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0.10.03 07:02

行知(13) 말로 짓는 집

조회 수 243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말로 짓는 집, 연극적 실천

 

1.

통속적으로 연극적이라는 말은 거짓이거나 외양적인 현상을 가리킬 때 사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은 '새롭게 말을 배우는 것'이라 하였고, ‘연극적이라는 말의 쓰임도 재고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연극, 우리는 배우라는 비유도 있듯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연극적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요. 통속적인 표상은 교정되어야 하고, 그래야 극적 실천이 열어주는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2.

현대철학은 진리가 하나라는 인식에서 나와서, ‘진리가 두 개이거나 여러 개, 아니면 변화하는 과정이 진리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특히 오스틴을 위시한 언어학자들은 언어에 고정된 의미가 없으며 발화 자체가 갖는 수행성을 밝혔습니다. ‘고정된 의미가 없다는 것.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생성'되는 의미. 이 이행은, 하나의 진실을 수호하려는 수고를 중단시키고, 생성되고 있는 삶의 현장 쪽으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비켜나가고 난반사하고 어긋나는, 생활의 현장 쪽으로 서게 합니다. 진리나 진실, 의도는 주장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만 생활의 현장에서 생성과 소멸의 거듭을 목격하며 어렵사리 생성(증명)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생활의 궤적을 통해서만 사후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호오(好惡)처럼 나의 진심이나 내 의도에도 많은 힘을 부여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말하고, 진심을 묻고, 의도에 호소하는 게임은 생활의 현장(역동)성을 외면합니다. 진심이었거나 의도인 것들에 몸을 주는 노동이 있을 뿐입니다. 일상의 극진함을 통해 얻은 몸. 그래서 연극적 실천입니다.

 

3.

자기 인식을 위하여 불가피했던 외부와의 구별, 그래서 생겨난 에고를 폄하하기만 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에고에 붙박인 삶은 성마르고, 에고를 모른 체해야만 열리는 삶의 지평을  배웠습니다연극적 실천은 무엇보다, 에고를 포함한 대상과의 거리를 회복합니다.

작은 단역이라 할지라도, 작은 단역이기에 더욱, 배역을 맡은 이는 자기()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배역의 방향과 상충되는 자기를 여지없이 유보합니다. 연극적 실천에 나선 이도 익숙한 태도, 버릇이 된 말, 튀어나오는 반응, 그리고 무엇보다 '변덕'을 민감하게 포착. 그것을 우회하고 우회하며 첫 걸음을 뗍니다. 자신을 규정해온 어떤 유착(癒着)을 긁어내면서, 존재가, 미래의 소식이, ‘나보다 더 큰 나가 개입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너무 멀리 있는 것도 보이지 않지만 일체화된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거리가 회복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에고와의 거리를 얻으면, 독무대의 환상은 좌절되어도 무대에 함께 오른 다른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4.

아직은 무의식에 통합되지 않은 외부가 연극적 실천의 내용으로 채택됩니다. 화를 옮기지 않는 것, 약속으로 자신을 묶는 것, 오해를 삼키는 것, 생활양식으로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겠다는 것, 변명을 소화할 수 없는 내면, ‘동무와 같이 실천성을 머금은 어떤 말, 개념을 선택하여 연극적 실천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한편, 존재의 지향이 닿은 모델을 선택하여, 부르고, 떠올리고, 상상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깜냥이 문제라면, 큰 존재의 품을 가진 이들이 했을 말, 태도, 선택을 적극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이지요. 정작 실행해야 할 때는 정서가 흔들려서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평시에 생각하기로 길을 열어둘 수 있습니다.

연극적 실천의 초보적 단계에서는 함께 있고 홀로 있는 자리의 구별이 뚜렷하지만, 점차 이 구분은 잊히고 희미해집니다. 이것도 집중이어서, ‘낮은 곳으로, 작은 것으로, 그리고 숨은 곳으로향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삶은 죄다 연극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죽음의 장면에서 엿볼 수 있는 어떤 연극성은, 홀로 있는 장소뿐 아니라 생사가 오가는 지점에서도 발현되는 신실(信實)이 되었는데, 어떤 실천이 나아갈 수 있는 최상의 지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편 실천이란, 나선형의 성장곡선처럼 시행착오를 딛고 나야 상승 곡선이 생기기도 하니,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러려니 넉넉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유용하기도 합니다.

 

5.

그럼에도 본심이란 말에 솔깃합니다. 본질 없는 세속에 대한 일종의 저항일까요. 당신에게 에누리 없이 드러내도 괜찮은, 나에게 알게 한즉 감동인, ‘본심이란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보여주고, 봐도 괜찮은 날것의 본심이란 것이 있던가요. 모르는 척 가려줘야 할 자타의 본심들과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이들은 본심이라는 말을 다르게 사용합니다. ‘연극 속에서 드러나는 본심, 혹은 애초에 연극적인 본심이라고. 일관성을 만들어 내는 수행성, 연극적 실천으로 숙지고 어리눅은 본심에만 잠시 솔깃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은 형식으로 내용을 막으려는 그 불가능한 시도로서의 연극적 실천이 택한 가장 초보적이며 기초적인 수행이다.”(<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 218)

 






 

  • ?
    희명자 2020.10.10 15:30


    "덤불이 있어야(커야) 도깨비가 난다" (속담)

    "神은 동물들의 대상이 아니다." (포이어바흐)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누구도, 어느 것도, 그 존재 자체가 그것을 보는 사람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것은 없다. 바꾸어 말하면, 존재하는 것은 모두, 형체가 있는 한 단독자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게 되어 있다. 지구상에는 인간이 아니라 인류가 살고 있는 것이다. 복수성(plurality)이야말로 지상의 법칙이다." (한나 아렌트)

    "이데올로기적 주체성은 극화(adaptation au théâtrale)에 다름 아니다." (알튀세르)



    사람은 연극적이다. 그 뿌리는 사뭇 깊어, 귀신조차 사람을 흉내낸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비연극적 진정성'에 이르지 못한다. 그런 진정성이 있다면 그것은 콘라드(J.conrad)가 말한 바 '치명적 심연'의 대가일 뿐이다. 내가 '최고의 삶은 연극적'이라고 했을 때, 물론 그 상상의 배경에는 이른바 '연극적 실천'이 도달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언제나 그렇다. 삶은 최상의 연극에서 완결되며, 그 완결 또한 또 하나의 불이(不二)인 것이다.



    *
    메모해두었던 선생님 글입니다.




  1. <91회 별강>집중에 들어서다-낭독하는 삶

    Date2020.12.11 By효신 Views270
    Read More
  2. 踏筆不二(26) 林末茶烟起

    Date2020.12.10 By지린 Views224
    Read More
  3. 吾問(6) - 노력의 온도

    Date2020.12.09 By敬以(경이) Views254
    Read More
  4. <90회 속속 별강> 말(言)을 배운다

    Date2020.11.27 By侑奏 Views312
    Read More
  5. 踏筆不二(25) 謫下人間

    Date2020.11.27 By지린 Views196
    Read More
  6. With

    Date2020.11.20 By희명자 Views248
    Read More
  7. <89회 속속 별강> ‘約已, 장숙(藏孰) 가다’

    Date2020.11.12 By약이 Views420
    Read More
  8. 踏筆不二(24) 다시, 달

    Date2020.11.09 By지린 Views214
    Read More
  9. 踏筆不二(23)-깨진 기왓장과 넝마

    Date2020.11.03 By지린 Views536
    Read More
  10. 茶房淡素 (차방담소)-5-달의 집으로 가다

    Date2020.11.01 By효신 Views230
    Read More
  11.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개입

    Date2020.10.30 By현소자 Views210
    Read More
  12. 踏筆不二(22) 빛

    Date2020.10.27 By지린 Views260
    Read More
  13. 茶房淡素 (차방담소)-4

    Date2020.10.18 By효신 Views209
    Read More
  14. 말로 얻은 길. '몸이 좋은 사람'

    Date2020.10.16 By올리브 Views266
    Read More
  15. 매실청 개시 기념,

    Date2020.10.14 By희명자 Views216
    Read More
  16. 吾問(5) 기억의 무게

    Date2020.10.12 By敬以(경이) Views279
    Read More
  17. 踏筆不二(21) 自將巾袂映溪行

    Date2020.10.12 By지린 Views236
    Read More
  18. 行知 연재 종료,

    Date2020.10.09 By희명자 Views190
    Read More
  19. 茶房淡素 (차방담소)-3

    Date2020.10.04 By효신 Views203
    Read More
  20. 行知(13) 말로 짓는 집

    Date2020.10.03 By희명자 Views24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6 Nex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