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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회 속속 교재를 마무리하며] 정상인, 정신병자, 그리고 상징계의 지혜

1. 핑크는 ‘제9장 비정상화 분석’에서 정신분석가들이 자신의 분석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지려 하지 않고 이론/현실/사회에 편승하는 세 가지 형식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분석가들은 피분석자들에 대해 쉽사리 “규준의 폭정”(405)을 가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규준의 폭정이란 피분석자에게 정상성이라고 우리가 손쉽게 말하는 그런 것이 실제로 <있으며>, “정상적이라면 오케이라는 것, 또한 아마도 우리 모두 가능한 한 정상이 되리라고 노력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방향성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매우 은밀한 메시지입니다: 당신은 ‘정상인’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부적절’해서는 안 되고, ‘장애’가 없어야 하며, ‘손상된 채’ 남아 있어서는 안 되고, 또한 ‘기능부전’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최근의 어법을 따르자면 … 스트레스는 최소한이어야 합니다. 

2. 핑크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그와 같은 것은 없다>고 매우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미 “우리는 모두 병들어 있다-즉 신경증적이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지적한 바 있으며(406) 라캉에 따르면 “신경증적 증상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신경증 환자가] 살아가도록 허용해주는 어떤 것일 뿐”입니다(415). 이는 인문학적 공부와 대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대화에서도 정상성이란 허구를 염두에 두고서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혹은 당신이 ‘기능적으로 완전한 존재가 되어, 손상되지 않은 존재로서, 장애 없이, 매우 적절하게’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기계적이고 무성적이며 좌표적인 존재라고 가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떠한 병을 가지고, 바로 그 병이 열어주는 어떤 재능의 문을 통해서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후에, 그럼에도 가능한 지혜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3. 정상성이라는 개념이 토대를 두고 있는 이론 모형이 있습니다: (핑크에 따르면) 그것은 ‘발달 모형’입니다. 인간은 어떤 발달의 단계를 겪으며 특정 단계에 고착되면 그것이 비정상성과 관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고착되었던 혹은 ‘발달하다 만’ 지점에서 “발달의 끝(telos)”을 향해 다시금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달의 끝에는 매우 이상적인 “감정적인 성숙”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 모형을 신봉하는 분석가들은 흔히 “분석을 재(再)부모역할의 과정으로 보고” 피분석자들을 자신의 자아 이념에 맞추어 조정하려고 합니다(409). 

4. 핑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이론 모형은 “분석가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옮겨 놓는”(409) 장치일 뿐입니다. “분석가는 어떤 규준에 따라, 즉 분석가 자신의 자아에 일치하는 규준에 따라 주체의 행위를 정상화하려고 [잘못] 노력”하는 것입니다(411). 이는 인간 본성의 보편적인 이론을 세우고 바로 그 ‘진리성’에 의존하여 실제 분석에서 일어나는 매우 다양한 ‘각 사람들의 매듭들’을 못 본 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런 행태는 단순히 분석가의 비응답성(irresponsibility) 혹은 비윤리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대타자성(the Otherness)을 뿌리째 뽑아 버리고 타자가 내보이는 자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무엇이든 영으로 줄이려는 시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416). 핑크는 지속적으로 이같은 ‘보편적 인간’에의 ‘동화작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합리성과 정상성 같은 용어들의 사용이 최근의 정신치료적인 담론에서 가장 큰 속임수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매컬핀의 멋진 표현처럼, ‘이성적 대 비이성적이란 대조법이 소개되었던 것은 특히나 불행스러운 일인데, <이성적인> 행동이 <비이성적인> 뿌리까지 추적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정신분석이었기 때문이다.’” (420) 

5. 규준의 폭정이 양태화하는 두 번째 국면은 소위 <현실검증>이라는 용어에서 드러납니다. 가령 피분석자에게 현실을 제대로 보라고 충고하는 것은 완전한 오류인데, 왜냐하면 순수한 현실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 그러한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 현실에 대한 “순수한 지각 같은 그런 것은 없”(438)기 때문입니다. 모든 현실은 각 주체의 심리적 구성입니다. 모든 주체는 ‘자신의 근본 환상’을 갖고 ‘자기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각자가 따르는 시나리오가 있으며, 우리는 ‘더 나은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언어 밖으로 나와 시나리오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모든 시나리오는 “항상 한 가지 이상의 측면을 갖고”(434) 있습니다! 

6. 사실, 우리가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어떤 현실이 있다는 생각은, 어떤 가치 개념에 대한 전적인 승복(承服)을 전제로 합니다. 피분석자에게 정상성을 되돌려주려고 노력하는 모든 정신분석의 근원지에 있는 것은, 주체에 대하여 ‘진정으로 객관적인 상징계란 무엇인가’를 더 이상은 문제삼지 않는 정신분석입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사회적 상상계를 유일한 현실으로 수용하고 바로 이곳에서 자신의 리비도적 에너지의 투자목표를 정할 수 있게끔 하는 도핑주의적인 정신분석입니다. 새로운 정신분석가들은 <새로운 약속>을 합니다: “정신분석가들은 환자들에게 사회경제적인 성공을 약속하기 시작했고 분석에서 그러한 목표를 조장하려고 시도하는 그런 방법으로 자신들의 실행을 개조”합니다. “환자로 하여금 상품사회에서 더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목표로”(427) 삼게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사회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주관적인 상상계는 정상성의 논리 속에서 상징계를 가장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7. 상징계의 작업은 규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객관성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핑크로부터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적절하고 정상적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징적인 언어와 함께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을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단절적인 타자성 앞에서 차마 말할 수 없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기능주의적으로 원활한 존재가 되어 모든 말을 매끄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핑크는 정상성의 논리가 최근 정착한 개념으로 <스트레스>를 들고 있는데, 스트레스라는 용어는 도대체 자신의 생활이 파시스트의 독재정권 하에서든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하에서든 그 “문화, 정치, 경제적인 맥락에 관계없이 무조건으로 최소한의 스트레스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444). 사회의 부조리 속을 거닐면서 완벽히 최소한의 증상만을 갖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상징계의 맑은 공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 것입니다. 정신분석은 ‘너무 해롭지는 않은 타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8. 매우 흥미롭게도, 핑크의 정신분석테크닉 마지막 2장(비정상화 분석과 정신병의 치료)은 지금까지 그가 조언한 모든 테크닉이 어떤 상황에서는 쓰일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바쳐진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왜냐하면 ‘정상적이려고 하지 말라’는 조언은 꼭 ‘치료되려고 하지 말라’는 조언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치료’란 무엇인가에 관한 재정의를 포함한다고 할까요. 선생님께서도 이미 지속가능한 아픔을 통해 건강을 이해하도록 조언해주신 적이 있는데, 저는 정신분석이라는 것도 결국은 치료가 아니라 자신의 증상을 어떤 구조 속에 묶어 두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경증의 반대는 ‘정상(성)’이 아니고 ‘신경증의 바깥’ 같은 것은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신경증은 <정신병>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기이한 이원론을 이루며 외려 ‘신경증자’를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어떤 프로젝트를 찾아낸 운 좋은 사람”으로 상상할 기회를(491쪽 참고) 마련해주기도 합니다. 

9. 정신병자에 관해서라면, 지금까지 충고해왔던 모든 테크닉들의 유효성을 유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병자는 방어가 부재하며 실언을 거의 하지 않으므로 그의 말들로부터 의미의 다가성을 향한 연상작업을 해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다가적인 것 자체가 정신병자에게는 그리 이롭지 않습니다. ‘구두점찍기’나 ‘운에 맞춰 끝내기’ 같은 테크닉은 커다란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피억압물을 목표로 삼는 해석’ 같은 것은 오히려 행해져서는 안 됩니다. 기존의 의미 체계를 폭로한다든가 의미영역을 위태롭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신병자는 ‘알 것으로 가정된 주체’로 분석가를 간주하지 않으므로 전이가 일반적으로 일어나지도 않지만, 분석자는 신경증자와의 전이과정에서 일어났던 ‘투사의 전적인 수용’ 같은 것을 정신병자와의 관계에서 그대로 재연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분석자는 가능한 한 투사에서 빠져 나와야 하며 정신병자의 오해를 교정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10. 이 모든 테크닉이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경증자와 정신병자에게는 각각 언어의 가능성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신경증자의 언어에는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틈새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말에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의미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정신병자에게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하나의 말은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병자에게는 언어가 완벽히 상상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11. 신경증자의 의미작용은 기본적으로 <거세>라는 의미의 고정성을 토대로 합니다. 그는 최초의 상실을 이름에 매듭지어두었는데, 이 첫 번째 연결은 프로이트에게는 종종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리었고 라캉에게는 ‘부성 은유’로 포괄화되었던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핑크는 첫 번째 연결인 이러한 <단추달기>는 여러 가지 방식일 수 있다고 부연합니다. 중요한 것은 신경증자는 자신이 처음 매듭지었던 방식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욕망의 고착 지점인 타대상을 발견하고 이것이 그에게는 향락의 한계로 (기꺼이) 나타나 줍니다. 자아는 강력하게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병자의 경우, 그의 자아는 신경증자의 그것처럼 강력하게 경직되어 있지 못합니다. 정확히 말해 정신병자의 자아는 봉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거세를 자신 안에 빗금으로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구멍>으로 남아 있습니다. 핑크는 이 구멍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경고합니다. 정신병자에게는 자신을 설명해줄 수 있는 원칙이 없기 때문에 만약 이 구멍이 드러난다면 그는 완전히 분리되어 버릴 것입니다. 핑크에 따르면 분석가의 “첫 번째 의무는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455). 정신병자에게는 신경증자와 같은 의미구조와 설명원칙이 없기 때문에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망상>입니다.

“설명원칙이 부재한 가운데 어떤 정신병 환자들은 결코 일어서지 못한 채로 무너지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어떤 프로젝트를 찾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충분히 발달되지 못하게 되어 이 세상에서 그 주체를 위해 특별한 자리를 제공해주는 망상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특별한 자리는 국제적인 스파이의 자리도 될 수 있고, [..] 신의 아내의 자리도 될 수 있는데, [..] 이러한 망상체계는 약간의 안전성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하고, 적어도 이 세계에서 그의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의 인생에 철저히 모순되지 않으면서 삶의 목표와 사명감을 그 주체에게 제공해준다. [..] 정신병 환자들의 망상들은 정신병 환자한테 중요한 자리, 즉 중대한 역할이 할당되는 세계를 창조해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정신병 환자의 망상적인 우주론은 정신병 환자의 출생 이유와 이 세상에서 그의 삶의 목표를 설명해준다.” (491-92) 

12. 그리하여 분석자는 신경증자에 대해서는 그의 강력한 경직성에 구멍이 나도록 끊임없이 작업해야 하지만, 정신병자에 대해서는 망상의 <증인>이 되어주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분석가는 그에게 ‘안다고 가정된 주체’가 아니므로 결코 어떤 세계를 창조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자신을 절단시키지 않고 유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의미의 구성의 조력자가 되어 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분석가는 새로운 개념체계의 발달에 대한 증언과 필요하다면 잠재적인 파국적 충돌로부터의 회피 사이에서 좁다란 선 위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494). 

13. 망상의 증인이 되어주는 것은 재미있게도 솔레의 개념화작업에서는 “보충적인 상징계”로 나타납니다(496). 본질적으로는 망상을 돕는 것인데 그것이 어떤 주체의 생활과 삶에 관한 것이냐에 따라 ‘상징계’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본래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빈번하게 나타나는 <증상(symptôme)>이, 정신병자의 삶에서는, 그로 하여금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함께 지켜내도록 허용해 주는” <병증(sinthome)>으로 작용합니다. 병증이란 증상의 “옛날 프랑스어 철자”(505)로서, 증상이 어떤 경우에 외려 고요한 것이 되어 한 삶을 도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때 병증은 아마도 치유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캉에 따르면 조이스의 병증은 ‘글쓰기’였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스트레스’에 대한 정상성 국면에서의 비판과는 다르게 핑크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라는 용어가 정신병자들에게는 하나의 ‘설명도구’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14. 정신분석을, 어떤 완성된 하나의 학문 체계(system)가 아니라, ‘쓸 수 있는’ 여러 개념들을 새로이 도입한 ‘하나의 조각난 지혜’로 받아들이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기억하며, 테크닉을 너무도 충분히 잘 알지만, 그 테크닉들이 결국은 모두 불가능해지는 지점으로 끝맺을 수 있는 핑크의 지혜에 구두점을 찍습니다. 또한 스스로 부조리한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주체가 되어 보충적인 상상계의 길을 가느니 망상의 증인이 되더라도 여전히 상징계적일 수 있는 언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길을 가보겠다고 (다소 정치적으로)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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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 2024.08.22 14:43
    *함께 읽지 못한 교재의 나머지 장(8, 9, 10장)을 혼자 공부한 후 정리한 것인데, 다른 동학들과 끝맺음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이곳에도 게시해보았습니다. 혹시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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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2024.08.26 22:20
    유재, 읽기 어렵다는 말을 핑계삼아 읽어보려는 애씀도 없이 그냥 책을 덮어버린 자신을 반성합니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군요!
    우리 모두는 신경증자란 프로이트의 말과 정상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움이되었습니다.
    도움주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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