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니와 수종사에 다녀왔다.
작은 수술을 끝내고 회복 중인 언니는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하냐는 말을 끝까지 묻지 않았고, 막대기를 하나 주워 지팡이 삼아 열심히도 걸었다. 가는 길에 꽃과 풀을 꺽어 강아지처럼 킁킁 거리길래 즉석 무덤가를 불러 주었다.
“예쁜 처자, 무덤 위 주황빛 꽃 향기에 취했네. 가까이 가고 싶어 종종 거리다 총각귀신 무서워 가지를 못하네, 샬라샬라.”
우리는 세조가 심었다는 500년 된 은행나무를 보고 다실에 앉아 차를 마신 뒤 내려왔다.
돌아오는 길 언니의 묶은 머리에 양귀비 꽃을 꺽어 꽂아주고, 크로바 꽃으로 어릴 때 언니가 해주던 대로 팔찌를 만들어 채워주었다. 어릴 때 팔찌를 만들며 놀다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야, 언니야, 우리 200원이 생기면 항상 고구마깡을 사먹자.” 시간이 흐르면서 고구마깡은 감자깡으로 바뀌고 감자깡은 새우깡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몸이 자라며 무엇도 함께하자는 말을 하지 않을 무렵부터 우리는 한몸에서 나온 것을 서서히 잊어갔고 각자 멀리 다른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났다.
돌아와 보니 지구의 끝에 다녀와 다시 최초의 생물이 된냥 그녀가 있었다.
2.
연암 박지원은 칠정 중 무엇이라도 극에 달하면 울음이 터진다고 했어. 갓난아기가 뱃속에서 나올 때 우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갈 일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좁은 곳에 있다가 탁 트인 곳으로 나오니 태어난 것이 황홀하고 겪게 될 세상일이 너무 기대돼 그 기쁨으로 우는 것이라고 했지.
무한한 시공간을 먼저 지각한 어느 날 나의 유한함을 이 세계 전체가 알려주는 날,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생명의 기쁨을 세계 전체가 단숨에 알려준 그날처럼 유한함도 그렇게 오지.
아마 할머니 등에 업혀 쌍둥이를 낳다가 죽은 윗집 여자의 장례를 보던 날이었을거야. 최초의 기억은, 기억은 말이야. 그렇게 내가 ‘나’라는 것을, ‘나’일 뿐인 ‘나’를 통해 아름다운 망상을 짓게 해. 인간이란 뭐냔 말이야!
3.
봄밤-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 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찰나와 영원, 영원과 하루. 대비를 통해서만 스스로는 스스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그래서 술은 스스로 역할을 잘 해내는 사물 중 하나. 이곳과 저곳의 대비를 통해서만 미지의 세계로 간다. 이미 어리석음은 쾌락이 된 것. ‘아들’은 아직 무지한 미지인 ‘나’ 밖의 어디.
저희 아이들도 장례식에 다녀오거나 죽은 동물을 보게되었을 때, 삶 이후를 물었던 것 같아요.
조심스레 未知의 세계로, 未來의 부름으로, 또 인적이 드문 앎으로, 나아가면 좋겠어요.
무지하지만,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게 또 인간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