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19.10.24 20:46

踏筆不二(1)

조회 수 165 추천 수 0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KakaoTalk_20191024_084237091.jpg




하지만 종교와 수행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공부'가 담고 있는 집중은 (역시 앞서 지적했듯이)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적' 계기의 성격을 넘어서고, (아무래도 모호한 말인) '초월적' 차원을 품어낸다. 나는 이 차원을 '새로운 과거'라는 표현으로 차별화하는 게 편리하다고 본다. [집중과 영혼] 237


추모(追慕) 받지 못하는 과거들(증상/귀신)이 깊고 먼 곳에서부터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만큼 위태로운 상황은 없을 것입니다. 

시 열렸던 천산족 모임의 공부(床)이, 그곳으로 돌아온 [것]들의 해원(寃)이 되는, 우리가 집중하여 공부한,  '새로운 과거'(미래)의 장소였는가, 10월 천산족 모임의 간단한 후기를 적으면서 살펴봅니다.  



  • ?
    토우젠 2019.10.27 02:00
    약을 필요로 하듯, 말을 찾아 헤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찾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말들과 접촉하고 싶어 돌아오는 증상과 귀신이 있습니다. 해원은 스스로의 힘으로부터 비롯되나 맞이해주는 장소와 존재가 없다면 그 또한 먼 일이겠지요.
    회명재 뒷산에 산책로가 있었습니다. 더 걸을 수 있으나 발걸음을 돌리는, 내부의 질서와 외부의 부름에 순응하는 힘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을 함께 걸어도 좋겠습니다.
  • ?
    遲麟 2019.10.27 20:48
    "내부의 질서와 외부의 부름에 순응하는 힘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 ?
    허실 2019.10.31 23:50
    나의 공부가 누군가를 불러들여 해원하는,
    나의 개입이 누군가를 불러들여 돕게되는,
    불러들였지만은 동시에 불려져가게도 된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