踏筆不二(11) 米色

by 遲麟 posted Apr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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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색(米色)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도정기에서 껍질이 벗겨져서 쏟아져내려오는 쌀, 바닥에 놓인 붉은자주색 고무 다라이에 쌓이던 쌀의 색에 홀딱 빠져서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 마음이 아주 환해졌습니다. 쌀에서는 맑고 고소한 냄새가 났습니다. 쌓인 쌀에 손을 넣어보면 온기는 온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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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또한 조개와 눈과 학의 빛깔을 알지요, 깜짝 놀라지 않고도 찔레꽃 흰빛을 웃으며 지나가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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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를 공부하면서 우연히 읽게 된 아래 열반경(涅槃經)의 한 구절 앞에서, 아 내가 쌀색은 알아도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먹었던 엄마 젖빛(乳色)은 영영 모르는 것이구나, 나를 먹여살렸던 그 빛과 냄새는 기억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구나,(意不能得識其乳色)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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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涅槃經說

如盲人不識乳色

他人爲說展轉

譬喩貝米雪鶴

意不能得識其乳色

그러므로열반경에서말하기를

맹인이젖빛을알수없는것과같이

다른사람이조개,쌀,눈,학을비유로써위하여펼쳐전해말해도

의미로는그유색을깨닫지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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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어느 정도는 맹인이 아닌가 합니다.

맹점(盲點)이 있는 것처럼요.


*

내가 영영 알지 못하는 곳에만 있는

나를 먹여살리는 것들을 잠시

불가능할지라도 

헤아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