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厓集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유성룡의 시문집. <징비록>이 들어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인조 11년(1633)에 유진(柳袗)이 펴냈다. 24권 13책의 인본(印本).
去歲南歸往來於鳯城近地非不欲一造溪院以訪舊日遊跡蒹與諸公一敘而戎馬悤悤歸程又被嚴旨無須臾之間悵望未遂而来尋常愧歎但切懸情今兒子之来忽奉辱翰如得奉晤感慰蒹極生以菲才瑣力當此危難之際久冒非据不自引退遂致人鬼交怒謗毀鑠骨今方屛伏郊外以竢誅譴之命慚負公私有累師門奈何奈何無緣相遇一道此懐惟此一書便爲永訣耳月川丈亦當一書相問而區區鄙意似未見悉於前日故今亦慚愧不敢望須傳吿此意何如羈危道中燈下草復言不悉意
去歲南歸往來於鳯城近地
거세남귀왕래어봉성근지
지난해 남으로 돌아와 봉성 근처의 땅에 갔다 왔습니다.
- 去歲 : 지난해
- 於 : ~에, ~에서
非不欲一造溪院以訪舊日遊跡蒹與諸公一敘
비불욕일조계원이방구일유적겸여제공일서
한 번 계원에 나아가 그런 다음 지난날 놀던 흔적을 방문하고 겸하여 여러 공들과 함께 회포를 풀고자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 非不欲 : 이중부정, 하려고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 一造 : 한 번 나아가다. 서간문에서 造는 나아가다로 많이 쓰인다.
- 溪院 : 사숙의 이름으로 보인다.
- 以 : 그래서, 그런 다음에
- 舊日 : 지난날
- 蒹 : 겸하여
- 與 : 함께, 더불어
- 敘 : 펼칠 서, 서간문에서는 만나서 회포를 풀다로 쓰인다.
而戎馬悤悤歸程又被嚴旨
이융마총총귀정우피엄지
그러나 전쟁 중에 바쁘고 돌아오는 길에 또한 임금님의 엄중한 교지를 받아서
- 而 : 여기서는 역접, 그러나
- 戎馬 : 병장기 융, 말 마, 유의어는 軍馬. 여기서는 戎馬之間,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 전쟁이라는 의미.
- 悤 : 바쁠 총. 두 번 쓰는 것은 강조용법
- 被 : 피동의 의미로 동작을 받거나 입는 뜻을 나타내는 말
- 嚴旨 : (임금의) 엄중한 교지
無須臾之間悵望未遂而来
무수유지간창망미수이래
잠시의 틈도 없어 돌아온 이래 이루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 須臾 : 잠시, 잠깐, 須臾之間, 잠깐의 틈
- 悵望 : 한스럽게 바라보다.
- 未遂 : 이루지 못하다.
- 而来 : 돌아온 이래
尋常愧歎但懸情
심상괴탄단절현정
항상 부끄럽고 탄식하며, 다만 마음에 걸려있는 바가 간절합니다.
- 尋常 : 항상, 늘
- 愧歎 : 부끄럽고 탄식하다.
- 但 : 다만
- 切 : 절절하다.
- 懸情 : 걸릴 현, 뜻 정, 마음에 걸리다, 맺혀있다. 掛念, 掛情
今兒子之来忽奉辱翰如得奉晤感慰蒹極
금아자지래홀봉욕한여득봉오감위겸극
오늘 아들놈이 와서 갑자기 당신께서 못난 제게 보내신 귀한 편지를 받잡고 마치 당신을 만나 뵌 듯 감사와 위로가 겸하여 지극합니다.
- 今 : 오늘
- 兒子 : 자신의 아이를 낮춰 부르는 말
- 忽 : 갑자기
- 辱翰 : 욕될 욕, 편지 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겸사. 못난 제게 보내신 귀한 편지
- 如得 : 마치 ~ 얻은(~할 수 있는) 듯
- 晤 : 만날 오. 반갑게 만나서 환담하다.
- 感慰蒹極 : 감사와 위로가 겸하여 지극하다.
生以菲才瑣力當此危難之際
생이비재쇄력당차위난지제
저는 변변치 못한 재주와 자질구레한 능력으로 이 위태롭고 어려운 때를 당하여
- 生 : 자신을 낮추는 겸사, 小生
- 菲才 : 엷을 비, 변변치 못한 재주
- 瑣力 : 자질구레한 능력
- 當 : 당하여
- 危難之際 : 위태롭고 어려운 때
久冒非据不自引退
구모비거불자인퇴
오랫동안 무릅쓰고 차지해서 안 될 자리를 차지하고 스스로 물러나지도 않으니
- 久 : 오랫동안
- 冒 : 무릅쓰다
- 非据 : 있어서는 안 될 자리. 차지해서 안 될 자리
- 不自 : 스스로 ~하지 않다.
- 引退 : 벼슬자리에서 물러남
遂致人鬼交怒謗毀鑠骨
수치인귀교노방훼삭골
마침내 사람과 귀신의 분노를 함께 불러 비방과 훼방이 뼈를 녹일 지경입니다.
- 遂 : 마침내
- 致 : 부를 치
- 謗 : 비방할 방
- 毀 : 훼방
- 鑠骨 : 뼈를 녹이다. 衆口鑠金, 여러 사람의 말이 쇠도 녹인다.
今方屛伏郊外以竢誅譴之命
금방병복교외이사주견지명
이제 바야흐로 물러나 엎드려 교외에서 임금님의 책망의 명을 기다리니
- 方 : 바야흐로
- 屛 : 병풍 병, 은퇴하다. 물러나다.
- 以 : 그래서
- 誅譴之命 : 임금님의 책망의 명
慚負公私有累師門奈何奈何
참부공사유루사문내하내하
공사를 저버리고 사문에 누를 끼친 부끄러움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慚 : 부끄러울 참
- 負 : 질부, 여기서는 저버리다
- 有累 : 누를 끼치다.
- 師門 : 사문, 문하, 여기서는 퇴계 선생 학파를 가리킨다.
- 奈何奈何 : 어찌하면 좋을까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無緣相遇一道此懐
무연상우일도차회
서로 만나 이 회포를 한 번 말할 기회가(연이) 없어서
- 無緣 : 인연이 없다.
- 相遇 : 서로 만나
- 一道 : 道, 여기서는 말할 도, 한 번 말하다.
- 懐 : 마음 속의 회포
惟此一書便爲永訣耳
유차일서변위영결이
생각하건대 이 한 통의 편지가 곧 영원한 이별이 될 뿐입니다.
- 便 : 곧 변
- 永訣 : 영원한 이별
- 耳 : ~할 뿐이다. 따름이다.
月川丈亦當一書相問
월천장역당일서상문
월천어르신께 또한 마땅히 한 통의 편지로 안부를 물어야 하겠지만
- 當 : 마땅히
- 相 : 별 뜻이 없다. 굳이 해석하지 않는 것이 좋다.
- 問 : 안부를 묻다
而區區鄙意似未見悉於前日
이구구비의사미견실어전일
그러나 못난 저의 비루한 뜻이 전일에 모두 다 알려짐을 입지 못한 것 같아
- 而 : 역접, 그러나
- 區區 : 편지 쓴 이, 겸칭
- 鄙意 : 비루한 뜻, 겸사
- 似 : ~같아
- 未見 : 見, 피동, 당하다. 입지 못하여
- 悉 : 다 알다. 모두, 다 실
- 於 : ~에
故今亦慚愧不敢
고금역참괴불감
그런 까닭으로 이제 다시 부끄럽고 부끄러워 감히 편지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故 : 그런 까닭으로
- 今亦 : 이제 다시
- 慚愧 : 부끄럽고 부끄러워
- 不敢 : 감히 못한다.
望須傳吿此意何如
망수전고차의하여
바라건대 모름지기 이 뜻을 고하여 전해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 望 : 바라건대
- 傳 : 전하다
- 此意 : 이 뜻을
- 何如 : 어떠하겠습니까
羈危道中燈下草復
기위도중등하초복
나그네로 위태로운 생활을 하는 중에 등불 아래에서 대충 답장을 씁니다.
- 羈 : 나그네 기
- 危道 : 위태로운 생활
- 草 : 대충 쓰다. 草稿
- 復 : 답장할 복
言不悉意
언불실의
모든 뜻을 다 말하지 못합니다.
- 言不悉意 : 모든 뜻을 다 말할 수 없다.
잘 정리해 주신 덕에 간혹 강독 시간에 필기를 놓쳐도 여유를 챙겨요. 복습에 잘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兒子라는 자기 자식에 대한 겸칭을 보니, 한문을 잘 외지 못하면서도 그 표현이 재미있어 기억하였던 겸칭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豚兒(돈아)라고요. '돼지(같은) (내) 자식'이라고 번역하면 너무한가요. '돼지'와 '자기 아이'를 연결시켜 스스로를 낮추는 이 표현 혹은 당시의 상식/교양이, 같은 땅 다른 시간에 이르러 '타자성'을 갖게 되었는데, 시간을 격으로 달라진 내면세계가 새삼스럽습니다.
이러한 '겸칭'이 보우하려는 관계 현실은 무엇이었을까, '겸칭'이라는 발화 행위는 스스로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등의 질문도 생겨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