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에밀 부르다레) (1-16)

by 찔레신 posted Jul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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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실상 이 왕국의 주인노릇을 해온 무당과 지관과 점쟁이등 샤만에 민중이 감지덕지하고 있는 한...특히 조상숭배라는 영혼 불멸의 예찬에 더욱 묶여 있는 한 이 민족의 퇴행이야말로 조선의 정상적인 발전과 교류를 저해하게 될 지도 모른다.(6)


2. 바로 눈 앞 항구에서 매일 현대적 기술을 갖춘 뛰어난 일본배들을 보면서도 왜 바다에서 생활하는 조선인들은 이런 케케묵은 노동 수법을 개선하지 않는 걸까? (46)


3. 일을 하면서 담배를 피울 때를 제외하면, 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 얼마나 행복한 민족인가! (47)


4. 매일 밤 서울의 길가에서는 태조시대에 시적으로 읊었듯이 4만 채의 집에서 4만개의 돌 두드리는, 감탄을 자아낼 만한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주부들은 몇 시간씩 지겨움도 모른 채 홍두깨질을 잽싸게 해댄다. 몸에 밴 이런 작업에서 팔놀림이 얼마나 잽싼지 모른다(63)


5. 불교가 도입되기 전까지 조선인은 자연숭배만 알았고, 이런 숭배는 꾸준히 발전해서 오늘날까지도 고대 풍습이 굉장히 활발하게 살아 있다. 그들은 선하거나 악한 영혼들에 둘러싸여 있다. 땅과 하늘, 산과 강, 나무에도 혼들이 살아 있다. 병에 걸리는 이유도 악령 때문이다. 여기서도 무당이활개를 칠 뿐 아니라 조선 어디에서나 절대적 여주인으로 군림한다. 이 나라를 착취하는 마술사, 무당, 천문가, 地官의 무리는 정말 나라를 고통스럽게 하는 악이자 약점이다...이렇게 가엾은 조선인들은 무속인의 도움이 없이는 태어나지도 결혼하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못한다.(85~86)


6. 조선은 산이 많은 만큼 어려서부터 산을 누비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산신령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조선인들은 산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기도 하고...귀신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이런저런 명을 받기도 한다. 산의 수수께끼같은 침묵은 순진한 상상을 사로잡는다. 조선인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산을 모르기 때문이다.(98)


7. 조선의 부인들의 경우, 만약 그녀가 지적이고 남편도 방탕하지 않는다면, 가정에서 상당한 권위를 누리며 종종 남편보다 강인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부인들은 습관에서든 이타주의 때문이든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고, 불행과 역경에 호락호락 체념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악착같이 일해서 비참함을 이겨낼 것이지만, 낙심하거나 게으른 남자는 싸우기보다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을 택한다. 여자들은 대개 고생이 많다.(140)


8. 제주도 여자는 특수어업에 종사한다. 남자는 집을 지키고, 여자는 바다에 들어가 어패류와 진주조개를 딴다. 그녀들은 작업할 때 나체로 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돼 있다. 그래서 제주도는 여자가 다스리는 섬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 해안에 일본어부들이 들이닥치면서 관습도 달라졌다.(143)


9. 서양에서는 은밀히 숨겨두곤 하는 재떨이, 타구(唾具), 단지(요강)도 가구의 일부가 된다. 작은 요강은 방 안에 요긴하게 쓰이는데, 마치 가마 안에서처럼 주인의 손에 닿기 좋은 자리에 놓인다. 용의주도한 하인은 항상 주인의 의도를 살피고, 또 때마다 작은 문을 열어 요강의 내용물을 골목에 뿌린다.(198)


10. 조선인들에게 음식량은 아무리 많아도 넘치지 않는다. '식욕은 먹으면서 생긴다'는 속담이 완벽하게 어울린다. 의사들은 소화불량을 치료하기 위해 고약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상류사회에서조차 가능한 많이 먹고 마셔 주인에게 예의를 갖춘다. 이 '고운 아침의 나라'에서 醉氣는 전혀 악습을 취급받지 않는다. 길가에서 주정꾼들을 매일 마주치게 되는데, 이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지그재그로 걸으며 어떻게 집으로 갈 것인자가의 문제로 골몰하며 고래고래 노래를 부른다.(200)


11. 조선인은 개고기를 즐긴다. 이 고기는 사실 그 명성이 대단하며, 조선에서 개는 대부분 식용으로 기른다. 딱 먹기 좋게 3년을 키우면, 그 녀석은 너무 똑똑해져서 귀신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까지 알 정도라고 한다. 이 가엾는 짐증을 잡으려고 목에 밧줄을 걸고 죽을 때까지 완력을 사용한다.(203)


12. 조리는 항상 원시적인 화덕에서 한다. 땔감으로는 나무를 쓴다. 옛날에는 집 안에서 불쏘시개를 계속 지펴놓았다. 이런 관습은 아시아의 다른 민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계속 타오르는 불에 대한 미신적 관념을 지키는 것 말이다. 조선에 일본 성냥이 들어오면서 이런 관습은 사라졌다.(203)


13. 이제 진고개로 왔다. 일본 동네의 중심지인데, 남산의 숲이 우거진 비탈에 기대있다...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서울 어느 곳도 이 동네만큼 청결하지 않고 치안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리에 폐허같은 곳은 전혀 없고, 발길을 돌릴 때마다 끔찍한 절름발이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 동네는 분명 시내에서 가장 쾌적한 자리일 것이다.(243)


14. 조선의 동네를 돌아다니려면 그 불결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이런 선량한 사람들에 둘러싸여서도 여전히 딱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호기심 넘치는 사람들 모두 남녀노소할 것 없이 끔찍하게 불결하다는 사실이다.(253, 291)


15. 숙소는 끔찍이 더럽고 잠잘 방은 말할 수 없이 시커맸다. 구들장 틈새로 빠져나온 연기에 그을린 탓이다. 악취도 불결함 못지 않았다. 벽과 골조에는 수천 마리의 파리 떼가 진을 쳤고, 돗자리에는 벼룩이 수두룩했다.(309)


16.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고운 아침'의 땅이 수백 년간, '발키리'처럼 경이로운 전설로 싸인 이불을 덮어쓴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이 잠에서 깨어나기란 고충일 뿐 아니라, 깨어나더라도 '잘 생기고 용감한 기사' 대신 탐욕에 굶주린 자들만이 곁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