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澹 2. 존재의 온도
-„Man wird nicht dadurch erleuchtet, daß man sich Lichtgestalten vorstellt, sondern durch Bewusstmachung der Dunkelheit.“(K. G. Jung)
(사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함으로써가 아니라 어두움을 의식화함으로써 스스로 밝아지는 것이다.)
1.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을 내게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바뀌지 않는 나의 어리석음下愚不移이라고 하겠다. 내 의식이 명령하고 통제할 수 없는 ‘자기 외부’의 사건들은 그야말로 수많은 우연의 산물이니,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외부의 사건을 해석·평가·종합하여 응하는 내 마음의 형식은 오롯이 내 마음 안의 일이기 때문에, 내 탓이라는 말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태어난 내 조국, 내 부모, 내가 속한 사회의 상황이라는 불우를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찌 할 수 없는 ‘필연을 사랑’하여, ‘춤추며‘ 걸어 갈 수 없는, 내 자신에 대한 우울한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2. 상도想到의 공부만을 취한 다면, 그 길을 가는 걸음이 가벼울까. 번번이 몸을 바닥까지 추락시키는 일상의 무게는 몸을 소외시키지 않는 공부의 형식을 요구한다. 배치 된 일상의 형식으로써, 몸을 ‘끄-을-고‘ 나아가는 공부. ’자기를 내용으로 인식하는 한 에고의 번다함을 벗어 날 수 없(K선생님)‘듯, ’스스로 밝아지기自知自明‘를 선택한 학인이라면, 정한대로 약속을 이행함으로, 그 형식을 따라, 자기 마음의 길을 알고, 응할 도리 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안다.
3. 행하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자기 개입, 그것은 자기 인식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움이 작용한다. 그 어둠을 들출 혜안과 용기를 가지고,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어둠을 부정하지 않으며, 자기 어리석음을 용서할 수 있는 깜냥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4. 최근 동학 중 한 명이 연극의 주연을 맡아 공연했다. 그의 초대로 ‘연극’이라는 것을 관람하였다. 연기를 지망하던 그가 비로소, 진짜들의 세계에 들어갔고, 연극의 매 회, 기존의 자기 자아가 아닌, 완전히 다른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였다. 과거에 형성 된 자아에서 탈피해, 연극하는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다른 자아인 것이었다. 혹자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행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연극은 그 형식 속에서, 행함으로 되어가는 ‘연극적 실천’의 현장되었다. 다른 자아로 옮겨가는 연습을 할 때 그는, 왜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했고, 연습의 과정에서, 자기 마음에 응결 된 경험의 결과/원인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5. 자기 어리석음을 용서할 수 있는 깜냥은 어디로부터 오는가.(자기 용서가 자기 관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기 어둠을 은폐시키는 에고의 번성으로부터, 연극적 실천이라는 그 형식 속에 순하게 응할 수 있게 될 때, 그 때, 겸허해지는 존재의 온도에서, 그 마음이 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