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신의 편지,

by 지린 posted Jun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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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천산족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이전 숙인 효신에게서 조금 전에 받은 편지입니다.  

천산족 모임의 후기(後記)로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효신의 동의를 얻어 여기에 게재합니다. 



안녕하세요. 지린, 흐린 날이지만 좋은 시간에 문자를 받았습니다. 

세월을 읽고 다시 읽고, 천천히 읽어가며 좋은 문장은 읽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장을 읽고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과거로 과거로 변덕스러운 봄의 영국으로,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잡아채"는 1891년의 잉글랜드로, 런던의 적막한 시골길로 걸어들어갑니다.

지난 시간, 초담의 글에 응하여 쓰고 읽었던 짧은 글을 보내드립니다.

 

 

지독한 거짓말에 대해,

 

델리아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지독한 거짓말인가. 장례식의 애도는 삶과 죽음을 구분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델리아의 생각처럼 죽음과 혼합된 삶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의 존재는 가족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모호했고 불안했으며 지독했다. 모든 존재들의 미혹을 뛰어넘어 그저 사그라드는 불꽃 앞에서의 외침이 선명하게 들려올 뿐이다. “불꽃을 일으켜요! 불꽃을 일으켜요!” 그러나 유제니 숙모의 외침도 세월 속에서는 타들어가고 가라앉는 불꽃이었을 뿐이다. 미끄러지고 떨어지고 흘러갈 수 밖에 없는 빗방울의 이미지처럼 차갑고 우울한 것, 의식은 끊임없이 떨어지고 미끄러져 흘러가지만 또한 완벽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잔물결처럼 남아 선을 긋고 이어진다. 모든 것이 흘러가리라. 천천히, 그러나 어느 순간 지워지지 않을 고요의 심연 속으로 잠긴다.


이것이 죽음인가 (p.61)라고 자문하는 델리아, 이것이 삶인가 (p.104) 라고 외쳤던 멀론부인(키티의 어머니), 세월의 여성들은 삶도 죽음도 자신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 끊임없이 개입시키려 한다. 그녀들을 막고 있는 투명한 벽, 강하고 힘차게 차올라 넘어서야 할 두터운 벽을 향해 두드리는, 아직은 여린 불꽃들. 삶이 다가오고 있지만 죽음은 선명하고, 지독한 거짓말이지만 소리내어 외칠 수 없는. 그리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살아있기 위한 질문, 살아내기 위한 질문을, 세월은 아름답고 고요하다. 때로는 적막하여 두렵기까지 하다. 삶이 그러하듯이

 

내일 천산족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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