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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9 10:57

吾問(6) - 노력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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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어려운 길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고 곧바로 지름길만을 경유하려 합니다. (...) 대체로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은 비록 천지를 놀라게 할, 만고에 처음 나온 학설이라 할지라도 모두 평범하게 간주하고 저절로 이루어진 것으로 치부해버려 깊이 있게 몸에 와 닿는 것이 없습니다. (...) 이에 다른 학파의 주장을 만나면 너무 수월히 자신의 주장을 버리고 스승이 전수해주는 것도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심한 경우에는 진부한 말이라고 헐뜯기까지 하니 어찌 답답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1)

 

시대가 흐를수록 손가락만 움직여도 집 앞으로 물건이 도달하는, 노동이 혹은 노력이 갈수록 줄어드는 편리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마당을 쓸던 빗자루는 선 달린 청소기가 되었고, 선달린 청소기는 선도 사라지는 청소기가 되었다. 응당 생각하듯이 선이 사라진 청소기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결코 청소의 구역이 늘어나거나, 청소의 시간이 줄어든 만큼의 에너지가 잘 배치되었는가는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희소의 가치'는 말 그대로, 희소하기 때문에 생기는 가치이다. 이치가 그렇듯, 청소기가 없던 정약용 선생의 시대에도 보였던 '노력하지 않고 얻은 공부의 길'에 관한 지적은 새삼 가져와 담아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시대의 탓, 환경의 탓, 주변의 탓을 하며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숨어 한계를 그어 버리고는, 스스로가 그렇게 '방어적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폐족이 되어 해야 하는 일들을 살펴 개입을 시도했던 정약용 선생의 정신은, 그가 남긴 여러 흔적 안에서, 그 정신의 강함을 엿볼 수 있다. 인물 공부를 하고 있는 요즘 그 목표에 관한 질문을 한 적이있고, 그 후 그들의 삶을 알고 싶지 않은 이유, 그들의 노력을 '알아버린 순간' 해야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무의식적 거부, 무지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싶은 미숙함, 성숙함과 강함을 욕망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려는 이기심, 지름길만을 찾으려는 눈가림, 여러 가지의 이유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나약함은 나약함을 강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굳어버린 살은 스스로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어 주기도 하며 그 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의 강함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비추어보고 싶은 부분은 나약함을 다루는 스스로의 시선 혹은 말들이다.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리는 말들로 새겨진 자리에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을 가져와 비춰본다.

 

나는 귀족이란 용어를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현존상태에서 의무와 요청의 세계로 뛰어드는 용감한 삶과 동의어로 사용한다. 고귀한 삶은 통속적이거나 소극적인 삶과 대조를 이룬다. 소극적인 삶은 외부의 힘이 탈출을 강제하지 않는 한 정지상태로 자기 자신을 격리시킨채 언제까지나 그 속에 안주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식의 사람을 대중이라고 부른다. 무리가 많기 때문에 대중이 아니라 소극적이기 때문에 대중이다. (....) 이들(귀족)에게 산다는 것이 영원한 긴장의 연속이며 끊임없는 훈련이다. 훈련은 고행이다.2)

(귀족이란 용어의 일치를 위한 작업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여기선 세습귀족이 아닌 노력에 빛을 비추고 있다)

 

쉽게 얻었기 때문에 쉽게 버리는것은 청소기가 내어준 '시간의 과잉' 뿐 아니라 인생에 묵직한 신념까지도  그 뿌리를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커다란 맥락의 지점에서 날지 않으려는 시도의 지점(k선생님) 은  이런 측면에서 오래담아 둘  말들이다. 주장, 신념, 이데올로기를 쉽게 버리면서 유연함이라는 말속에 더 이상 숨지 않아야 할 지점도 있어 보인다. 노동과 노력으로 생겨버린’  주장과 신념 속 이데올로기와 싸우며 문을 여는 것과, 언제나 열려있는 문은 필시 그 안의 온도가 다를 것이다.

    

1) 정약용 <유배지에서 온 편지>, 박석무편역, 창비, 2019, 233

2)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황보영조 옮김, 역사비평사, 2015,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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