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공자를 배운다는 것
부제 : 訓(이야기 함으로), 誨(빛을 비춤으로), 敎(본받음으로)
인간이 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환경으로부터 형성 된 물적, 정신적 토대가 서로 조응하며 역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조응의 역사에서 개개인의 의식은 서로의 의식으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회적 의식체계로 확장됩니다. 확장된 의식체계는 다시, 개인에게 영향을 행사합니다. 이는 곧,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총체성을 확보하며, 한 사회의 ‘정체성’으로 작용합니다. 정체성으로 작용하는 의식체계는 대게, 특정의 큰 정신적 줄기에 의지해 형성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기에 극동아시아 일대에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체계로서 형성 된 정체성을 논할 때, 큰 정신적 줄기로서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에서 개화開花 된 공자라는 정신을 우선하여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주희朱熹 이후)성리학을 만개滿開시킨 이 땅(조선반도)에서라면, 개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의식적이었든 의식적이지 않았든, 공자를 시원始原으로 둔 유교적 자의식으로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고 구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조선의 명맥을 잇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정체성이, 유교의 영향아래 형성되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물론, 공자의 유교(원유)와 조선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써 기능했던 유교는 같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공자가 걸었고 공자의 제자들이 뒤따랐던 정신의 족적을 소실 한 채, 허울이 만들어 낸 폐해로 사회 시스템 전체를 병들게 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옛 것에서 새로운 길을 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길을 탐색하기도 전에 우리 스스로 ‘옛 것의 문을 닫아 버’린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닫힌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길 뿐, 가부장제라는 허울을 뒤집어 쓴 폐해는 여전하여, 그 그늘 아래 운신하는 여성과 남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女/男은 가부장제의 폐해로부터 결박된 채, 높아져가는 역사 수준, 인권 수준과의 어긋남에 발이 묶이고, 미래로 나아가지도 과거에 머물지도 못하는 억울함의 자리(원망怨望)를 만나게 됩니다.
원망의 자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전의 자신이 몸을 얹어 놓았던 사회적 의식체계는 이미 몸과 습합되어 자기 정체성으로 활동하기에, 알아채고 이탈하려는 순간 체제의 저항을 안/팎으로 겪게 됩니다. 안/팎의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기능해오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의 자기부정은 무기력 혹은 퇴보의 길을 가게 합니다. ‘남을 아는 것은 지혜롭다(知人者智)’, ‘스스로를 아는 것은 밝다(自知者明)’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교의 시원始原을 만난다는 것은, 무턱대고 미워하던 유교,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으로서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잔재 아래서 상처받았기에 미워했던 유교로부터 잠시 원망의 감정을 뒤로하게 하고, 밖을 알기에 안을 알고 안을 알기에 밖을 아는 ‘환기되는 자신(知人者智 自知者明)’을 조우하게 합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공자라는 정신과의 만남은, 자기의식의 밑절미를 이룬 이데올리기의 겉껍질을 토파討破하고, 그 이데올로기의 낯에 가려진 유교의 알짬을 알게 합니다. 그렇기에 유교의 기원(정신)을 만남으로 생성되는 (이데올로기화 된)유교에서의 이탈은, 유교를 토대로 하되 기존의 유교와는 다른, 자기부정을 우회하는 새로운 길을 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