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미학, 그 직관의 토양
내이(內而)
솜씨
공부자리가 열리는 날, 장숙의 차방 한편에는 숙인들의 옛 물건들로 채워진 작은 벼룩시장 언시(焉市)가 섭니다. "갈수록 더 많은 희생물들을 죽였던 아스텍족과 흡사하게, 지구의 자원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르네 지라르 『문화의 기원』104쪽)"고, "한손으로 물건을 사고, 다른 손으로 내던지(르네 지라르 『문화의 기원』105쪽)"며 즐거웠던 우리는 문득, 그 행렬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어찌 언(焉)'이 이끄는 사잇길로 나섰습니다.
'어찌 언(焉)'은, 아직은 속죄도 반칙이라며 그저 걸어보라고, 걷다보면 때가 익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물론, '어찌 언(焉)'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선도 악도 아닌, 차고 맑은 하나의 어휘 부사(副詞)임을 압니다.
- 시란 -
언시를 통해 배운 것들을 톺아볼 요량으로 그간의 기록을 살펴보다, 지난 시매(市媒)였던 시란의 글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폐허처럼 남은 미군 기지를 전망으로 삼았던 용산 해방촌 장숙이지만, 여전히 그 온기가 전해지는 것은 ‘장소화’를 위해 애썼던 여러 숙인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시란의 살뜰한 솜씨가 기억난다. 시란의 손을 타고 차방 한편에 옹기종기 모인 언시의 물품은, 사고파는 물건이기에 앞서 솜씨 좋은 예술가의 작업처럼 보는 재미를 주었다.
단박에 의미를 말하기보다, “그저 걸어보라고, 걷다보면 때가 익어 ‘되어’있을” 거라는 말은 솜씨의 깊이를 드러낸다. 시간의 성숙과 개입의 수행성을 통해서 드러날 어느 미래의 풍경을 시란은 그렇게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미학(美學)의 부재
존재감 없는 소수 남성 숙인을 대신하여 언시의 새로운 시매가 되었지만, 시작부터 고민이 많았다. 나는 물건을 매개하는 일에 재주가 없다. 그런 의욕을 가져본 적도 없다. 물건은 돈으로 사는 것이고, 가능한 보다 저렴한 것을 구입하며, ‘지금’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이런 내 마음이 전해진 듯, 시매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수 숙인의 열심만이 언시를 끌고 가는 동력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언시의 시매인 ‘내’가 변해야 했다. 문제는 사물을 기능주의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태도였다. 당장의 쓸모를 제외하고, 다른 이름을 얻지 못한 사물은 공통적으로 매력이 없었다. 머리보다 앞서 가슴을 뛰게 하는 미학이 없었다. 호명되지 못한 사물은 그렇게 공간을 부유하고 있다. 거실 한편은 읽지 않은 책들로 가득하다. 존재의 의미를 타자의 권위에서 찾으려는 헛된 욕망이자, 허영 가득한 장식품이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마따나, 세속의 욕망(핸드폰, 자동차, 집)과 거리두기에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욕망을 알려하지 않았다. 미학이 부재한 생활의 기저에는 자기 욕망에 눈감은 자아의 어리석음이 있다. 나 또한 현대인의 고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제 존재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내면, 그 깊은 우울감의 원인에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해 끝내 분열하고 마는 욕망이 있다.
직관(intuition)
세계적인 구조기술사, 세실 발몬드(Cecil Balmond)는 자기 작업의 창의성의 원천으로 직관을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본능(instinct)과 직관을 구별하여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본능은 생존을 위한 패턴(pattern for survival)이고, 직관은 이러한 패턴(본능)의 의도적 확장이다.
본능은 잠재의식(sub-consciousness)과, 직관은 의식(consciousness)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직관은 본질적으로 본능에서 진화되었기에 의식적인 판단에 앞서 즉각적인 사태 파악이 가능하고, 의식과 맞닿아 있어 의도적인 계발도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또한 인간의 의식은 (본능적인) 반복을 안전하다 여기지 않기에, 이질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유입하고 직관을 계발해 나간다. 이렇게 고양된 직관이 바로, 그가 말하는 창조력의 근간이다.
개념으로 사고(思考)하기 전, 인류의 인식과 판단은 대부분 몸으로 익힌 직관에 의존했을 것이다. 환경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인류가 직관을 기를 토양으로 삼은 곳은 예술이다. 예술은 머리보다 앞서 울리는 가슴(감성)을 주관하며 이성이 간과한 실재(實在)의 이면(裏面)을 보여주었다. 기술(과학)과 예술이 미분화되기 전, 이성과 감성은 상보적 관계 속에서 서로의 능력을 보완하며 그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과학혁명’의 세기인 근대에 객관화할 수 없는 감성을 억압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칸트의 ‘종합’이 보여주듯 직관은 여전히 인간 정신의 구체적인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직관은 위기와 직면한다. 직관에 자양분을 제공할 토양으로 삼았던 예술이 ‘종말’(아서 단토)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와 단절한 동시대 예술은 자신의 자리를 (철학)담론의 장으로 이동하며, 예술의 성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렸다. ‘예술 작품의 판단은 비평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단토의 말은, 예술의 부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현대의 범람하는 예술(철학) 담론은 토대를 잃어버린 예술에 의식적 대지를 제공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러한 가상의 대지 위에서, 직관은 ‘직관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아이러니와 마주한다. 토대를 잃은 예술과 더불어, 토양을 잃은 직관은 그렇게 위기에 놓여있다.
삶의 미학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영토가 있다. 생활의 터전, 우리의 삶 자체를 예술의 토대로 삼을 수 있다. 비평(가)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미학은 억압된 욕망을 살려내고, 섬세하게 자기 스타일을 가꾸는 일이다. 생활양식에 깃든 한 사람의 고양된 스타일은 신묘한 분위기(undertone)를 자아낸다. 존재는 자기표현이듯, 미학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지만, 내 삶에 개입한 사린(四隣)과 그 존재의 떨림을 자각하는 일 또한 필수적이다. 나의 경험(미학)이 세상의 이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와 세상이 맺은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통찰이 선재해야만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견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류 지식인들이 일군 과학적 발견에 앞서, 직관적인 깨달음이나 통찰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인류의 스승들은 나름의 은밀한 취미(미학)를 즐겼다. 그들의 신비한 아우라에는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다. 소소해 보이지만 비밀스럽게 지속된 시간은 삶의 미학,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철학을 구축하는 밑절미가 된다. 미학의 부재는 철학의 부재를 낳는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든 ‘이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꾸준히 좋아하는 것, 일관되게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 그 사람을 만든다. 지원행방(智圓行方)이라 하지 않던가. 때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모난 구석이 필요하다. 나르시시즘을 경계하면서도 자기 욕망과 대면하고, 이를 자신만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근기와 용기가 필요하다.
직관, 미학, 그리고 공부
몸의 공부, 생각이 아닌 생활양식에 터한 공부에 (경험을 통한) 자득은 필수적이다. 고양된 직관은 이러한 자득이 모여이룬 하나의 통찰이다. ‘사건’이나 ‘우연(contingency)’을 말하기보다 나의 ‘개입’을 말하는 공부, ‘차이’보다 ‘불이(不二)’를 말하는 공부는 직관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달라야 한다.
속속의 공부와 시류의 ‘직관’이 갈라지는 지점은, 직관에 이른 경험이 ‘나’와 내가 터한 ‘장소’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단하는 곳에 있다. 직관을 통해 실재를 바로 보기보다, ‘나’의 개입으로 사태에 굴절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 진리를 말하기보다 끊임없이 진리를 기다리는 태도(알면서 모른체하기)가 필요하다. 자기 경험의 절대화를 경계하고 직관을 나의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리려는 노력, ‘나보다 더 큰 나’를 만나기 위한 자기성찰의 기제로 사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