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와 공부
공자는 40세에는 불혹(不惑)이라고 말을 남긴 바 있는데, 세속에서 나의 에고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기나긴 군사정권이 끝나가고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한 90년대와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젊은 우리는 기성세대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하며 자유와 개성을 외치기 바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자유로운 삶과 영혼을 꿈꾸며 자아실현을 하고자 애썼다.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인격자의 자아는 세속의 제도와 명예와 부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이었다. 어른만 되면 나도 이들처럼 한평생 호탕하게 살다 가리라 호기를 부렸지만 마흔을 넘어서도 불혹은커녕 세속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갈등과 정념에 쉽사리 흔들리는 에고는 나의 존재를 불안하게 하였고 꽤 오랜 시간 실존적인 문제였다.
훌륭한 성인들의 지혜를 통해 실존적인 문제의식을 해결하고자 했지만 에고를 붙잡는데 별 소득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장숙에서 공부하며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초창기에 장숙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 ‘변명’ 과 ‘실력(깜냥)’이었다. 공부하는데 중요한 것이 변명하지 않는 것, 깜냥을 키우는 것임을 자주 강조하셨고, 그때 숙인들과 나는 처음 듣는 말처럼 변명과 깜냥 두 단어를 자주 되뇌이며 주고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어느 새 다른 숙인들처럼 나의 에고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왜 에고는 변했을까? 과거와 장숙에서의 나는 무엇이 달랐을까?
과거의 에고는 자유와 평안을 찾으려했지만 그것은 불안으로부터의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고 변명하는 태도와 다름없었다. 실력을 키운다는 것은 삶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고 능동적으로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었다. 특별하지 않는 상식적인 말들이지만 선생님의 생활양식과 만나 좌충우돌하며 에고가 조금씩 변하게 된 특별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에고는 자유가 아니라 틀이 있어야 성숙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틀은 자유나 마음이 아니라 '몸이 좋은 사람(k선생님)'이 되는 게 먼저이다. 장숙에서는 응하면서 잘 듣고, 말을 낭비하지 않는 것, 인사 잘하는 것, 화장실에 흔적 남기지 않기, 신발을 가지런히 놓기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하지 않다. 상식적인 일을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