속 찾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통합 되지 않은 채 나를 소외시키는 일종의 자아 분열 상황을 일으킨 것이다. 훌륭한 사람은 통합된 자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의 공부는 자신의 가능성, 재능, 희망이 자기를 돕게 하는 지혜를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통합된 자아(존재)가될 있도록, 조심하며 '알면서 모른체'하고, 집중과 명상을 일상화하며, 평소 어떤 우연성이 계기가 되어 나를 도울 수 있도록 무의식을 열어두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3. 숙비

작은 가능성을 한 번 봤으면 됐고, 다시 안 와도 괜찮고. 어떤 사람의 가능성은 가능성의 맥락에서 이미 전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빛나는 순간들이 우리 속에 생긴다면 가능성의 중심의 맥락을 통해 인류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4. 독하

선생님께서 강의중에 말씀하신 송유(誦惟)’, ‘재미난 골에 범 난다’, ‘감사와 존재가 메타화되며 공통적으로 잡힌 것이 타자성과 시간성이다. 이를 매개하지 않고서는 이해에도, 사상에도 이르지 못한다. 고전을 암송하고 사유하는 일, 자신의 언어 속에 외부와 응해 온 역사가 얽혀 든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타자에게 빚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아라는 참회를 거쳐 존재론적 감사에 이르지 않고서는 이해와 사상으로 가는 좁은문은 쉬 열리지 않는다.

 

5. 지린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曾子曰唯子出門人問曰何謂也曾子曰夫子之道忠恕而已矣를 공부할 때, 는 같은 말이라고 하셨는데, 지난 서울 강연에서 들었던 긴 생각성화(聖化)의 길이 떠올랐습니다. 충실한 긴 생각만이, 신의 몫이었던 용서의 자리까지 一以貫之 할 수 있는 거로구나 하였습니다.

 

6. 상인

낭독의 요령이나 낭독 텍스트 선정 기준 등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그런 중에 "소리에는 글에도, 말에도 없는 그 무엇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며 '되기'의 한 수단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말씀을 듣고서 떠오른 생각. 글을 뜻이 아닌 소리로 읽으면 될까?


7. 김수연

자기소개시간에 아무는 좁은 산책로에서 양보하지 않고 때로는 무례하게 지나치는 산책자들과의 빈번한 조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에 응해 '애초에 마음이 안 맺히는 상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특히 '애초에'라는 부사에 집중을 해서 '애초에' 어떤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나의 무의식을 멍하게 예열해놓을 수 있는 생활의 공부에 대해 오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8. 여일

8.1. 수업 시작하기 전, 차담을 하는 중에 선생님께서 흥미로운 꿈을 말씀하였다. 녹슨 가위를 한 노인에게 맡겼는데, 노인은 이 가위를 간디라 하며 간디 간디 갈아야한디~갈아야한디~” 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멋진 가위를 얻었다는 꿈이다. 이 꿈을 들은 우리는 어떤 가능성을 상상하며 모두 기뻐했다.

8.2. 첫 또다공의 주제는 판소리이다. 판소리는 우리 전통의 소리이고 다른 음악에 비해 독특한 위상을 지닌다. 선생님은 판소리는 글도 아니요, 말도 아니라고 하였다. 알기의 차원보다는 되기의 관점에서 판소리를 이해해보자는 의견을 주셨다. 판소리가 마음의 지형을,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 연극적 수행으로 이해되기를 바라셨다.

 

9. 아무

(가능성의 중심) 어떤 사람이 만든 가능성은 보편성을 가진다.

어떤 다른 정신의 존재는, 그런 정신이 무엇을 관찰하거나 혹은 개입하거나 혹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주위가 바뀔 수 있다. 인류 전체에게 향하는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모여 하는 공부에 그런 식의 희망을 얹어 생각을 해보자.

우리의 실력이나 정성을 통해서 이룬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 되고. 그래서 그 빛나는 순간들이 우리 속에 생긴다면, 그것이 가능성의 중심의 맥락을 통해서 인류에게 어떤 희망의 지평을 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세상을 구제하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모여서 나누는 그런 빛나는 순간들이 가능성의 중심을 통해서 흘러가지 않겠나. (딴 데 남기려고 하지 말고 자기의 정신 가운데 그 무엇이든 빛나는 것들을 이렇게 수렴해서 남겨두는게 어떨까)

 

10. 는길

몸에 눈이 많아진다는 것. 사물과 길항하며 말(정신)을 붙들고 말을 보시는 선생님을 통하여 그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간 공부를 하며 생활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겨났고, 낭독의 실천 속에 낭독하는 자신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겨났습니다. 내 말과 몸과 맘을 보는 눈이 조금 더 생겨나면, 그렇게 확보된 시선적 거리 속에서 긴밀한 조율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키워봅니다.

선생님께서 추변술(推便術)을 알려주셨습니다. 평소 내부를 향하여 몸을 보며, 몸의 말을 청종(聽從) 하시는 선생님의 생활양식이 흡수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추변술을 실천하고 응용하며, 오랜 시간 몸의 말과 요구를 억압하고 묵살한 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끊긴 줄도 모르는 분열되고 측은한 자아가 드러납니다. 공부는 그런 곳을 비추기에, 이 길 어디선가 화해와 연합과 통합된 존재로 가뿐히 거닐게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희망도 건네받습니다.

상체를 곧추세우되 힘을 빼고 편안히 변기에 앉는데, 그 요점은 목구멍-위장-똥구멍의 루트를 마치 기맥(氣脈)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요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결과이자 체험의 한계에 가깝다. 한편 이것은 자신의 생활 방식이 몸을 통과하는 층과 결을 낮고 겸허하게 느끼는 노릇이 덕()을 얻은 셈이다.” (봄날은 간다, 배변(排便), 극히 실용적인 지침들, 글항아리, 2012, 199.)

 

11. 임ㅁ애

자기 소개시간 선생님은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perception box(인식의 상자) 개념을 소개하셨다. “이것은 '마음의 경계를 넓힌다'라는 수련과 관련되어 있다. 인식은 늘 보는 사물에 묶여 있다라는 것이다. 보는 것만 보니까 마음이 묶이는 것이므로 다른 것을 보면 perception box가 열린다는 것이다.

라이얼 왓슨(Lyall Watson)이 다양한 초자연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가 자신의 perception box를 잘 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또 다중지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예화는 세계적으로 많다. ‘파이값을 계속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계산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서 보이는 숫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기가 하는 것은 아닌데, 자기가 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 속에 신 같은 기이한 존재가 그런 기이한 연산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실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아마 열려 있는 모든 지평을 만끽하지 못한 채 죽겠지만, 애를 써 보고 그 박스에서 나와서 걸어가 보는 것이 공부가 아닌가 한다.

 

12. 조ㅇ남

이번 속속에서 선생님께서는 내 자신이 어떻게 하면 절망이지 않을까를 생각하신다고 하셨다. 나라도 희망을 갖게끔 행동하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재미있게 하시면서 자의식이 없어지도록 한다고 하셨다. 산책할 때- 경행, 낭송, 암기, 외국말로 강의해보기, 꽃 탐구, , 메모, 작곡 이런 일련의 행동을 동시동작으로 하시면서 자기 몰두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신다. 이 말은 는길의 자기소개에 부쳐 하신 말씀과도 연결되었다. “자기의 무의식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 것이 현명할까?”라고 하시면서 통합된 존재로서 자아의 분열을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조심하다 똥 밟는다처럼 자기를 돕지 않는 자기를 찾지 말고, 나의 모든 존재(기억, 희망, 내면의 아이...)가 나를 돕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이렇게 무의식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24시간 무엇을 가지고 놀고, 무엇을 반복하며 생활하면서 정신을 데워놔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13. 유재

선생님께서 자기를 돕지 않는 자기와 같이 사는 자아, 통합되지 않고 분열된 자아로부터 넘어설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말씀해주셨다. 매우 전형적인 분열된 자아로서-, 나는 첫 번째 방법이 활기(活氣)차고 불요불굴(不撓不屈)한 것이 이것을 붙잡아야겠다고 느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넘어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선 첫 번째 방법은, 일체의 번호판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걸 한 3개월하면 점점 가십니다, 존재가 전부 다 협력해서 나를 돕게 하는 식으로 살으세요, 여러분 속의 모든 가능성과 재능과 희망이 나를 돕는 식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해 보세요.”

 

14. 단빈

"공부의 방향은 통합된 자아를 갖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협력하여 나를 돕는 식으로 공부를 하라는 것이지요. 초자아는 마음의 통합/분할과 연관되어 있으며 마음은 마음으로 어찌할 수 없기에 실천적인 꾀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