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회 속속 복습 문장 모음

by 유재 posted Feb 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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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회 속속 복습 문장 모음

 

1.

1.1. 연이정

겨울 끝에 숙인들의 아픈 소식을 듣고 학인에게 몸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공부를 하다 보면 정신은 탈이 안 나니까 끝없이 나아가게 되고, 그러면 몸은 금방 탈이 난다고 하셨다.

몸을 가진 사람은 공부의 배치를 중도(中度)에 맞게 해야 한다. 적당히 알맞게 해야 하는 이유는 몸이 없으면 중도가 필요 없기 때문이고, 길게 멀리 가려면 오히려 몸에 더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 하셨다. 몸이 주인이다.

1.2. 권ㄷ환

선생님께서는 단빈의 자기소개에 응하면서 내가 몸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내가 몸이 없다면 중도가 필요없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중도를 말씀하실 때 자주 적당한 정도를 이야기해 주시는데, 중을 친다는 개념에 항시 정확성혹은 최적해같은 것을 대부분 떠올리는 나는 이점을 더더욱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길게 그리고 멀리 가려면, 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이에 대해 건강을 잘 관리하자는 생각도 했지만, 평상시 움직임이나 타자와의 응하기에서도 쉽게 생각으로만 빠져버리는 나의 버릇을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자를 인식할 때에 내 개입을 잘 보아야 하는데, 그때 특히나 내가 몸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하면 더 좋을거라 생각한다. 생각의 비중이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내 몸을 끄--고 나아가기엔 생각이 앞서고 생각이 가벼운 것 같다.

 

2. 성찰

2.1. 지린

지난 속속의 한문강독시간에 나는 정경세鄭經世(1563~1633)의 문장 발표자였다. "如生少壯不努力老而知悔已無及" 한자 열네 개로 이뤄진 비교적 짧은 문장이었다. 나는 우선 정경세의 태어난 해와 돌아간 해를 말하고, 내가 발표할 문장의 출처가 그의 遇伏集에 실려 있는<答申明叔>이라는 것과, 그가 柳成龍의 문인(門人)이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저자 소개를 마치고, 본 문장으로 들어갔다. 如生少壯不努力을 말하며, 나는 예습을 한 대로, 如字를 가정을 하기 위한 "만약"으로, 生字는 삶이나 일생으로 해석했다. "만약에 살면서 나이젊고 건강할 때 노력하지 않는다면"으로 말을 풀려나갔다. 나는 집에서 발표준비를 할 때, 교훈적인 의미로 이 문장을 읽어냈다. 그래서 여운을 못 느끼고 준비를 빨리 끝내버렸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내 발표를 바로잡아주셨다. "본래" 이고, "나를 낮추는 말"라고 고쳐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고쳐읽었는데, 그러자 예습할 때와는 전혀 다른 문장이 되었다. "본래 저는 젊어서 노력을 하지 않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엄격하게 따지며, 자신을 적절하게 낮추는 예법을 알던 선배의 마음이 알아지는 문장이었다. 길지 않았던 일이 분의 배움이, 허공에 떠있던 교훈적인 문장을, 오백여년 전 한 선비의 붓끝아래로 옮겨주었다. 문장은 그 선비의 마음과 숨결이 담긴 문장이 되었다. 나는 나의 경박함을 알아차리고 숙연해졌다. 선생님은 지금 경산에 사시는데, 경산에 대한 정경세의 문장 하나를 더 알려주셨다. "慶山如斗小邑首先倡義" 공부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일이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는 늘 너른 마음과 느긋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겠다.

2.2. 김ㅅ연

선생님께서는 한국사회에 큰 병폐로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엄살이 너무 심한 사회라는 것을 강연 말미에 지적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엄살과 변경이 심해 스스로도 성숙하기 위해서는 '힘들다''죽는 소리'하는 것과 '바쁘다''변명'을 멀리 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엄살'은 어떤 노동과 비용을 피하기 위한 수단인지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고 차근차근 엄살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나가고 싶습니다.

 

3. 진리는 시간의 딸

3.1. 유ㅅ진

선생님께서 '사물이나 타자에 대한 공포가 있는 여자와 노예에게 지혜가 생긴다'는 말씀하시면서 '진리는 시간의 딸(veritas filia temporis)' 이라고도 하셨는데, 쑥쑥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주인과 노예는 생사를 건 투쟁을 한다. 승리한 주인은 '노예의 주인'이 되어 수동적 존재가 된다. 노예는 주인 대신 사물을 대하고 노동을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지혜를 얻는다.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주인이지만, 시간이 지나 상황이 뒤바뀌어 두려움과 노동 속에서 지혜를 얻게 된 노예가 진정한 승자라는 진리가 밝혀진다.

3.2. 조ㅇ남

지혜란 계()과 정()을 거쳐 나온다. 공부할 때 달리기, 낭송, 외국어 공부 등을 통해 밖의 것을 살피고, 자기가 자기를 보는 것을 통해 안의 것을 살펴서 지혜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여자와 노예에게 왜 꾀가, 지혜가 생겨나겠나? 노동을 통해, 공포를 통해 주인을 넘어간다. 지혜는 시간의 딸이다. 글자만 읽는 사람이 되지 말고, 또 공기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도 책을 끊고 공기를 읽어 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통합된 지혜가 나온다.

 

3. 아무

<낙서금지>란 낙서는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취지에 부합한다.

비논리적이면서 세상을 바꾸는 게 꾀라고 하는 것들인데, 우리는 논리를 알지만 논리에서 물러 나오는 보살이다. 보살은 실질적으로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존재이다. 논리에서 안 물러서면 자꾸 싸움이 일고 실천적으로는 아무런 공덕이 안 생길 수도 있으니까.

모든 것이 공이다 파악했으면 거기서 나와서 다시 공이 아닌 냥 행동해야 한다.

비록 모든 것이 공이어도, 공이 아닌 듯이 애를 쓰고 남을 돕고 하는 것이 이게 보살이다. 그러니까 공부는 보살의 길이기에 미안해하면서 손을 내미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공부를 통해서 인간의 진리와 우주의 진리를 파악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되겠지만 그런 다음에도 거기에서 물러나와서 내가 모르는 듯 함께 어울려 사는 진리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공부의 진정한 엑기스가 아니겠는가!

사실은 우리의 실패적인 많은 경우가 카테고리와 디멘션 실패이다. 엉뚱한 배경 아래서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왜 각자가 옳은지에 대한 관련되는 범주나 맥락이나 연관관계나 흐름을 알아보자. 사실은 누구나 하나의 문장으로 모든 이슈를 다 못 잡기 때문이다,

 

4. 단빈

선생님께서는 차이를 이용한 재서술이 인간의 재능이며, 새로운 언어 없이 동일한 언어만을 구사하는 것은 '동물화'와 다름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의 문장으로 모든 것을 다 잡을 수 없다"는 앞선 가르침에 이어집니다. 언어에는 다양한 카테고리와 층위(Dimension) 가 있는데 우리가 겪는 수많은 실패는 카테고리의 뒤틀림에서 비롯된다고 하셨습니다.

언어의 부재나 정치하지 못한 언어 구사로 우리는 자주 어긋남을 경험합니다. 인문학은 말을 배우는 공부이고, 말은 학인에게 있어 도구이기에 갈고 닦는 것이 과업입니다. 언어에 대한 감각을 달리하고 그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사람의 정신을 달리 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체감합니다.

근자 장숙에서의 공부는 글쓰기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역량 밖의 일처럼 느껴져 괴롭기도 하지만, 하나씩 해 나갈 때마다 큰 성취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5. 독하

1)

不能正觀空

鈍根則自害

如不善咒術

不善捉毒蛇

 

2)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속속> 복습 시간에 선생님께서 인용하신 문장을 찾아보다 공통점이 잡힌 두 문장을 적는다. 첫 번째 문장은 공을 어설픈 근기로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는 중론에 실린 게송이다. 여기서 鈍根과 대비되는 말이 상근기인 利根이다. 두번째 문장은 논어에 실린 공자의 말씀이다. 두 문장 모두 예리함()을 강조하고 있다. 예리함을 위해서는 정이숙(精而熟)이라는 행위의 반복이 요구되어진다.

 

6. 유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밖에 바뀔 대상이 없다는 데서 희망을 찾는 것이 공부입니다. 正己不求依卽無怨,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에게서 구하지 않으면, 곧 원망이 없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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