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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바르텍의 글에서 조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종종 언급되는 일본.

이웃나라 일본이 이룩한 서구적 근대화를 왜 조선을 이루지 못했을까?

당시 동아시아의 소국으로서 조선의 주체적인 근대화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나?

가능했다면 어떤 모습이 최선이었을까?

 

 

    일찍이 근대화된 유럽에서 건너온 한 여행가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은 그야말로 누추하고 열악하였다. 헤세 바르텍은 조선의 공고한 신분제, 남녀차별, 노예제도 등 조선의 구태의연한 봉건질서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유교질서 하에 사회전반에 깊숙이 내려앉은 불평등, 비상식, 비합리를 지적한다. 전근대적 사법체계, 비효율적인 생활양식, 수도, 도로, 운송 등의 사회기반 시설의 부재 등은 약 120년 전 당시 유럽인의 기준으로 보아도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가 신체조건이나 용모 등과 같은 선천적 민족성에 대해선 주변 동아시아국가들에 비해 높은 점수를 줬다는 점이 당시 상황을 더 안타깝게 만든다.


    “조선, 1894 여름에서 헤세 바르텍은 1894년 당시 한국의 상황을 이웃해있는 중국, 일본과 비교한다. 특히 국가의 제도나 기반시설 면에서 조선은 일본에 비해 낙후한 것으로 비교 당하는데, 동아시아에는 가장 먼저 서구식 근대화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일본을 기준으로 인접국가를 비교하는 것은 유럽인의 관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일본은 1853년 흑선(쿠로후네) 사건,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서구 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존의 막번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통일권력을 확립하여 사회전반의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였다. 구체적으로 행정구역개편(폐번치현), 사농공상 폐지, 학제개혁, 지조개정, 그레고리력 채용, 사법제도정비(입헌군주제), 단발령 등이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외적인 면에서는 서양 문명의 선진 제도를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한편 당시 조선도 동아시아 위치한 국가로서 제국주의 흐름 아래, 외부로부터는 개항과 통상을 요구하는 일본 및 서구열강과의 몇 번의 접촉(?)이 있었고, 내부적으로도 근대적인움직임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기존 봉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생각들을 하는 민중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서구문물을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시도들이 분명 존재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동학농민운동이나 갑오개혁이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파급력이나 위상을 갖지는 못했다.

    당시 조선의 지도층 및 관료조직은 부패했고, 그나마 정신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유교의 정신은 왜곡 되었고, 유교적 신분질서 속에서 나름대로 유지되어 왔던 공생의 가치마저 무너졌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덕과 인에 의한 군주의 다스림은 설 곳을 잃었고, 나라의 대부분의 자원은 권력을 쥔 자들에 의해 사유화되었다. 당시 지배계층들은 유교에서 중시하는 군자다움의 덕목은 배반하고, 유교질서가 보장하는 권력만을 탐하였다. 구한말 국가존망의 위기순간조차 백성들을 걱정하기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골몰했던 일부 가문들의 세도정치는 조선의 망조를 확언해주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조선의 주체적 근대화의 실패를 서구열강의 무력침탈이나 일본의 강제병합과 같은 외부적 요인 탓으로만 돌리기에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다.

    바르텍이 조선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삼고 있는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근대화에 앞서기는 하였으나 일본의 근대화 또한 과연 주체적 근대화인가 하는 물음에 자신 당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도 내부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서구열강의 강제와 영향 하에 진행되었기에 그 태생적인 한계로 인한 잠재적 열등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은 같은 동아시아 국가인 중국과 한국에 비해 나름대로 서구를 잘 모방하였다. 물밀듯이 강요되는 서구적 근대화를 자신의 방식대로 소화하였다. 강하고 실력 있는 구미열강을 전략적으로 상대하여, 줄 것은 주고 얻을 것은 얻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조선처럼 일방적이고 처참한 침탈은 면했다.


    동아시아 혹은 동양의 소국으로서 조선반도가 주체적인 근대화에 실패한 이유를 일본과 비교하여 연구하려는 시도는 자칫 패배주의적이고 자학적인 모습으로 비취기 쉽다. 더 위험하게는 식민사관으로 싸잡아 묶일 소지도 있어 보인다. 조선이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수탈당하고 억압당해온 상처와 설움의 역사가 자칫 자신의 몫으로 남겨둬야 할 잘못까지도 무마시켜버리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실패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불편하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한 자기연민이나 약자의 원한만으로 성숙과 성장을 희망하기 어렵다. 성숙의 한 가지 조건은 자기객관화인데, 조선말의 국가적 실패 그리고 서구적 근대화의 물결 속에 주체적인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한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은 한국인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위치를 통시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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