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問(4) 거울놀이

by 敬以(경이) posted Oct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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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의 두 배로 확대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소유한 거울 노릇을 해왔습니다

 (...)문명사회에서 거울의 용도가 무엇이건 간에 거울은 모든 격렬하고 영웅적인 행위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폴레옹과 무솔리니는 여성의 열등함을 아주 힘주어 강조합니다. 만일 여성이 열등하지 않다면 거울은 남성을 확대 시키기를 그만둘 테니까요. 그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아주 빈번하게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일면 도움이 됩니다. (...) 


 

빵을 부숴뜨리고 커피를 저으며 이따금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거울속의 환영은 활력을 충전시키고 신경조직을 자극하기 때문에 최고의 중요성을 가진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아 보십시오그러면 남성들은 코카인을 빼앗긴 마약 중독자처럼 죽을 것입니다. 버지니아울프  [자기만의 방] ,   이미애 옮김,  도서출판 예문,   1996,   57쪽>


  누군가의 거울로 사는 것에 익숙한 여성인 저는 어떤 선택조차 불안해 하곤 합니다.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주술을 거는 듯한 반복적인 말들로 확인(승인)을 받아야 마음이 놓이는 건 마치 거울의 잔상(殘像)같아 보입니다.   가능하면 홀로 책임져야 하는 선택들은 뒤로 미루고 연합을 이루는 선택을 할때  또한 그렇습니다.    연합에 있어 친밀함은 도움이 되는 재능입니다.   물론 이것은 남성의 힘이 더 잘 작용하는 사회가 쥐어준 모습일것입니다경험되어진 약함은 당연히약할것이라 믿어 버림으로 스스로를 마비시키고 있는지 모릅니다그렇게 홀로 책임져야 하는 선택을 거부하는 장소에 배치하고 머무르며 순수함(innocent)-악의 없는 무지(無知)함을 부표(浮標)삼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없다는 것 또한 이미 거세 당해버린 욕망의 부재를 궁금해하며 시작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거울삼아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들은 남성-여성에게만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보입니다혼자 살수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거울삼는 것이 과연 피할수 있는 일일까 하는 생각도듭니다특히 몸()없이 말과 말만이 존재하는 대화의 자리에서는 조금더 선명해집니다부모-자녀, 어른-아이, 선배-후배, 언니()-동생 어떤 관계에서도 무엇이 있어야 한다생각이 시작 되는 순간 거울은 등장합니다

 

  대화의 상대를 탐색하고 저자신이 상대보다 뭔가를 더 알고 있다고 느낄수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해 했던 탐색의 대화들도 생각이 납니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지도 않은데 가르치려는 의욕만 강했던 어떤 대화들도 생각납니다돕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대화에는 상대가 사라지고 저 자신만 남게되는 어떤 대화들도 생각이 납니다.  어긋남은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그 어긋남에도 늘 눈먼나가 있습니다.

알고 있다거나 모르는 너에게를 지우기에는 몸에 가득히 베인 말들이 언제나 이미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낯선 외국어의 시()시간은 툭 튀어나올 말들을 가라앉힐 좋은 매체가 되어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버지니아울프.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