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신입숙인이 입회하였습니다. 아래는 신입숙인 류ㅅ정씨의 '영원한 자기 소개'의 글입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장숙에 대한 마음이 생겨났다는 대목에서,
<無가 찾아온 날, '영혼'이 생긴 날>이라는 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무엇이 생겨난 날,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시선에는
어쩐지 돌이킬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 겹쳐 있습니다. 기억의 주체는 누구일까, 누구여야 할까,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글은 동의를 얻어 게시합니다.
"선생님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부터 듣던 ‘두 남자의 철학 수다, 두철수’의 팟캐스트 진행자의 소개였습니다. 처음 읽어 본 선생님의 책은 낯선 단어와 어려운 개념도 많아서 어려웠습니다. 선생님의 책날개에 있던 동무공동체 장숙을 알게 되고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습니다. 홈페이지에도 ‘글속길속’이라던가, ‘암연이장’등과 같이 낯선 단어들이 많았고, 한자 강독이라든가, 여러 외국어들을 공부하는 것 같아서, 장숙에서 공부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래도 장숙행이나, 주방에서의 일들과 같은 후기들이 재미있어서 종종 장숙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글을 보기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개인적으로 배우던 것들이 마무리되고 주말에는 쉬고, 주중에는 회사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연치 않게 장숙의 홈페이지에서 글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글은 몇 년 동안 같이 공부한 숙인이 선생님에게 고민을 이야기한 글이었습니다. 몇 해 동안 같이 공부한 선배는 책을 쓰고 뭔가 나아가고 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해 선생님에게 죄송하기도 하고 겸연쩍스럽다고 선생님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 답으로 ‘ 63빌딩은 1층부터 63층까지 있어야 63빌딩이고, 63빌딩만 나가지 않으면 된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 글을 읽은 날, 장숙에 대한 제 마음이 처음으로 생긴 날이었습니다.
그 뒤로 장숙강을 신청해서 참여하였습니다. 장숙강에서는 안온한 빛, 잔잔한 꽃들, 테이블마다 깔려 있던 소담한 천 등 낮은 중심으로 사람들을 환대해 주던 숙인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낮은 중심으로의 환대를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장숙강을 시작으로 200회 속속 심포지엄, 3번의 청강, 장숙행까지 참여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선생님 밑에서, 선배 숙인들과 공부의 밑절미로써 생활을 배우고 싶어서 숙인을 신청하였습니다. 저의 패턴과 다른 이곳에서,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라는 형식으로 ‘조심, 조심, 조심,’ 생활을 배우겠습니다." (210회 속속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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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 그러니까 무(無)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체감한 것은, 아득한 옛날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내가 '사람'이 된 날이었다. 무의 아우라가 없는 것은 아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령기 전인 것은 확실하지만, 4살이었는지 혹은 6살이었는지 분명치 않다. 나는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느 곳을 걷고 있었고, 그 사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청명한 야밤으로 별들이 많았다. 죄다 익숙한 존재물로, 바로 이 '존재라는 틈'의 틈입이 아니라면 아예 언급할 일이 없는 범상한 것들이었다. 나는 별(들)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것은 '무(無)', 무의 가능성이었다. 나와 내 어머니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없었을 수도 있었고, 없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절절하고 공포스러운 체감이었다. 존재의 틈으로 무가 번개처럼 찾아들던 순간이었다. 내가 비로소 사람이 된 날이었다. 내게 '영혼'이 생긴 날이었다. "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늘봄, 2022년,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