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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재 글은 81회 속속 별강문입니다.

몇 회에 걸쳐서 공부한, ‘마테오 리치현장법사’ ‘독서를 정리하고 점정(點睛)하는별강입니다. 특별히 마테오 리치와 현장법사에게서 공통되게 발견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 우리 공부에 적용가능한 지점을 살피고자 합니다. 세 가지 입니다.

 

첫째,

마테오 리치와 현장법사 두 사람은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층민, 식자층, , 외국인, 심지어 신과 도적과도 말을 나눈 사람들입니다. ‘언어의 한계는 곧 자기 세계의 한계다라고 한다면, 두 사람 모두, 언어가 곧 매개임이 생생한 현장에서 언어가 품고 있는 생활을, 생활이 품고 있는 언어를 체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외국말을 체화하는 1차적 노동으로서 자기 세계를 넓혔고, 끊임없는 타자와의 교섭과 응하기로서, 자신과 타자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대화말하다-듣다가 아닌 가르치다-배우다의 틀로 설명하고 있는데,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하였다는 것은, 가르치고 배우는 태도변경이 가능한 상태, 이동이 유연한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마테오 리치와 현장법사의 재능과 배경이 그들의 대화와 행보에 자산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재능과 배경이 없는 이로서, 타자를 만나는 대화의 장에서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우선은, 자신의 언어성에 대한 이해와 개발이 주효해 보입니다. 만일 어떤 말에 묶여있고, 어떤 말에 맺혀있고, 또 어떤 말에는 취약한 언어성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히 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처와 무지로 손상된 언어성을 다듬고 결여의 자리에 말을 얹는 것. 구법을 하듯이, 전교를 하듯이, 보다 나은 말을 찾고몸에 내려 앉도록 암기하고, 지속해서 재서술 해나가는 것은 언어성을 돌보는 실천이며, 대화 자리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언어와 몸의 어긋남을 줄이고, 언어의 신뢰를 받는 몸'을 얻는 것도  확실한 자산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득하면, 일단 말이 좋은 사람 가까이에 있는 것은 전략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두 사람 다, 논쟁과 논변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 자리를 겪고 통과하며, ‘이 벼려졌습니다. 공부한다는 것이, 새로운 개념, 타자의 말과 시선에 자기를 노출함으로써 상호작용하며 변화해가는 과정이라면, ‘자기 노출은 피할 수 없습니다. 부득이  우물 안 개구리의 실존이 드러나고, 그래서 균열하며 변화의 물꼬도 트이지만, 긴장과 저항, 혼란과 부끄러움이 수반되는 일이기도 해서, 일단 회피하는 쪽으로 자동화반응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되어가는과정을 통해서, 만나야 변화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의심하고 오해하는 타자를 통해서만 자신됨이 벼려진다는 사실을 인정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라는 자기 비밀 속에서, 마태오 리치와 현장법사의 직접 부딪치는 태도대범함을 이식해 왔으면 합니다.

 

둘째,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순명하는 힘이라고도 설명되었던 두 사람의 평생의 일관성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변덕과 변명에 내몰리기 쉬운에고의 인간이라면, 소비자라는 형식이 지배하는 삶의 기복 속에서, 또 회의와 의심의 채널이 활성화된 생각많은 이들의 사고패턴에서는, ‘일관성지속성만큼 지난한 과제도 없을 듯합니다. 관심은 옮겨 다니는 것이고 열정에도 유통 기한이 있는 것으로, 그것이 인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중력을 거스르며 다른 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중력을 거스르며 걸음을 지속 할 수 있을까요. 두 사람에게는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사명이 열정의 원천이었다면, 공부하는 이는, 어떻게 쉼 없이 열정을 지피고 지속시킬 수 있을까. 오늘 내일이 아닌, 일생을 관통하는 열정을 이해하고 배우고 싶습니다.

수저 하나로 산을 허무는 집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바르게 움직이는 세속에서는 이해받기 힘든 말이지만, 공부하는 이에게는 간절한 말이기도 합니다. 맨손으로, 장비도 없이 두 발로, 단신으로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었던 마태오 리치와 현장법사의 집념과 열정과 순명의 길에, 안이하고 적응적으로 흐르는 공부와 생활의 자리가 닿았으면 합니다.

  

셋째,

남다른 행적과 성취를 남긴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서, 두 사람의 초월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관념적인 것이지만, 두 사람에게 이 초월성은, 현실 속에서 사람과 사태를 대하는 정성혹은 인격으로 구현되었다고 보입니다.

두 사람은, 신과 사람을 향한 태도가 분열되지 않았습니다. 신을 향한 정성이 타자를 만나는 태도에 스며들었고, 그들의 인격이 되었으며, 그들의 인격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화의 덕을 끼칩니다. 이들의 초월성은 결코 생활을 생략하거나 배제하는 식으로 발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현실의 변화 속에서, 사태 인식과 사유를 지속적으로 수정하거나 진척시켰고, 신을 바라보면서도 두 발은 땅에 굳게 딛고 있었습니다.

사실, 신의 도움 없이 걸은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확실히 남다른 인물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된 사람은 아니었던, 그들의 정신도 시간과 함께 변화하였다면, 이런저런 역경을 통과하며, 그들의 정신에 그들도 모르게 생겨난 것은 무엇이었을까,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힘에 부치는 일을 지속하며, 그 집중 속에서, 그들의 정신은, 그들도 모르게, 사적인 것이 소실되고, 시몬베유가 말한 바 있는 내 안의 빈자리를 만드는 것(시몬 베유)’ 이 생성된 게 아닐까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신의 현현을 경험했는데, 이렇게 생성된 그들 속의 빈자리가, 3의 출현을 매개했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신이 아니라 이들의 걸음이 초월의 자리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종교와 공부는 다르고, ‘초월성이 공부의 본질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여기라는 생활에서 정성혹은 인격을 다할 대상을 찾을 수 있고, 이것을 지속할 때 마음에 빈 자리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매개로 현재의 생활세계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을 경험하고, 이 경험을 통하여 자기의 일과 자신에 대한 이해가 변화한다는 형식은, 종교인이 아니어도 공부하는 이에게도 적용 가능한 대목 같습니다.

한편, 놀라운 재능으로 준비된 두 사람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 결코 건널 수 없는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종교적 영성이 부정으로 생성된다면, 두 사람은, 자력의 끝에서, ‘자력의 부정을 매개로 삼아 도달한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 길에서도, 한계 상황이 분명 있습니다. 쾌락을 꺾고 진실을 직면하는 일이나 새로운 생활양식을 습득하는 것도, 위기와 한계의 직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와 다르게, 한계를 자인하게 될 때, 공부하는 이가 의지해야 하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테오 리치와 현장법사에 비춰보니, 그간 공부의 한계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존재의 위기라기보다는, 꼴의 위기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위기가 올 때까지는, 더 많은 한계를 만나야 하고, 이것이 꼴의 위기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리어, ‘이 아닌 을 따를 때, 어느 정도의 위기를 모른 체하며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위기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더 이상 위기로 여기지지 않는 변화가, 공부 길에 있습니다.

 

다음은 교재 <서방에서 온 賢者> 129쪽의 문장입니다.

리치의 나이 마흔둘, 복장과 환경을 바꾼 변신으로 새로운 삶의 역경을 감당한다는 것은 운명의 현장을 바꾼 것만큼이나 지난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리치는 어느 날엔가 그가 중국 황제의 면전에서 중국전교를 비준해 달라는 청을 직접 드릴 때가 있으리라는 오롯한 희망을 키웠다.”

그리고 다음은 <비평의 숲과 동무 공동체> 152쪽의 문장입니다.

희망은 자본의 자기차이화가 제공하는 다양성에 현혹되지 않는 결기의 선물인 것이다. 다양성의 경험을 스치기에 비유한다면, 희망은 만나기일 것이며 그 만남의 지평이 내장한 타자성을 향해서 일관되게 걸어나가는 행위가 된다.”

 

이번 공부를 통해서, 희망을 향하여 걷다가 마침내 희망(稀茫)이 된 정신을 알게 되었고, 이 진짜배기 정신을 오래 깊이사귀어 갔으면 합니다.


이상 별강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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