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의 역사가 길다. 거기엔 어릴 때 학교서 숙제로 내주면 억지로 써야 했던 계몽적 글쓰기나 독후감 숙제의 기억이 한 몫을 해왔고 일기조차 누군가에게 언젠가는 보여 질 것이라는 전제를 두게 되어서 진솔한 글이 되지 못하곤 했다. 그러니 발표를 해야 하는 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또 전공이 이과 계통이라 읽고 말하고 쓰는 것에 서툴다는 변명도 있었다. 작가들조차 커서가 깜박이는 컴퓨터의 빈 화면을 대할 때의 공포감을 이야기 하지만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들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가 글쓰기인데 조금 과장이긴 해도 어느 정도는 진실이다.
어떤 글을 읽다보면 아주 잘 쓴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런 스타일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글들을 보면 무엇보다 뽐내거나 현학적이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고 결코 상투적이고 지루하거나 쉽고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단어들이 적확하게 선택되고 있고 문장 속에 잘 배치되어 거부감이 없이 읽혀진다. 좋은 글을 대할 때마다 일상에서의 언어만으로는 드러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을 엿보며 마음이 설레고 그에 동참하는 커다란 기쁨을 누리곤 한다. 특히 철학과 인문학 책들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글들은 창의적 존재로서의 인간 삶의 이상과 정신의 품위를 향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 그것은 내가 독서를 하는 전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쓴다'는 것은 언제나 힘들게 느껴진다. 전문적 형식의 글이 아니고 수필을 목표로 할 때 구체적 지침으로 바로 적용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우선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버려야할 태도는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즉. 감동에의 집착과 허영심을 버리는 일일 것이다. 조지 오웰도 글을 쓰는 중요한 동기로 허영심을 말했지만 그것이 과하게 튀어 보이게 하지 말고 평심하게 살아 숨 쉬는 문장을 쓰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잘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나만의 개성이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소재는 나의 삶과 주변세계를 대상으로 삼아야겠지만 그 대상 자체가 아닌 그것을 매개로 하여 주관적 경험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일상에서 견자(見者)로서 관찰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많이 읽고 현실의 경험 속에서 그것들을 사색하는 기본적 습관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정확한 언어로. 자기 안의 고통과 혼란을 붙잡으려 할 때 쓰는 이는 바뀔 것이다. 그것은 나를 성장 시키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글 쓰는 일의 지난함과 고민은 현재의 나이기도 하고 더 나은 나일 수도 있는 것들 사이의 경계에 스스로를 세우는 도전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