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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9 12:21

<을병연행록>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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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見秦皇萬里城 男兒意氣負崢嶸 湖一曲漁舟小 獨速簑衣此生 (19)


2. "그 주인과 말을 酬酌하고 싶었지만 입이 굳어 종시 나오지 않고, 또 그들이 하는 말을 유의해 들으니 그 구절을 쾌히 알아듣지 못하였다. 하인들이 서로 수작하는 모양을 보니 말 모양이 전에 알던 것과 많이 달라 예삿말도 통할 가망이 없을 듯해서 매우 답답했다. 그 알아듣지 못하는 사연을 건량관(乾量官)에게 말하니, 그가 이르기를 '첫번에는 원래 그러하니 날이 오래되면 차차 나을 것이고, 또 잘못함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만나는 곳마다 실없이 수작을 붙이면 자연히 익혀집니다'라고 했다."(46)

3. "그대 머리에 꽂은 修飾과 상투의 제도를 보고 싶은데, 남녀가 다른 까닭에 감히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지 못하니 안타깝구나!"(55)

4. "하고는 淸心丸 하나를 내주었더니, 그 여자가 손으로 받으려 하였다. 내가 머리를 흔들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고 땅에 놓아 집어가라 하였더니, 즉시 집은 채 아들의 손에 쥐어주고는 감사하다고 하며 나갔다."(57)

5. "대개 북경은 사람이 번성하여 商人을 별나게 숭상한다."(66)

6. "우리나라 사람이 말을 타고 뒤를 싸매는 거동을 보면서 모두 크게 웃으며 조롱한다. 대개 오랑캐 의복이 다 뒤를 트고 자락을 걷어 단추를 끼웠으나 안장에 앉아도 뒤를 쌀 것이 없고, 말을 탈 때에도 손수 고삐를 이끌어 평지 위에서 대수롭지 않게 올라앉아 고삐와 등자(鐙子)를 붙드는 법이 없다. 이러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똑똑하지 못하고 날래지 못함을 비웃는 것이다."(75)

7. "...다 평상시 모양이어서, 오랑캐의 제도는 모두가 간편함을 취한다 하였다...오문 밖에 나가서 使行을 맞을 때 무수한 관원이 다 물러나왔다. 추종(騶從)이 없이 손수 방석을 들고 나오는 거동이 극히 체모가 없이 보이지만 법도가 간략하고 또한 조정이 엄숙해서..."(101)

8. "이곳 연경에서 우리나라의 기상을 생각하니 蕭條하고 가련하여 절로 탄식이 나는 줄을 깨닫지 못하겠고, 심양의 번화함도 여기에 비하면 또한 쇠잔하기가 그지 없었다. 슬프다! 이런 번화한 기물을 오랑캐에게 맡기고 백 년이 넘도록 능히 회복할 謀策이 없으니..."(107)

9. "이곳은 온갖 구경을 하거나 아무 사람을 만나도 淸心丸이 없으면 인정을 얻을 길이 없었다...진짜 청심환 하나를 주면 문을 열어 보여주겠다고 하니.."(142)

10. "북쪽 벽 위 한 가운데 한 사람의 畵像이 있는데 여자의 像으로, 머리를 풀어 좌우로 느리우고 눈을 찡그려 먼 데를 바라보니, 무한한 생각과 근심하는 기상이다. 이것이 곧 천주(天主)라고 하는 사람이다."(162)

11. "몇 년 전에는 천주당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 가장 반겨하며 대접하는 음식이 극히 풍비하고 혹 서양국 소산으로 답례하는 선물이 작지 않더니, 근래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보챔을 괴로이 여겨 대접이 이리 落落하니 통분합니다."(191)

12. "그대가 친한 사람을 위해 辛勤히 구하는 것이 후한 意思이고, 그 구하는 사람은 나와 병이 같은 사람이니, 내가 어찌 안경 하나를 아끼겠습니까? 또한 사소한 기물로 어찌 매매를 의논하겠습니까?"(204)

13. 유송령이 묻기를, "대마도(大馬島)와 부산이 조선의 어느 현에 있으며, 근년에 왜국 사람과 서로 왕래를 통합니까?"(210)

14. 내가 말하기를, "王陽의 학문이 진실로 그른 곳이 있지만, 다만 후세 학자들이 겉으로 朱子를 숭상하며 입으로 의리를 의논할 따름이고, 몸이 행실을 돌아보지 아니하니, 도리어 양명의 절실한 의론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겠습니까?"(225)

15. "조선의 산천이 險阨하고 풍속이 狹窄하여 크게 일컬을 바가 없습니다. 다만 詩書와 예의를 숭상하여 오로지 중국을 모방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중국 사람들이 小中華라 일컫습니다."(229)

16. "내가 중국을 좀 구경해보니 지방의 넓음과 풍물의 盛함이 짐짓 천하의 장한 구경이고 사람의 마음속을 넓힐 것이지만, 오직 머리털을 베는 법은 차마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 가운데 조그만 나라에 있으니 우물물에 앉아 하늘을 보는 모양이어서 蕭條한 경색을 이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홀로 머리털을 보전하여 부모의 遺體를 헐지 아니하니, 이러한 일로 마음을 위로하여 다행히 여기는 것입니다."(137)

내가 "중국은 사방이 중국이고, 그대는 우리의 宗人인데, 그대의 머리 모습을 보니 어찌 마음을 썩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두사람이 서로 보며 대답하지 않았는데, 엄생은 매우 무안한 기색이고 반생은 희롱하여 말하기를, "머리털을 깎음에 매우 묘한 곳이 있는데, 빗으로 빗어 상투를 맺는 번거로움이 없고, 가려움을 긁는 괴로움이 없으니, 머리를 동인 사람은 이 재매를 모르는 고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299)

17. "우리나라 부인은 오직 諺文으로 편지를 전할 뿐이고, 어렸을 때부터 그 부모가 일찍이 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글을 하는 부인이 적을 뿐 아니라, 詩句를 지어 吟詠을 숭상하는 것은 더욱 부인의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지을 줄 아는 이가 있어도 감히 세상에 들리지 못하고, 혹 들림이 있어도 유식한 사람은 기특하게 여기지 않습니다."(263)

18. "도서는 각법(刻法)이 매우 아담하고, 옆에 연월을 기록하였는데, 乾隆 연호를 쓰지 않았다."(295)

19. "다만 평생에 생각하기를 의리를 窮究하는 것이 진실로 학문의 근본이라 했지만, 곁들어 術業을 배우지 못하면, 어찌 참 선비의 온전한 재주라 이를 것입니까? 그러나 재주가 용렬하고 성품이 게을러 지금 이룬 것이 없습니다. 東國의 거문고를 대강 알았으니 이것은 중국의 古樂이 아니고 오음 음률의 근본을 전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나마 算書와 兵書와 역법을 평생 좋아하였지만, 한 곳도 실로 얻은 곳이 없습니다."(306)

20. "이 渾天儀는 돌리는 법이 물을 쓰지 아니하며 옛 법과 다릅니다...사적을 기록하는 중에 대강 일렀지만, 이는 서양국의 자명종 제도를 취하여 여러 쇠고리를 서로 돌리고 아래에 무거운 추를 달아 절로 돌게 하였으니, 물로 돌리는 법에 비하면 매우 간편합니다."(400)

21. "순(舜)이 東夷 사람이고 문왕이 西夷 사람이니, 왕후와 將相이 어찌 종류가 있겠습니까? 진실로 하늘이 때를 만들어 이 백성을 편안히 한다면 이는 천하의 참 임금이라 일컬을 것입니다."(404)

22. "다만 형들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좋은 벼슬을 얻기를 원치 아니하는 것입니다."(415)

23. "조선은 大明 때부터 오로지 중국 문물을 숭상하여 의관 또한 옛 제도를 지켰는데, 다만 語法이 오히려 東夷의 풍속을 면치 못하니 매우 부끄럽습니다."(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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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신 2020.04.09 12:23
    *여기에 인용하는 글은 담헌의 <을병연행록>(<신해관에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돌베개, 김태준 외 옮김)에서 따온 것이며, 75회 속속 중에 강의 교재의 일부로 사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