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 (1-10)

by 찔레신 posted Ap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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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  1857년 7월 30일 - 1929년 8월 3일)은

노르웨이계의 미국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존 커먼즈와 함께 제도경제학의 선구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년)이 있다. 베블런은 1857년 교육 수준이 높은 노르웨이 이주농의 네 번째 자녀로 위스콘신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네소타의 노스필드에 있는 칼턴 칼리지에 입학하여 저명한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인 클라크(John Bates Clark)의 지도 아래 경제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 후 예일 대학교에서 포터(Noah Porter)와 섬너(William Graham Sumner) 아래서 공부하면서 1884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터로부터 그는 칸트 철학을 배웠으며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섬너로부터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 섬너는 당시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사회진화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불가지론자로서의 입장 때문에 그는 종교 단체와 관련된 학교생활을 소홀히 했다. 그 때문에 경제학에 대한 명성은 구축되지 않았다. 마침내 1891년 그는 코넬 대학교에서 로플린 교수(James Laughlin)의 관심을 얻었다. 새로 설립된 시카고 대학교로 옮겼을 때 그는 베블런을 동행시켰다. 거기서 베블런은 군집 생태학자 모건(Lloyd Morgan) 및 문화인류학자 보애스(Franz Boas)와 지적 교류를 가졌다. 또, 거기서 그는 듀이(John Dewey)와의 교류를 통해 그의 프래그머티즘을 접했다. 베블런은 이윽고 <정치경제학회지(Journal of Political Economy)>의 편집인이 되어 경제학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1899년 ≪유한계급론≫을 출간하여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그의 나이 마흔두 살이던 당시 상황은 록펠러, 카네기, 밴더빌트 등 탐욕스런 ‘강도 귀족’이 독점적 수탈, 사치와 향락으로 미국 경제를 주무르던 시대였다.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시카고 대학교와 마찰을 일으켜 그는 학교를 떠나야만 했으며, 그 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도 그러했다. 다시금 그는 미주리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뒤늦게 미국 경제학회가 회장직의 수락을 요청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경제학은 왜 진화적 학문이 아닌가?>(1898)라는 논문을 통해 경제학과 진화론의 관계를 제기했는데, 아래에 언급된 거의 모든 저술을 통해 그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초하여 경제를 이해하는 입장을 옹호했다. 스스로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간주하는 ≪제작 본능론≫(1914)을 포함하여, ≪영리기업론≫(1904), ≪기술자와 가격체계≫(1921), ≪부재 소유권과 영리기업≫(1923)을 출간하여 제작 본능과 한가한 호기심 본능에 따라 기술적 효율성과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기술자나 산업 계급(industrial class)과 달리 편법, 교활함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며 금융 구조를 교란하는 영리기업가들을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클라크 교수의 경제학≫(1919), ≪자본의 성질에 관하여≫(1908), ≪한계효용의 한계≫(1909)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비판하는 동시에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학과 그의 추종자들≫(1906, 1907)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또, ≪독일 제국과 산업혁명≫(1915), ≪평화의 본질과 그 존속기간에 관한 연구≫(1917) 등을 통해 평화를 위협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연구했다. 약탈, 지배, 낭비로 얼룩진 자본주의 체제가 세계 대공황을 맞이하는 시점을 앞둔 1929년 8월 3일, 위대한 진화적 제도 경제학자 베블런은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유한계급은 귀족계급과 성직자계급,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많은 수행인들과 시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한계급이 하는 일들이 그렇게 분화되어 있긴 했어도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상류계급의 남자들은 모든 생산활동을 면제받을 뿐 아니라 아예 규범화된 관습에 따라 생산활동 그 자체를 못하게 되어 있다. 한가롭고 비생산적인 상류계급, 즉 유한계급들은 정치, 전쟁, 종교의식, 스포츠 활동 같은 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유한계급제도는 원시적 미개사회가 야만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혹은 평화로운 생활습관이 호전적인 생활습관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출현했다. 이에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첫째는, 그 공동체에 약탈적 생활습관(전쟁, 혹은 대형동물 사냥)이 존재해야 한다. 둘째 공동체의 구성원 다수가 힘겨운 일상 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만큼 물자를 쉽게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원시적 사회집단의 활동은 명예로운 일과 생산활동이라고 불리는 두 종류의 활동으로 분화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생산활동이란 생산자가 기능적인 수작업으로 수동적인 질료를 새 목적을 부여받는 새 사물로 가공하기 위한 노력을 가리킨다. 반면 명예로운 일은 타인들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쏟았던 에너지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이다...명예로운 일과 비천한 일의 구별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와 부합하여 이루어진다...일반적으로 명예로운 일에 포함되는 활동영역은 더 강인하고 더 대담하며, 돌발적이고 격렬한 긴장을 더 잘 견디고 자기주장이 더 강하며, 치열하고 과격한 경쟁을 더 좋아하는 공격적인 기질을 가진 남성의 영역에 속한다.


-전리품인 여자를 적으로부터 강탈하는 관행은 소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관례를 낳았고, 그로부터 남성의 가부장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생겨나게 되었다...여자들에 대한 소유권을 기원으로 형성된 개념은 여자들이 생산한 물품에 대한 소유권도 아우르며 자연스럽게 확대되었고, 그때부터 인간에 대한 소유권은 물론 사물에 대한 소유권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공동체의 일상적 삶과 남자들의 사고습관을 지배하던 약탈활동이 생산활동에 차츰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축적된 금전이 약탈이라는 명예로운 활동에 전리품을 대신하여 우월함과 성공을 대표하는 인습적인 지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정착 산업이 성장하면서 금전의 소유는 명성과 존경을 부르는 근거로서 상대적인 중요성과 효력을 획득하게 된다.


-전문화된 하인들은 주인에게 봉사하는 실질적인 用役으로서보다 주인의 명성과 자존심을 증명하는 과시적 용역으로 더 큰 유용성을 지닌다...상류층 여인들과 그 하녀들이 누리는 여가는 대체로 주인에 대한 봉사나 가재도구의 유지관리를 위한 까다롭고 성가신 수작업의 형태를 띤다. (만일 유한계급 가문의 집사나 마부가 주인의 식탁이나 마차를 마치 쟁기질을 하거나 양떼를 몰듯 무식하게 다룬다면 , 이는 특별훈련을 받은 하인들의 봉사를 받을 능력이 주인에게 없다는 사실, 다시 말해 정확한 예법에 따른 특별한 봉사인력으로 하인들을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 노력, 교관을 투입할 재정적인 능력이 주인에게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생산성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노동만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여가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보조적-파생적 유한게급이 등장한다. 이 계급이 하는 일은 본래의 유한계급 내지 합법적인 유한계급의 명성을 보좌하기 위해 수행하는 대리적 여가활동이다.


-이들의 직무는 이 여가나 소비에 어울리는 주인, 그래서 훌륭한 명성을 얻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주인을 뚜렷이 명시하는 그런 예절, 또한 환경이나 표시로서 수행되어야 한다...부인의 여가활동도 대부분 일정한 노동이나 가사의무, 또는 사교활동 같은 위장된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그녀가 소득을 얻거나 자산을 운용하여 이익을 얻는 어떤 직업에도 종사할 필요가 없음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다른 목적은 거의 없다. 이처럼 가정을 산뜻하게 장식한 결과들은 가부장의 취향에 호소한다...왜냐하면 여가의 소비를 대행하는 습관은 속박된 피고용인의 변하지 않는 징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여성용 하이힐, 스커트, 거추장스러운 보닛, 코르셋과 같이 착용하는 사람의 편의성 자체를 무시하는 듯한 특징을 보이는 모든 문명화된 여성의 의상들은 현대의 문명화된 생활구조에서 여성들이 여전히 이론적으로는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하면, 남성이 소유하는 動産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품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이처럼 과시적 여가에 필요한 복장의 소비자로 자리잡게 된 이유는 분명히 대부분의 여성이 과거 경제적인 직업분화과정에서 주인의 지불능력의 일부를 위임받은 하녀의 신분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금력과시적 명성획득에 필수적인 요건들은 (1)생계조차 어려운 처지에서도 과시적 소비를 위한 금전만큼은 남겨두게 만들고, (2)당장 부족한 의식주를 해결하고 남은 모든 가용 에너지를 흡수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회전체에 걸쳐 일반적인 보수적 태도를 강화하는 태도를 낳는다. 유한계급 제도는 직접적으로는 (1)그 계급 특유의 타성을 통해서, (2)과시적 낭비와 보수주의의 규범적 선례를 선보임으로써, 간접적으로는 (3)그 제도 자체가 의존하고 있는 富와 생계수단의 불평등한 분배체계를 통해 문화의 발전을 저해한다...급진적인 개혁을 그처럼 필사적으로 견제하려는 노력에 대한 모든 비난이나 문제제기에도 아랑곳하지 읺는 본성을  지닌 유한계급의 격률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옳다'로 요약할 수 있다. 유한계급제도는 계급의 세력과 본능의 힘으로, 그리고 교훈과 규범적인 선례에 편승하여 기존 제도의 불완전성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 뿐 아니라 심지어 더욱 오래되고 낡은 생활양식으로 회귀하는 반동을 모색하기까지 했다.


-이상적인 금력과시형 남자는 이기적인 목적에 따라 재화와 인력을 비양심적으로 횡령하고 타인의 감정과 소망은 물론 자신의 행동이 미칠 간접적인 영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범법자와 같다. 그러나 그는 예민한 신분감각을 소유하고 있고 좀더 일관성있는 장기적 안목으로 간접적 목적을 위해 활동한다는 점에서 범법자와는 다르다. 이 두가지 전형적인 기질의 유사성은 스포츠와 도박, 그리고 종교적 열정에 대한 애착심과 목적없는 경쟁을 즐기는 경향을 통해 좀더 확연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