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의 어떤 기억

by 해완 posted May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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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에게 직업은 세상과 접속하는 통로이고 창이다. 치료라는 매개로 타인들을 만나 긴장하고 갈등하며 기뻐하고 괴로워하며 세상과 대면한다. 매일 비슷한 치료와 일과의 반복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성격과 사정을 가지고 있으니 이야기는 매번 새롭다. 남들이야 웃든 말든 오랜 시간 일해온 내 일터는 온전한 하나의 세계로서 나에겐 성소와 같다.
얼마 전 일이다. 3년 전쯤부터 몇 개월마다 치과에 오다가  이번에 거의 일 년이 넘어 내원한 중년의 여성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 분에게 치과를 소개한 남편의 안부를 여쭈니 지난 겨울, 혈액암으로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 남편분의 챠트를 찾아 보니 여러 장이 포개져서 꽤 도톰했다. 2004년, 근처 직장에 다닐 때 처음 내원한 기록으로 시작되어 꾸준히 오시다 은퇴 후에도 주기적으로 계속 내원했고 나중엔 그의 부인과 아들까지 소개시켜 주셨다. 그런데 나는 그의 이름과  얼굴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왠지 '그'라는 사람의 기억이 특별한 게 없고 어렴풋하기만 했다. 치료 기록이 마치 그의 삶의 일부인 것 같아 애도하듯 천천히 살펴보니 흐릿하던 그의 모습 전체가 점점 또렷이 다가왔다. 늘 깔끔하고 단정한 옷 매무새에 말투는 조금 느리고 차분했고,  눈빛과 태도가 모두 부드럽고 완만했다. 약속시간도 잘 지키고 불평도 크게 안했으며  한번 설명하면 주의깊게 들었고 구강관리를 가르쳐 드린대로 아주 잘 하여 나중엔 거의 최소 유지치료만으로 충분한 상태가 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내게 너무 ' 편한 환자'였다. 그래서 따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니 그렇게 오래 치과에 다녔음에도 기억마저 흐릿했던 것이다. 나는 늘 힘들고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치료가 끝나도 오래도록 생각하면서 그 괴로움을 되새기며 분투를 다짐하곤 해왔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큰소리로 주장하지 않으면서 배려하는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다시 생각하지도 별로 감사해하지도 않으며 지내왔던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맑은 눈으로 살피면 어디에나 있다. 과장과 현학과 설된 주장의 높은 목소리들 속에서 조용히 배려하므로 우리는 잘 알아차리지도 주목하지도 못할 뿐이다. 그런 이들은 오직 부재함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영혼이 있다면 내가 그를 큰 감사함으로 오래 기억할 것이라는 것으로 조금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