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회 속속 후기 문장(1-17)

by 장숙藏孰 posted Mar 23,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한글 파일: 200회 속속 후기 문장.hwp

 


1. 김ㅅ연

200회 심포지엄 때 미ㅇ씨의 말이 계속 생각납니다.

여자들은 계속 멈추고 야망 품기를 주저하는데 가다가 내 앞에 누가 길을 막고 있으면 양보하지 말고 비키라고 하고 내 길을 가야 한다고.

저는 요즘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면서 책임이 하나씩 더 늘어나서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부족하고 덕이 없어서 사무실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나 자신도 결국은 리더의 역할을 못 해낼 것 같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책임감 만큼이나 아직 오지 않은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애씨의 "여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야망을 가져라. 내 길 막지 말고 비키라고 하고 내 길을 가라!"라는 혁명적 선언에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일단 나아가 보자는 힘을 얻었습니다.

 


2. 연이정

장소란 무엇일까요… 먼지만 가득했던 이 공간에 누가 사는가에 따라 이리 아름답고 으늑한 장소가 될 수 있다니… 어느 한자리 한 모퉁이조차 정성과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과 애쓴 동학들의 정성과 노고가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큰 행사에 모두의 어울림 속에 각자의 맡은 바를 물 흐르듯 순조롭게 해나가는 솜씨라니… 감탄이 절로 났습니다.

1부 심포지엄은 40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차분함과 명랑함을 오가며 유쾌하고 진솔하게 잘 진행되었고, 차방, 숙인방, 양재로 이어진 2부의 다채로운 대화와 간간이 들려오는 그날의 청량하고 맑은 웃음소리는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다시없을 이 꿈같은 시간에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10년 가까이 200회를 맞이하는 동안 학인들을 돕고자 불철주야 애써 오신 선생님과 숙인은 어떠해야 하는지, 선배 숙인들의 모습을 통해 온몸으로 보여준 선배숙인들에게 감사 인사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3. 유ㅅ진

심포지엄을 위한 첫 번째 조별 모임에 나는 A4용지 한 장도 채우지 못한 초고를 들고 회의에 참석했다. 지난 일을 잘 돌아보지 않는 편이라 별로 쓰고 싶은 말이 없었다. 모임을 거듭하면서 이런저런 감정들이 되살아났고,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겼다. 글로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물론 조장과 조원들의 애정이 담긴 조언과 지속적인 응원, 그리고 유재의 열정적인 피드백이 없었으면 완성하지 못했을 글이다. 다시 한 번 동학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4. 아무공

여자들은 공부로 자기 존재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컸다. 실력 있는 사람, 함께 하기에 즐거운 사람,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 사람/현명한 아내이자 지혜로운 엄마/삶의 전체를 낫게 만들어/좀 더 너그럽고 현명한 지혜로운 어른/내 정신이 자라 단단해지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혼자 있을 때에도 물건을 소리 나지 않게 놓고/완벽한 타인이었던 아이와 잘 지내보고/나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어제보다 더 너그럽고 지혜로워진 나/증상에 끌려다니지는 말자/좋은 몸을 만들기/마음의 경계를 바꾸어 나가는 것/나의 주인으로 적극적으로 살아야가기/주체화 과정/자기 이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나와 타자 그리고 나와 나 사이를 통합한 존재(그리고 나는 장숙의 숙인이다.)

 


5. 숙비랑

<완벽한 타인과의 만남>()에 쓰여진 말이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 정신의 이동을 희망하며, 매번 조금씩 달라지려 애쓰기로 마음 먹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혼자 있을 때에도 물건을 소리나지 않게 놓고,

평소 쓰지 않던 왼속으로 주전자의 물을 조심히 따르고, 샤워 후 조용히 안아 머리를 곱게 빗고, 매번 쓴 볼펜과 연필의 냄새를 맡고, 연두색 일기장에 정성스럽게 오늘의 마음을 적어보고, 의자에 앉아 평온하게 선생님의 책을 낭송하고, 걷기만 하던 걸음을 좀 빠르게 해서 뛰어보고 ()“. ‘한 문단으로 길게 이어지는 공부 이후에 생겨난 변화의 일면들이다. 생활의 소사에서 자기 공부를 검증하며 홀로 있음에도 삼가 자기를 세우는 공부를 동학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공부가 있는 곳은 과연 내 몸이 있는 그곳이다.

 


6. 임ㅁ애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긴 시간을 함께 묻고 답하면서, 우리 공부의 방향과 장소성을 단단히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진행되는 공부는, 모이는 장소의 자장을 얻음으로써 가능하다이러한 힘이 어쩌면 인간의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그 소회를 가장 잘 갈무리해 준 것이 이번 심포지엄을 기획한 학유 유재의 글 "공부하는 여자는 무엇을 먹는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떡볶이를 시작으로 채식의 정치성을 지나 식탁 앞 여성의 역능으로 향하는 유재의 글은, 각 조들이 길게 물어 온 질문에 응하는 듯했습니다. 이토록 새로운 소통을 통해 우리의 공부에 대한 더욱 풍부한 말과 설명을 만났습니다.

글은 이브와 웅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브는 금지된 것을 먹음으로써, 웅녀는 정해진 것만을 먹음으로써 인간이 되었습니다. 여성은 처음부터 그 두 극단 사이에 놓인 존재였던 셈입니다. 그 사이에서 여성과 음식의 관계는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형성됩니다. 남성이 음식에서 얻는 것이 주로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된다'는 자기화라면, 여성이 음식에서 얻는 것은 "음식의 위로 혹은 음식의 주술성"입니다. 레비나스가 말했듯, 먹거리에 의하여 "자아와 자기 사이에 '사이'"가 나타납니다. 먹는 순간, 주체는 자신의 경계 밖으로 잠시 열립니다.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된다'는 근대적 자아 통제의 신화가 작동하지 않는 그 지점, 즉 완전한 통제도 무력함도 아닌 입지 자체가 새로운 삶의 문법을 창조하는 역설의 장소가 됩니다.

이 글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주식(主食)이 없는 세계로 명명하며 그 토대를 먼저 정립하고, 여성적 역능과 전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합니다. “과거에 일상과 축제, 주식과 부식으로 분명히 나뉘어 있던 것들이 도처에서 전복된 자리에서, 여성들의 떡볶이나 케이크는 "극도로 문화화한 새로운 형태의 창조"로 읽힙니다. 떡볶이가 "주식도 부식도 아닌" 경계에 놓여 있다는 것, '들뜬 가장자리'야말로 정해진 본질이나 정답이 사라진 시대에 여성이 처한 특수한 가능성의 자리입니다. "그토록 귀한 것이, 그토록 낮아져 우리와 함께 있다"는 떡볶이의 유연함은, 바로 그 낮고 비속한 자리를 지키는 여성적 삶이 얼마든지 "다른 길"이라는 정화와 위로로 "변동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유재는 도덕적 엄결성이라는 환상으로 도피하는 "정직하지" 않은 채식주의를 넘어서자고 말합니다. 모든 생명이 "서로 빚지는 것, 서로 생명을 주는 것"을 뜻하는 카스리말(kas-limaal)의 자각, 그 위에서 무엇을 먹을지를 다시 결정하는 것우리는 이미 그 변화의 문턱에 들어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물음은 마침내 식탁 앞에 이릅니다. 그렇게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램지 부인을 통해 구현되는 '영혼의 식탁'이라는 절정으로 향합니다. 램지 부인은 자격 있는 자를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전체가 식탁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듭니다. 인간의 자격이란 스스로 증명해 내는 과업이 아니라, 여성적 타자의 초대와 요청을 통해 비로소 효력이 생기는 것, 이것이 바로 '수동의 능동'입니다. 여성은 식탁의 기원적 입구에 서서, 누군가를 앉히고 어울리게 함으로써 식탁의 가장자리를 들뜨게 만듭니다. 그것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자리를 여는 일입니다. 유재가 그려낸 식탁은 욕망의 능동적 관리가 아닌 "욕망의 수동적 수용"이 일어나는 자리, "자격이 없는데도 여전히 식탁에 앉을 수 있는" 환대의 공간입니다. 그 식탁이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도 이미 어딘가에 앉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숙이라는 식탁에 우리가 모여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존재의 경계를 허락하면서도 어울리도록 하는" 유연한 전복의 힘은 아직 다 말해지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함께 물어갈 것입니다.

 

 

7. 단빈

속속 100회 때 신입 숙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는데, 200회를 축하하는 자리에 서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심포지엄을 준비하며 우리가 지나온 궤적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개별적인 삶이라 여겼던 것이 여성의 삶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엮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를 넘어서서 '자기 구제'를 희망하며, '길 없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신뢰와 연대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100회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배움이 더뎌 부끄러운 마음도 크지만 그럼에도 이동하였노라 말할 수 있으니 다행이기도 합니다. 조금이나마 밝아질 수 있었던 것은 장숙에서의 배움 덕분입니다. 공부 자리가 지속될 수 있도록 애써주시는 선생님과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8. 상인

길속글속 200회 기념 심포지엄을 마쳤다. 홀가분하다.

그러면서도 한켠으로 결코 개운치 않은 메타인지가 생겼다.

여자의 공부라는 심포지엄의 주제에 대한 나의 저항은 심포지엄 준비 중에 어느 정도 누그러졌지만 심포지엄이 끝나고 관련 문집을 하나하나 짚어 읽으면서 왜 여자의 공부인가가 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문득 지식인과 허위의식이라는 책이름이 생각났다. 허위의식.

그것은 내가 가진 '여자''여자의 공부'에 대한 그릇된 의식과 연관되어서 일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약자'를 모른다. '모른다''(몸으로) 모른다'고 읽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없어서 못 먹는, 꽁보리밥이라도 마음껏 먹어보았으면 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보았으니 알 것이다. 그렇지만 그 느낌은 모른다.

또 하나.

나는 성적이 꼴찌인 친구들의 느낌을 모른다. 꼴찌를 해본 적이 없어서다.

그러니 '배고픔'이나 '꼴찌의 심정'을 알 길이 없다. 머리 추측이 아닌 몸자국으로 말이다.

약자로서의 여자에 대한 논의나 문학작품을 듣거나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나 스스로 여자에 대해 어느 정도는 보통 남자들 보다 좀 더 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번 심포지엄이 나를 관통한 후 남은 것은 내가 '여자''여자의 공부'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다. '머리 추측'이 아닌 '몸자국'을 체험하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여자가 처한 '이중구속'-(여자가) 자신의 일이 사소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빠져나감으로써 생기는 위험을 자각하는 것-을 이용하고 외면했다는/외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자가 남자보다 자기 구제에 더 절실한 이유를, 아울러 '남자'로서의 나는 나면서 벌써 '강자'가 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나의 논의는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함께 공부하는 여자 숙인 선배들과 얼굴을 맞대며 진행된 탐구이기에 더 생생하고 절실했다.

모른다, 모른다 하며 조심조심 더듬어 가야겠다고 새삼 다짐해 본다.

 


9. 소ㅇ광

200회 심포지엄의 모든 순서, 가령 사전(辭典)을 펼치는 시간의 낭독부터 숙인들의 글 속에서 드러난 것은 숙인들과 선생님의 관계, 더 정확히 말하면 숙인들의 말-글과 선생님의 관계, 그러므로 숙인들의 응하기라는 무늬화의 양식과 선생님과의 관계였다. 심포지엄 내내 선생님은 가장 뒷자리, 어느 가장자리에서 낮게, 보이지 않게 운신하셨는데, 숙인들의 모든 학술활동의 한복판에서 선생님은 언어를 주는대타자로서 항상 이미 작용하고 계셨다. 선생님의 말과 글, 그분의 응하기, 그분의 생활이라는 새로운 문법에 빚져서 “‘자기 언어를 가진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자기 구제의 희망을 품[는 즐거움]”(김ㅅ연)을 누리는 자리였고, 선배 숙인들의 공부에 빚져서 그곳에 참여한 자들이 자기 구제의 희망을 함께 고민하는 이제껏 없던 물음이 시작(始作/時作)된 잔치였다.

독하는 자기 구제를 다음처럼 규정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내가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자기 구제다.” 여기서 자기 구제되는 것은 생활이면서 희망이며, 생활로써만 내용화 될 수 있는 희망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따르는 선생님의 가르침, 곧 선생님의 생활이면서 희망이며, 선생님이 생활로써만 육화(incarnation, embodiment)해 가시는 희망이다. 그러므로 자기 구제조차 자력 구제는 아니다. 즉 자기를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내 바깥에 있는 선생님의 모델적 가르침을 경유하고, 통과하며, 그 틀 속에서 내 생활과 희망을 새롭게 벼려내야 한다. 내가 내 자력의 용기로써 내 몸을 끄--고 참여하지만 동시에 선생님의 생활과 희망을 모델로서 타력적으로 빚질 수밖에 없는 까닭에, 자기 구제는 자력과 타력의 사이 형식으로서 언제나 모방적 자기 구제라고 재규정될 수 있다.

가령 선생님의 가르침이라는 수직적인 초월의 모델이 없다면, 모방을 피할 수 없는 세속에서 우리는 고만고만한 모델들과의 납작한 경쟁에 내몰려 만인과의 인정 투쟁을 지속하다가 끝내 내남없이 동일한 욕망에 사로잡혀 차이의 무화’(R. Girard)라는 혼돈 속으로 아득히 휘말리고 만다. 이런 혼돈의 균등화로부터 벗어나려면 모방의 모델을 초월적인 위치로() 재배치(-재구성)하고, 바로 그 모델이 내게 초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나와 그를 아울러 배려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선생님과 그분의 가르침이 초월적 모델의 위상에서 내 모방적 욕망을 기원적으로 재구성하도록 나의 삶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앞서며 우위에 있는 삶(그러므로 先生), 아니 차라리 생이라는 1차원적인 본능(conatus)에 앞서 있는 삶(그러므로 先生)과 나 사이의 절대적 비대칭성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인정해야 한다. 차이의 무화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인정 투쟁에서 현명하게 벗어나서 균질화되거나 평준화되고 전일화된 자본주의적 욕망의 늪에서 탈출하려면, 내 욕망과 생활의 기원이 모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누구의 무엇을 어떤 관계성의 틀 속에서 새롭게 모방하려고 할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부처가 계신다는 옆방은 이미 절대적인 초월성(/인식 불가능성)을 포기하고 절반의 초월성으로 자기를 낮게 하강시킨 자리다. 그런 점에서 옆방의 부처란 이미 보살이다. 그의 그림자, 그의 흔적, 그의 말과 글, 그의 생활, 그가 장소화한 옆방 그 자체가 그의 자기 구제이자 그의 가르침이다. 부처가 계신다는 옆방은 아마도 사면이 큰 창문으로 되어 있을 것이며, 그 창문은 그분의 규칙에 따라 적절히 열려 있거나 닫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옆방은 원칙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을 테지만, 문턱이 없지 않아서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따르는 선생님과 그분의 가르침이 옆방의 부처거나 부처가 계신 옆방과 같다면, 관건은 그 옆방의 부처와의 창의적인 원근법 속에서 그분과 나 사이의 절대적 비대칭성을 재구성하고 공대하며 그 거리감을 슬기롭게 활성화하는 것이고, 그분이 내어준 생활의 장소 속으로 내 자아를 죽이고 뛰어 들어가 보는 것이다. 다른 생활로써 내용화 되어가는 다른 희망, 즉 세속과는 차이 나는 희망, 다시 말해 진짜 나를 다르게 만들고, 다르게 살게 만들지도 모르는 그 섬뜩한 희망을 웃으면서 의욕하는 방법을 선배 숙인들의 얼굴에서 보았다.

 


10. 김ㅁ아

감히 200회 심포지엄의 무게와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아서일까, 심포지엄 자체가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심포지엄을 앞두고 2조로 구성된 숙인들과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 끝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숙인재로 향했다.

는길의 여는말을 들으며 지난 속속의 시간들을 채운 여러 선배들의 노력과 시간의 기대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속속의 시간과 장소를 헛되이 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나의 공부는 결국 누군가의 장소와 시간에 빚지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부 시간을 보내던 중, 오늘 심포지엄이 어땠는지 누군가가 질문해왔다. 나는 심포지엄 이전에는 숙인재가 낯선 곳이였는데, 오늘을 기점으로 이곳에 조금 더 애정이 생겼다고 답했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분이 그래서 사람들이 집들이를 해요. 영어로 집들이는 houeswarming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어쩌면 심포지엄이 나에게는 숙인재의 집들이와도 같았다. 여기 모인 모두의 온기로 숙인재를 따뜻하게 데웠다. 이 집들이로 인해 나에게 숙인재는 어느집이 아니라 우리집이 되었다.

 


11. 여일

200회를 맞이하여 장숙을 좋은 장소에서 좋은 모습으로 손님에게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심포지엄이 다가올수록 준비가 잘되어가고 있는지 자신이 없어서 걱정이 앞섰지만 당일 숙인재 문을 여는 순간 공기가 편안했습니다. 다른 동학들은 한참 먼저 일찍이 모여서 여러가지 것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큰 행사를 앞두고 너무 안이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숙장의 차분하면서 재치있는 진행으로 200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모든 순서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습니다. 시낭독, 심포지엄, 중창, 간식과 음식, 멋진 화원 등은 마치 향연과도 같았습니다. 동학은 저마다 일당백처럼 당당하고 훌륭했습니다. 남다른 작은 학교이지만 대학이 부럽지 않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이별례를 하는 중에, 옆에 있는 손님에게 40 여명이 넘는데도 집이 번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손님은 "중심이 낮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12. 독하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조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어느 숙인이 장숙의 공부 형식이 외부에서 봤을 때, 수동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말을 했었다. 이에 오래 공부한 숙비가 응하며, 장숙의 공부 형식이 외부에서 봤을 때, 수동적으로 비칠 수는 있겠지만 굉장히 역동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 때, 선생님께 배운 것들이 몸에 배어 숙인들의 응하기 실력으로서 드러난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심포지엄의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선배 숙인들의 응하기를 유()심히 지켜보게 되면서 이 말의 효능감이 몸으로서 다가왔다. 장숙의 공부는 정신이 자라는 공부를 하는 곳이며, 이는 틀을 매개할 수밖에 없고, 이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다면 반드시 몸의 변화로서 드러난다. 자신의 변화가 장숙 공부의 효능감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지나온 공부 길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13. 지린

숙인재 교실에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을 때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가까이에 앉아 있었다. 발표하는 숙인들의 말이 밝고 투명하고 분명해서 듣는 마음이 뿌듯하고 기뻤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자주 돌아보기도 하였는데, 마흔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오르내렸던 계단의 계단참에는 온화한 기운이 고여 있었다. 보는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신비로워서 나는 자꾸만 계단 쪽을 돌아보았다.

심포지엄 준비를 위해 내가 맡은 일은 청소와 손님맞이였다. 이 작은 일을 하면서 내가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순간마다 다가와 의견을 내주고, 부족함을 채워주고 해결해 주는 숙인이 꼭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미흡하다고 여겨지며 기울었던 마음이 균형을 회복했다. 나는 정확하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 숙인들의 실력에 감탄하면서 감사했다. 오신 손님들과도 어울려 치러지는 200회 속속 내내, 숙인재는 비좁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숙인재가, 우리의 공부가 놀라웠다.

속속 끝나고 차방에 있을 때, 선생님께서 200회를 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해온 것이냐고, 질문하셨다. 그때는 잘 말씀드리지 못했다. 우리는, 장숙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나는 속속의 형식() 속에서 선생님 말씀을 들었고 숙인들과 어울렸다. 나는 인식의 무너짐/정화淨化/의 찰나발생을 자주 겪게 되는데, 오랫동안 들어왔던 숙인들과 장숙강 참여자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나의 이런 경험이 여러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겹침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장숙의 공부는 공부형식의 자장 안에서 새 말을 하는 것으로 우리공동체의 무의식을 淨化하고 있다고 말해본다. 을 창조하여 바람이 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은 이다. 심포지엄 1부 단보일언에서, “혹은 으로 손과 발을 얻는 학인의 공부길을 말씀하셨는데, 사람 사는 일상은 일 수 없고 필요한 것은 손발이니, 학인들은 을 칠 수 있는 실력 있는 손발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언젠가 속속 강의에서, 자기지분이 생기지 않는 행함이 중이라고 강의해주셨는데, 나는 숱한 을 찰나발생시키면서도 그만한 손발이 있는 실력자가 되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마음을 다해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올린다. 나는 다시 첫발을 내딛고 첫회를 맞이하는 것처럼 201회 속속을 준비하고자 한다.

 


14. 조ㅇ남

200회 속속은 저에게 선배들이 어떻게 공부해 왔는지를 살피고, 각자가 공부하면서 어떤 심정과 변화를 겪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동학 한 명 한 명 각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조화롭게 장소성을 띠는 모습을 보며, 저에게는 벅참과 동시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강한 다짐도 생겼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오시는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큰일처럼 여겨지던 심포지엄이 함께 웃으면서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동학들 하나하나의 숨은 노동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덧붙여 선생님께서 심포지엄에 개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처음 인사말에 풍악을 울려라'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공부 길의 기쁨 정도는 표현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질문에 응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신 선생님께서는 써오신 메모를 조심히 읽으셨습니다.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들떠 있던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고, 주변을 조심히 더 살필 수 있었습니다. 안 계신 듯하여, 돌아보면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심포지엄을 끝맺는 말을 들려주실 때에는 지금의 영광?이 아니라 과거에 장숙에서 공부했던 동학들을 생각하자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함께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도 소외시키지 않고 모두를 환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15. 박ㅇ름

200회 심포지엄은 심포지엄을 여는 말에서부터 저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20172월 작은 골방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천안 숙인재가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속속의 공부 자리가 달라져 온 이야기를 들으며 장숙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알게 되고 그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어 보다 단순하지 않게 장숙을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심포지엄의 주제가 '여자들의 공부'인 만큼 세 조의 발표와 심포지엄 문집을 통해 여성의 공부길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접하고 생각해 볼 수 있어 저 또한 한 여성으로서 유익한 시간이었는데요, 문집에 인용된 '호감·호의''신뢰'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선 '호감·호의'"사적 규칙 속에서 저 호올로 작동하여 사이비 일치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신뢰'"사적 의도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객관성의 가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공부길에 호감·호의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저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호감·호의가 아닌 신뢰로 맺어진 관계는 어떤 단단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 관계에서 보이는 호감·호의와 같은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궁금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16. 권ㄷ환

선생님의 말씀처럼, 장숙에서의 공부 또한 자기 나름대로 얻어가는 법이다. 소비자적 마인드로 비용 없이 손쉽게 얻으려 하거나 의탁해서 믿고 의지하며 안락함을 느낄 수도 있고 자잘한 차이를 뽐내며 자만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어디이든, 그곳이 천국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곳에서 실패하면 다시 증상적으로 다른 대상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조ㅇ남) 어디에도 유토피아가 없다는 사실은, 어떤 곳에서든 내가 그 자리를 공부 자리로 장소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디 가든 공부가 아닌 게 없고(无往而非工夫), 또 내가 학교이면 그만이다. 공부에는 도착해야 하는 최종 목적지도 없고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보물도 없다. 끊임없이 정진(부처)하며 날로 새로운 한 걸음을 시작(k 선생님)하는 것이며 길 위에서 걷고 또 걷는 것이다. 점점 두꺼워지는 뒤꿈치와 그에 붙어있는 상처만이 공부의 증거다. 역시나 공부는 "머리로 묻고 몸으로 답을 해야"(유ㅅ진)한다. 동학들과 어울리며 어리눅어 함께하는 시간에서 어긋나는 순간마다 항용/이미 개입되어있는 나를 바라보는 노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그 어긋냄을 놓치지 않는다면, "무너지는 자리마다 과거의 나를 발견할"(조ㅇ남) 수 있을 것이다. "공부의 계기라는 프리즘으로 제 인생을 회상해 보니 저는 매 고비마다 옳은 선택을 했고 좋은 어른들을 만났고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김ㅅ연)는 말처럼, 해석이 만사(k 선생님)이고 "이미 끝난 과거가 글쓰기를 통해 구제가 가능"(벤야민)하기에 우리는 공부를 통해 자라는 더 큰 나의 정신을 기대하며 매번 (영원한)자기소개를 통해 끊임없이 ()서술 하는 것이다.

 


17. 는길

여자라는 것도 운명일 수 있을까. 심포지엄을 통하여 운명이라는 관점으로 내 한 부분을 바라보게 되었다.

수ㅇ씨는 발표 중에 잠시 멈추어 백 명의 여자에게는 백 가지의 공부의 계기가 있고, 그것은 존중받아야한다며 한 동학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존재를 승인하고 보호하는 연대의 목소리였다.

여자의 공부는 자기 증상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돌볼 언어가 (아직은) 없음을 직시하며, 한편에서 분열과 한편에서 모순을 삼키며 전개되어간다. 자신을 구제하려는 독립의 과정이지만 지독한 의존성을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절망을 겪으며 자신을 배려하는 힘도, 자신에 대하여 단호할 수 있는 힘도 생겨난 듯하다. 약자의 상처를 한 발로 밟고 공부의 주체로서 자신을 호명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행사를 치르며 숙인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놀랍고 경이롭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