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을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일치하는 경우는 없을까?
어제 장강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종일 그 말이 입 안을 맴돌았다. 아울러 그 말이 ‘하고 싶었던 말인지, 해야 할 말이라 할 수 있는지, 혹은 하고 싶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말로 함께 치부해도 좋을지’ 오락가락 했다. 그 말인즉슨,
“올해 들어 친숙하지 않은 한 숫자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200.
선생님이 이끄시는 장숙의 정기 커리큘럼인 길속글속 200회를 맞이하여 이런 저런 준비가 있다 보니 최근 두어 달은 200을 머리에 담고 지냈다.
10년이면 江山도 변한다느니 인생 70 古來稀라느니 100년 河淸이라느니 3白의 고장이라느니 껑충 뛰어 천년학 등등... 숫자가 나오는 말이나 문장이 많기는 하지만 200은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힘드니 200은 그저 제 자리나 지키는 수인가 싶었다. 그래서 이 200 이란 수가 명사적이지도 동사적이지도 않은 부사적인 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200없이 300이, 또 1000이 있을 수 없으니 200이라는 수, 길속글속 200회의 200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길속글속 200회는 햇수로 따졌을 때 대략 10년이 걸린 사건이다. 앞서 10년이면 江山도 라고 했는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애쓰신 많은 이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봄 문익환 목사님이 고 이한열의 장례식 때 민주화 과정에서 몸을 던진 이들을 한 분 한 분 호명하신 것처럼 나도 장숙을 위해 헌신하신 많은 이들을 한 분 한 분 떠올리고 싶었지만 늦깎이로 입문한지라 지난 앞선 이들을 알 길이 없어 그저 앞선 선배들이라고 뭉뚱그려 그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옛 사람 못 보듯,
뒤에 올 사람 못 보네
(前不見古人 後不見來者) 라 하였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지난 앞 선 선배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뒤에 올 후배들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