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房淡素 (차방담소)-4

by 효신 posted Oct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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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명재의 가을, 창 밖으로 감나무가 보이고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리게 지나갑니다. 풍경은 고양이의 느린 걸음으로 한결 부드러워지고 어여뻐집니다. 그리고 곧 어둠은 그곳을 차분히 물들이고, 푸짐하고 건강하며 성실한 그들의 저녁식탁이 나의 저녁과 더불어 편안한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실가온의 청귤청과 커피향 그윽한 원두, 희명자의 고구마, 연니자의 국수가 언시(焉市)의 공간을 채우고 다시 비워집니다. 공부길의 장소는 숙인들의 부지런한 손길로 닦여지고 씻겨지며 매끄러워집니다. 가야할 사람들은 분주해지고 바람은 다시 잠잠해집니다.

차방에 남은 우리들은 방풍차를 마십니다, 홍차를 마십니다, 진진과 영도의 김치부침개를 맛나게 먹습니다. 어디 먼 강기슭 노을을 바라보며 걷는 것 같은 꿈 속입니다. 에 대한 꿈, 꿈에 대한 , 달라지고 바뀌어야 할 공부를 몸에 얹고 부유하는 사유를 붙드는 우리들의 찰진 낭만도 헤겔의 시간성에서는 어떤 부표(浮標)가 될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그러한 낭만도 쓸쓸하고 나직하게 끝나, 또 다른 시간을 잇는 누군가에게는 낯설지만 또한 아름다운 표적(表迹)으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헤겔의 시간이 우리에게 와 닿은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