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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찻물을 올리고 라디오를 켠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북한산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집 안 청소를 끝내고 컴퓨터를 켜서 수업자료를 확인한다.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휴대폰과 가방을 집어 든다.

천안 아산행 열차에 몸을 싣자 긴장이 풀린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창밖을 바라본다. 수확이 거의 끝난 논에는 흰색의 원형 볏짚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책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매달 격주로 천안에 간다. 장숙(藏孰)이 있는 곳이다. 처음 고양에서 시작하여 서울 해방촌으로, 작년에 다시 천안으로 이사를 하였다.

천안으로 옮긴 후에는 결석을 자주 하였다.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게으름이 주는 편안함도 있었다.

 

8월에 삼십여 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했다.

새로 전보 받은 학교에서 사람에 대한 실망이 컸다.

아이는 불러서 가르칠 수가 있지만 마흔이 넘은 어른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일찍 출근해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집중과 영혼》을 낭독했다.

점심식사 후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4월의 봄 햇살은 잔인하도록 눈부시고 따사로웠다.

 

시간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지친 몸을 끌고 다시 천안으로 갔다.

신발을 벗고 장숙(藏孰)의 숙인(熟人)들을 보는 순간, ‘! 왔구나…….’

몸을 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체감하였다

  

정오(正午)에 시작한 공부는 밤 9시에 끝난다. 자정(子正)이 다 된 시간에 집에 도착한다.

 

퇴직 후에는 결석하지 않는다. 약이(約已)라는 학명(學名)을 선생님께서 주셨다.

약이(約已)-낭독(朗讀)과 신독(愼獨), 경행(經行)의 생활양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묶어 삶의 가능성을 실천하라고 하셨다.

 

놀라운 이 생명과 정신의 도정에서 공부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인간은 이 광대무변한 시공간 속에서 구원의 소식이 될 수 있을까?”

                                                                                                                                              (집중과 영혼서언)

 

공부하기에는 한참 늦은 나이지만 나 자신을 알기위해서, 아니 되기위해서

 

約已, 장숙(藏孰)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