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인재에서 (첫) 천산족 모임이 열렸습니다. 저는 어떤 바람이나 한 점 기대도 없이 천산족 모임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고요하고, 환한 방 한 칸이 있어서, 바쁘지 않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 서넛이 모여 앉아서, 한나절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책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는 옛 바람이 기억나기도 했습니다. 숙인재는 방이 많으니 이 작은 바람은 크게 이루어진 셈입니다. 차방에서 책을 읽으면서도, 명상방에서 읽을까? 강의장에서 읽을까? 숙인방에서 읽을까?, 하는 말을 했는데, 왠지 호사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삶과 사람에 대한 저의 옛 기대들도, 그리고 병적이었던 오랜 기다림도, 전봇대나 빨간 우체통이 서 있는 풍경처럼 지나가버렸습니다. 이제는 숙인재 화장실의 흰 휴지통이 깨끗하게 잘 닦여 있는 것이나, 신발장 안에 보관되어 있는 쓰레기종량제봉투가 훨씬 나은 방식으로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 지나가버린 어떤 기대나 이미 스러져간 숱한 기다림보다 저를 훨씬 더 기쁘게 하였습니다.
천산족 모임에서는 『오만과 편견』, 『세월』, 『벨자』를 읽고 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1813년에 첫 출판되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은 1937년에 첫 출판되었습니다.
실비아 플라스의 『벨자』는 1963년에 첫 출판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여성작가들의 문장을 읽자마자, 이 사람들은 그녀들이 딛고 살았던 그 시간과 그 "곳"을, 그리고 날카롭고 아름답게 그녀들 자신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지성의 힘으로, “근사(近思)”,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날 보지 말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봐! 새 바람이 생깁니다.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그녀들의 문장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말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발만이라도 들어, 그 밑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