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두 이별
1. 떠남 : Fare you well
잘 있거라, 오르팔리스 사람들아.
이날이 다 됐다.
수련꽃이 내일을 두고 닫히듯이 이날이 우리 위에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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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라, 나는 다시 너희에게 온다.
잠깐만 있으면, 내 바람은 또 다른 몸을 만들려고 티끌과 거품을 모을 것이다.
잠깐만 있으면, 바람 위에 잠깐만 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을 것이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함석헌 역(한길사, 1992)
Fare you well, people of Orphalese.
This day has ended.
It is closing upon us even as the water-lily upon its own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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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 not that I shall come back to you.
A little while, and my longing shall gather dust and foam for another body.
A little while, a moment of rest upon the wind, and another woman shall bear me.
- Khalil Gibran, The Prophet, Alfred A. Knopf, 1923
2. 보냄 : 汝令好去
五祖와 함께 곧바로 九江驛으로 나아가자 때마침 배가 한 척 있었으며 오조께서는 나에게 '배에 오르라' 하시고는 친히 노를 잡고 저으셨느니라.
"청하오니 화상께서는 앉으십시오. 제자가 노를 젓는 것이 합당하옵니다.”
"내가 너를 건네주는 것이 합당하니라."
"미혹할 때는 스승님께서 건네주시려니와 깨친 다음에는 스스로 건너야 하옵니다. '건넌다'는 말은 하나이나 쓰이는 곳은 같지가 않습니다. 혜능은 변방에서 태어나 말조차 바르게 못하였는데 스승님의 법을 받고 이미 깨쳤사오니 다만 자성으로 스스로 건너는 것이 맞을 것이옵니다."
오조께서 이르셨느니라.
“그렇다, 그러하도다. 이후로 불법이 너로 인해 크게 유행하리라. 네가 가고 3년 뒤에 나는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이제 잘 가거라."
- 慧能, "六祖壇經"(德異本), 김현준 역(효림, 2022), pp.32~33.
(祖相送 直至九江驛邊 有一隻船子 祖令慧能上船 五祖把艣自搖 請和尚坐 弟子合搖艣 合是吾渡汝 迷時師度 悟了自度 度名踓一 用處不同 慧能 生在邊方 語音不正 蒙師付法 令已得悟 只合自性自度 祖云 如是如是 以後佛法 由汝大行 汝去三年 吾方逝世 汝令好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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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祖와 六祖의 이별 장면을 공부할 때였다.
보내는 五祖와 떠나는 六祖가 서로 나룻배를 저으려는 모습을 상상하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六祖를 彼岸으로 건네주고 홀로 此岸으로 노를 젔던 五祖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彼岸의 六祖는 또 어떠했을까?
사랑도 사람의일이라 맛날ᄯᅢ에 미리 ᄯᅥ날것을 염녀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아니지만 리별은 ᄯᅳᆺ밧긔일이되고 놀난가슴은 새로은슯음에 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업는 눈물의源泉을만들고 마는 것은 스々로 사랑을ᄭᅢ치는 것인줄 아는ᄭᅡ닭에 것잡을수업는 슯음의힘을 옴겨서 새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업는 눈물의源泉을만들고 마는 것은 스々로 사랑을ᄭᅢ치는 것인줄 아는ᄭᅡ닭에 것잡을수업는 슯음의힘을 옴겨서 새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2) 自由의 여신상, 美의 여신상
며칠간 내 또래의 할머니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연주에, 그의 자서전에, 그리고 그의 다큐 "Zhu Xiao Mei, How Bach Defeated Mao"에.
출근한다. 그날의 바흐를 턴테이블에 올린다.
출근해서 내가 한 첫 일이었다. 월요일 1번, 화요일 2번, 수, 목, 금, 그리고 토요일 6번. 카잘스가 연주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그로부터 15년쯤 후에 또 바흐를 만졌다.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버그 변주곡.
다시 20년이 흐른 올해에 금방 시골에서 밭 매다 올라온 듯한 할머니가 연주하는 같은 노래를 만났다. Zhu Xiao Mei.
지옥 같은 문화대혁명의 흑암을 뚫고 나오도록 한 힘이 바흐에게서 나왔다면 누군가가 말했다던 '뉴욕(?)에 自由의 여신상 대신 美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시 20년이 흐른 올해에 금방 시골에서 밭 매다 올라온 듯한 할머니가 연주하는 같은 노래를 만났다. Zhu Xiao Mei.
지옥 같은 문화대혁명의 흑암을 뚫고 나오도록 한 힘이 바흐에게서 나왔다면 누군가가 말했다던 '뉴욕(?)에 自由의 여신상 대신 美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We live only to discover beauty. All else is a form of waiting”
- Khalil Gibran
(1) 덕후 독하
"보고 싶은 당신,
떠나오던 날 내게 돌아올 날을 물었죠, 나도 알 수 없는 그 날을.
오늘 밤 이곳 巴山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오. 가을 못물도 따라 불어나겠죠.
언제일까요, 촛불심지 잘라가며 당신과 함께 밤 지새워 이야기하면서
巴山에 밤비 내리는 오늘을 그때라 할 그 때가요.
某年 某月
멀리 巴蜀 땅에서 당신의 隱"
李商隱의 "夜雨寄北" 私譯에 讀霞 對하기를
"보고 싶은 상인,
"보고 싶은 상인,
미륵사지 떠나오던 날, 急雨에 고망 없이 내달리던 당신을 좇아 하염없이 이름을 불렀죠.
오늘 밤 이곳 동백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어요. 涵養池 못물도 따라 불어나겠죠.
언제일까요, 당신의 연주 밤 지새워 음미하던 그 날을 담소하며,
동백에 밤비 내리는 오늘을 옛날이라 할 그 때가요."
언제일까요, 당신의 연주 밤 지새워 음미하던 그 날을 담소하며,
동백에 밤비 내리는 오늘을 옛날이라 할 그 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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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한 이름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 讀霞.
내가 접한 이름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 讀霞.
그가 내게 처음 한 대거리가 위의 글이다.
그는 누구인가, 아니 어떤 사람인가?
나에게는 李箱으로 비치기도 하고 Bartleby로 비치기도 한다. 하나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가 k선생의 덕후라는 사실이다. 선생의 모든 책을 그는 두 권씩 갖고 있다. 절판된 것도 그렇다. 읽고 또 읽다 보면 책이 헤질 수 있으니 미리 한 권을 더 장만해 둔다고 했다.
讀霞.
노을을 읽는 이.
노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고 하니 노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 너머의 무엇까지 읽겠다는 것인가?
(몇 달 후, 그와 나는 동백에서 "그 때"를 "그때"로 만들었다.)
동학의 위태로운 공부길을 잡아채고 멀리서 동백까지 찾아와 안부를 묻는 상인을 보며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뜻을 몸으로 새깁니다. 방학이 길어진 이참에 답례의 시기를 재보겠습니다. 하루바삐 쾌차하셔서 공부 장소에서 몸 섞으며 대화할 날을 그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