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25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고 박()한 자의 기쁨()

수 잔(邃 潺)

 

"천박함이란, 반드시 자신을 '과시'하려는 심보나 태도에서 생긴다. 얕은 개천은 천()하고 박()하지만 결코 천박하지 않다. 너댓 살 짜리의 말과 행동은 뻔하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일러 천박하다고 평하지는 않는다."1) (k선생님,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말씀처럼 저의 자득이 천박해 지지 않도록 '과시'하려는 심보나 태도를 죽이고 천()하고 박()한 사정을 알리어 그 속에서도 얕은 소득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 저의 자득을 보살피는 행위임을 글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작은 소득을, 자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공부하라'고 하면, 우선 그것은, 규칙적으로 달리기나 윗몸일으키기를 한다거나, 걸어 다니면서 일체 타인의 얼굴을 구경하지 않는다거나, 약속에 견결하라거나, 사린(四鄰)과 새 관계를 꾸며보라는 등등의 얘기다. 혹은 타인과 더불어 있는 곳에서는 핸드폰을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작고 허무한 일들에 극도의 정성을 들인다거나, 질투와 시기를 자근자근 밟아 죽인다거나, 자신의 말하기나 앉기 등을 개선한다거나, 애착이 아니라 정성어린 연극으로 사랑한다거나, 차분함과 비움을 얻어 화를 내지 않도록 애쓴다는 것 등등을 하라는 뜻이다. 우선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2)(k선생님,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장숙에서 엉덩이로 버티며 지내온 시간이 어느 덧 27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시간동안 제 깜냥껏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오며 지내왔는데 그것은 작은 실천들이었습니다. 성악을 전공한 제게는 이론 공부가 생소하고 어학공부는 엄두도 못내는 처지라 그저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들 중에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잡아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행한 것입니다.3)이전 137회 속속시간에 선생님께서는 학()과 습()의 비율을 4:6으로 하라는 교칙을 말씀해 주셨는데, 돌아보면 저는 1:9, 혹은 2:8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그런데 이러한 작은 실천이 시간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시숙(時熟)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필연성에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4)(한나 아렌트,인간의 조건)

 

시숙에 대해 조금 알아가게 되는 시점에 이 문장은 저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오전 3시간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한나 아렌트의 교재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이 문장을 만난 순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제 처지를 알게된 것입니다. 새삼스런 앎, 이것은 아마도 장숙에서 엉덩이로 버티며 얻게 된 앎일 것입니다.

 

"수컷 일반이 잘 배우지 않(못하)는 원인은 여러 맥리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생리화학(physicochemistry)의 갈래에서는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 호르몬의 효과 속에서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동물행동학의 맥락 속에서는 순위제(dominance system)를 둘러싼 사회적 행태가 이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한국-남자들이 공부하지 않(못하)는 원인은 이들 중 열에 아홉은 그 직업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건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의 꿈은 건달의 길과 매섭게 나뉘지 않는데, 그 길은 아무래도 공부길이 아닌 것."5)(k선생님,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이렇게 처지를 알게 되니, 제가 원하고 지향했던 목표도 다름 아닌 세속적 성공욕에 얹혀 있다는 사실을 깨단하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쓰리고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장숙에서 위기지학(爲己之學)하기 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부가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공자의 이 문장처럼, 이러한 과정이 공부하는 제게 기쁨()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학()과 습()의 비율을 교칙대로 조금 수정해서 비근한 것부터 공부하여 마음으로 깨닫고 몸소 실천하도록6)(이황)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 기쁨()을 조심스럽게 누리고 보살피며 또 다른 기쁨()을 마주할 수 있도록 일매지게 정진하겠습니다.



-----------------------------------------

1) k선생님,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늘봄, 2022, p229

2) k선생님,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늘봄, 2022, p81-82

3) (경건한 자세로 하루 시작하기, 적경(寂敬)하기, 신발 가지런히 놓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타인의 얼굴 구경하지 않기 ... 등등 최근에 실천으로는 이기는 버릇 구성하기)

4)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한길사, 이진우 옮김, 2015, p203

5) k선생님,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늘봄, 2022, p139

6) 선인들의 공부법, 창비, 박희병 편역, 1998, p100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0 '밟고-끌고'의 공부길,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lector 찔레신 2023.02.05 120
249 길속글속 146회 연강(硏講) --- 해와 지구 그리고 달 1 file 수잔 2023.02.03 157
248 낭독적 형식의 삶 9 file 는길 2023.01.31 399
247 정신을 믿다 file 는길 2023.01.15 192
246 145회 속속 별강문 게시 1 유재 2023.01.06 163
245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청라의 독후감 1 찔레신 2023.01.03 297
244 금요일 아침, 알면서 모른 체 하기에 대한 단상 실가온 2022.12.30 153
243 <장숙>, 2023년 (1-3) file 찔레신 2022.12.26 255
242 <적은 생활...> 서평, 중앙일보 양성희 기자 찔레신 2022.12.12 178
241 별강 아름다움에 관하여 零度 2022.12.09 146
240 [一簣爲山(19)-서간문해설]與李儀甫 1 file 燕泥子 2022.11.28 111
239 별것 아닌(없는) 아침일기 (142회 속속 자득문) 수잔 2022.11.24 161
238 essay 澹 6. 타자성과 거짓말(141회 속속 별강문) 1 肖澹 2022.11.12 248
237 길속글속 140회 별강 ---그대, 말의 영롱(玲瓏) file 지린 2022.10.28 217
236 139회 강강.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늑대와개의시간 2022.10.19 182
» 138회 자득문, <천(淺)하고 박(薄)한 자의 기쁨(悅)> 수잔 2022.10.19 256
234 130회 강강, <허리편> 수잔 2022.10.19 153
233 139회 별강 <리비도적 애착관계를 넘어 신뢰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1 簞彬 2022.10.13 256
232 [一簣爲山(18)-서간문해설]與宋雲峯仲懐書 3 file 燕泥子 2022.10.04 251
231 <동무론>, 전설의 책 ! 3 file 찔레신 2022.10.04 329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