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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그 낯섦의 구원>                      

 

  우리는 싫건 좋건 타자와의 관계 속에 놓여서 삶을 영위해 간다. 인간의 존재함은 타자와 연관 되어 존재함을 뜻한다. 현대는 편리하고 빠른 디지털 네트워크의 시대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직접적 만남이라는 갈등을 배제하고 깔끔하고 신속하게 연결하여 준다. 거기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멀고 가까움이라는 거리감과 경계, 그 자체가 없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연결은 같은 무리 집단들 내에서의 과잉 긍정과 다른 무리들에 대한 비난과 냉소를 넘치게 만들어 낸다. 대화와 비판의 서사는 사라지고 나르시시즘적 에고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온갖 이미지와 기호로써 모두 다르고자 혹은 달라 보이고자 하나 그것은 자본주의가 영리하게 부추기고 이용하는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일 뿐이다. 인터넷 공간은 고립화된 자아의 공간일 뿐 각자 자신의 고통, 자신의 두려움과 함께 혼자 남겨져 개별화 된다. 모두가 나의 약점이고 부끄러움이고 나의 책임이다. 은폐된 고통은 심리상담과  정신 치료의 대상이 된다.

  또한 비대면의 소통은 아주 매끄러워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타자의 시선과 목소리가 없다.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한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은 나에게 폭력과도 같이 다가와 실존적으로 격한 반응을 일으키는 존재이다. 디지털 가상공간에는 이러한 타자에 대한 이질감과 놀라움, 낯섦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익숙함만이 있어 정신을 깨우는 경이는 사라져간다. 긍정과 익숙함의 부드러움이 지배하는 곳에서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가능할까. 낯설고 다른 것의 부정성만이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 그것은 철학의 시작이고 예술의 계기이기도 할 것이다.

  인정욕구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공간에서는 타자적 갈등과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안전한 정념과 자유와 평등만 있다. 니체가 말한 바 있는 자신을 경멸하지 못하는 인간, 적대와 위험 대신 안정과 평화만을 갈구하는 최후의 인간에게 최적화된 공간이다. 수많은 타자들 앞에 자신을 전시하여 인정욕구를 충족하지만 그 인정이란 자신이 발 디뎌야 하는 현실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한 것이다. 삶은 끊임없는 타자와의 갈등과 충돌의 무대이다. 갈등이 삶에서 불가피하다면 그것과 정면으로 나가 대결하고 싸우며 조율해 나가야한다. 우리는 갈등을 통해서만 삶의 목적을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좌충우돌과 시행착오의 착잡한 경험을 통해 절실한 노력과 깨우침의 축적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나아간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낮의 현실이 끝나는 황혼에 날아 올랐다가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그의 비상은 갈등적 현실에 대한 이성과 논리의 메타적 사유인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온갖 정보를 얻고  많은 소통을 하나 경험은 모른다. 무엇을 경험한다는 것의 본질은 고통이다. 우리가 걷는 길이란 상처 그 자체다. 어떤 사건으로서의 경험은 타자성으로 다가와 우리를 넘어뜨리며 변하게 한다. 그 사건성으로 인하여 우리는 사유하고 인식하고 변모하고 깨어난다. 사랑의 대상 앞에서 우리는 송두리째 변모하지 않던가. 나는 그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면서 나를 자발적으로 열고 나와 나르시시즘에서 해방 된다. 바타유적 위반과 금기의 에로스는 그 부정성으로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그를 욕망하나 알 수 없고 소유할 수도 없다. 우리가 타자를 알고 소유할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그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그러므로 모든 깊은 경험, 모든 깊은 인식에는 상처의 부정성이 내재하고 그 상처는 바로 타자가 들어오는 곳이다.

   인터넷은 고립화된 자아의 공간일 뿐 타자라는 부정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와 직면할 때 찾아오는 감정, 즉 문(門)의 저편으로 넘어가는 고통은 헤겔의 '정신의 변증법'이기도 할 것이다. ‘정신은 부정적인 것을 똑바로 응시하며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고양 된다타자는 어색하고 불편하게 때로는 혐오스럽게 무언가 잘못된 듯이 다가와 나를 긴장시키고 사유하게 한다. 타자는 위험하지만 타자의 다름과 낯섦에 우리는 자신을 내맡길 각오를 해야 한다. 상처와 떨림을 거부하려는 자는 아무 것도 경험 할 수 없고 변화해 갈 수 없다우리는 타자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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