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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한 예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속속을 그만 둔다면 글쓰기에서 넘어질 것 같다는 계속된 불안이었습니다. 불안은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길을 잃은 아이 같은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2년 6개월의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온 것은 저에게는 큰 성과입니다. 속속공부에서 선생님께 배운 이론과 개념들 그리고 장숙의 형식들은 저를 조금이나마 변화시켰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 . 인간과 언어의 관계에 대해 배웠습니다. 언어의 존재론적인 힘 그것으로 나 자신을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써 마음을 잡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어휘로 새 길을 낼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성장하는 저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2. 사린(四隣)과 개입의 윤리를 배웠습니다.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알았고 내 주변의 것들과 이미 나는 깊게 관계되었음을 배운뒤로 사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살아온 습성이 굳어져 곧 잘 잊기에 많은 부분을 놓칩니다. 그러나 존재론적 겸허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 생명이 존재하기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무거워집니다. 들깨밭의 잡초 하나도 고추밭의 벌레들도 집 앞 하천의 악취도 길고양이의 눈빛도 사소하지 않습니다.


  3. 라캉과 프로이트를 배우며 인간의 욕망 구조와 그 배치의 문제를 배웠습니다. 

"나의 진실은 타자의 자리에 있다"라고 하는 명제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나의 욕망을 내 자리에 배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욕망에 고착되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통해서 제 욕망을 들여다봅니다. 세속의 욕망에서 한발자국 걸어나와  공부로써 생활양식으로써 저를 구제하고 싶습니다


  4.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생각'이라는 상상계에서 허우적거리며 나오지 못하여 타자, 사건에 다가가지 못하는 저를 보았습니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에고의 방에서 원을 그리며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자아는 증상처럼 구조화 되어있다"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증상과 함께 근근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절망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것이 더 쉬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돕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길은 호오를 벗어나 힘겹게 '몸을 끄-을-고' 나아가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긋남의 절망과 어긋냄의 상처를 넘어서.'


  5. 여성의 삶을 돌아보는 공부를 통해 또 한 번의 절망과 또 다른 희망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사회적 약자이기에 알 수 있는 나의 위치성, 오히려 그것을 통해 여성은 새로운 길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여성과 남성 둘 다 소외시키지 않는 제3의 길에 대한 희망이 조금은 생겼습니다. 상처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어리석음으로 가지 않고 지혜와 성장으로 가는 길들을 그려봅니다.  힘든 길이지만 여성들이 연대하여 앞장서서 가야함을, 그 몫을 견뎌야만 함을 배웠습니다.


  6 "공부하면 억울한 지점을 넘어갈 수 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어느 지점에서는 약자 일수 있고 피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공부의 힘과 가치로 세상과의 불화, 원망, 슬픔, 상처를 뛰어넘는 어떤 길을 그려봅니다.


  7. "외부는 내부의 형식이다"라는 개념을 배웠습니다. 내가 만든 세계가 내 마음의 세계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 말과 글이 내 책상이, 부엌이....

  마음이 아닌 형식을 돌아봄으로써 저를 다시 돌아봅니다.

  8.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아닌 세상에 없는 관계인 동무에 대해 배웠습니다. 안심할 데가 없고 위험한 관계이지만 오직 동무됨을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미래적 연대를 꿈꿀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이들은 슬기와 온기와 근기로 그(그녀)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서로에게 비평이 되어 서로를 성장시켜야 함을 그 동안의 시간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이 시간들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동무들의 존재가 있어 큰 힘이 되었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2년 6개월의 과정이 저에게는 성과이자 동시에 위기입니다. 여전히 상처입기 두려워하는 자신을 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분명히 2018년의 저는 아닙니다. 힘겹게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시간이 가져다준 앎과 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 시간 속에서 놓친 것들은 되돌아와 무거움과 불안이 되어 저의 어깨를 짓누르기도 합니다. 결국 제가 놓친 것들을 통해 뒤늦게나마 자신을 돌아봅니다. 외면하려 했던 것들, 몸에 내려 앉히지 못했던 생활과 공부들, 저항이라는 심리의 방에서 허우적거리며 낭비된 시간과 에너지들이 보입니다. 애써 변명도 해보았습니다.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공부론>에 "타자성은 일종의 폭력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폭력적 개입이 없이는 필경 공부에 이르지 못한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와 몸에 내려앉히지 못했던 공부와 생활들은 타자성이라는 다가갈 수 없는 외부로만 인식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공부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새삼 알 수밖에 없었고 그 길을 가는 과정과 그 비용을 치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봅니다. "공부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이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또 한 번 무겁게 다가옵니다. 절벽의 끝에 서 있습니다. 비용을 치르기를 두려워하는 나와 새로운 존재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아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기지학의 공부로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한 발 나아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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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신 2020.09.03 21:02

    *지난 세월의 공부를 짧은 글 속에 잘 정리하였군요. 회옥(懷玉)은 곧 '마음의 연금술'입니다. 이후에도 공부로 묶은 한 마음(一心一意)이 잔잔하고 깊이 커갈 수 있기를, 좁은 길 속의 산책이 아득히 유유(悠悠)하기를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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