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회 속속(2022/11/12)

by 윤경 posted Nov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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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족2.png                                                                                                                                                                                                    윤두서(尹斗緖)

                                                                                        옥(玉)에 흙이 믓어 길엿신이

                                                                                        온은이 가는이 흙이라 는고야.

                                                                                        두워라 알리 잇실이 흙인듯시 잇걸아.



공부의 기본기_ 귀족의 삶1)이란 무엇인가?

                                 1) 물론, 이 귀족의 삶이란 동무론203 페이지에서 기술된 다만 정신일 뿐인 귀족주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요즘 생활 속에서 어떤 부끄러움의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과의 대화 중에 느끼는 저의 헐벗은 말들로 인한 것입니다. 특히, 주의하고자 하면서도 번번이 좋다, 싫다, 맛있다로 발화되고야 마는 내용 없는 말에 대해 혀의 바보 같은 자동성을 탓해 보기도 하지만, 실은 혀의 탓이 아니라 단단히 운용하지 못한 생활과 공부를, 그러므로 결국 저 자신을 탓해야 하겠지요. 이런 마음으로 애써 만들어 가야 할 공부의 길을 궁리 하던 찰라, 이번 141회 속속을 통해 (개인적으로)생성된 질문인  귀족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해 봄으로써 저의 상황을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게 해 줄 공부의 기본기를 알게 되었기에 응해서 말하기규칙이 너를 구원하리라(자유롭게 하리라)’K선생님의 말씀으로써 이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정리에 쓰이는 많은 표현들이 이번 교재인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1장과 141회 속속에서 선생님께서 강의하신 말들에서 빌어왔기에 따로 인용의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으며, 선생님의 책과 강의 내용을 토대로 제가 이해한 것을 제 논리대로 정리한 바, 다시 읽어보니 선생님의 목소리와 제 목소리가 섞이는 측면이 있습니다_이를 일러 혼성모방이라고 하나요?)

 

귀족의 삶 1. 응해서 말하기

 

하고 싶은 말(A)을 하는 사람은 일종의 히스테리적 상태-그저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가볍게 고쳐 말해도 좋은-속에서 대상 선택에 실패한 채 (자기)동일시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랑해라거나 싫어라거나 닮았어라는 등속의 발화가 폭로하는 자리를 반복합니다. 대화시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 해야 할 말(B)을 하세요. A에서 B로 옮아가기 위한 훈련이 응해서 말하기입니다. 상대의 말/질문을 유심히 듣고, 그 말이 열어 놓은 길을 따라 들어가야 합니다. 응할게 없으면! 차라리 조용!!!해야 합니다(이 대목에서 저의 응하는 방식을 부끄럽게 돌아보게 되었고, 조용히 운신하며 듣기에 여념이 없는 동학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할 말을 다하지 마십시오. 특히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오직 상대의 말에 응해 유심히 듣고 무심히 말하도록 애써 보십시오.

   응해서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어진 텍스트를 야무지게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사전을 가까이하여 용어나 개념을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암송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자유는 전통에 의지한다는 마이클 폴라니의 말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은 과거(전통)를 암송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회의 정신적 품위는 선배들이 이룩한 성취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 바탕 위에서 자신의 글을 쓸 수 있는 것 속에 있으며 글과 말을 인용하며 말하고 쓸 수 있는 것이야말로 귀족적인 능력입니다. 많고 좋은 지식이 잘 쟁여지고 시간을 얻어 발효하게 되면 반드시 그 정신은 터지고, 트일 것이나, 이론들과 그 문장들을 차곡차곡 쟁여놓고 있지 않으면 제 경험의 관견과 이데올로기화한 상식의 틀 속에 안주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다음으로 응해서 말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단락을 동무론210 페이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뜻하는 듣기는 극히 능동적, 생산적, 창조적인 것이다. 이 듣기가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이유는, 단적으로, 그것이 그간 은폐되거나 억압된 것, 놓쳤거나 흘린 것들까지 집요하고 부드럽게 끌어내어 말하게 하는 현실적 계기와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마치 풍경이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처럼, 말은 그 말의 풍경의 비밀을 아무에게나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듣기는 단순히 말하기를 위한 절차나 그 배경 장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듣기는, 화자의 몸을 깨우고, 그 정신을 섭동케 하고, 그 무의식을 해방시켜서 자기 아닌자기, 자기보다 자기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한다.

 

   응하기는 오직 대화하는 현재의 순간 속에서 영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학(下學)의 기초는 근사(近思:높고 먼 이상보다 자기 몸 가까운 곳을 생각함)와 더불어 우선 현재를 살아내는 일이며, 상달(上達)조차 그 현재를 대하는 방식, 그 현재에 응하는 방식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여기에서 바로 응할 수 있는 것, 여기에는 차마 하학과 상달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번 속속 조별 토의의 시간, 명명실에서 동학들과 나눈 이야기들은 순간이 영원으로 화하는 짧은 체험이었습니다.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1장에서 염출해낸 낭독적 형식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좋은 물음과 이에 긴절하게 응하는 동학들의 태도(네 동무들을 네 시간인 것처럼!_ 동무론, 217)와 말은, 좋은 물음으로써 정신의 길, 혹은 말의 길이 트이는 한 순간이자 영원이었습니다.

 


귀족의 삶 2. 규칙(규율)이 너를 구원하리라(자유롭게 하리라)

 

지식은 오지만 지혜는 머뭇거린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방대한 양의 사실을 집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면 고된 노동의 훈련, 경험의 담금질, 그리고 성숙이 필요하다(Calvin Coolidge)

 

여기서 규칙은 물론 자기 규칙, 그러니까 괴테가 얼마간 귀족의 품새를 품고 말한 바 바로 그 자기 명령입니다. 즉 성인(聖人)에 이르고자 하는 공부로써 자기를 규제하는 정도의 수준이 된 이들에게서 스스로 발휘되는 규칙을 말합니다.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의 비밀은 필경 그 명령이 자기화하는데(스스로 명령하지 않는 자는 늘 노예로 머물게 된다) 있습니다. 규칙은 겉을 묶는 연극적 실천인데, 이로써 속의 가능성이 열려 숨은 충동에 얹혀 있는 자아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규칙을 설명하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물이 담긴 잔을 예로 들어 주셨습니다. 여기 물(기분, 생각, 감정 등의 에고)이 담긴 컵(규칙)이 있습니다. 물이 마음대로 흐르는걸(에고의 분출) 컵이 막아주는 것처럼, 규칙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마구 분출되었을 에고를 규칙이라는 컵 안에 갈라놓음으로 에고가 그 사람의 전부가 되지 못하게 해줍니다. 즉 규칙은 스스로를 메타화 시키면서 에고와의 결별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렇게 규칙을 통해 에고를 넘어가서 주체를 재구성하다 보면 의무와 쾌락이 일치하는 지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즉 실력이 쌓이면 몸이 규칙을 넘어가 규칙에서 해방되는 차원에 이릅니다. “자기(自己)는 복종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해야 한다는 푸코의 말은 규칙으로서 자신의 몸을 얽어매어야(어떤 틀 속에서 담금질 되어야) 함을 의미하며, 이것은 자유로써 주체를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체화는 정신의 기획이 아니며, 오직 하나의 규칙(생활양식윤리복종) 속에서 주체는 갱신되고 부활할 수 있습니다. 즉 얽어매어야 풀려난다는 역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