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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냉면, 최초의 순대, 최초의 짜장면, 최초의 바지락국이 있다. 수십 번을 먹었을 음식이지만 그 맛이나 음식의 자태가 이전의 그것들과 다를 때 미증유의 사태로 영원히 잊히지 않을 감각을 영원 속에 새겨넣는다. 예를 들자면 짜장면. 푸세식 화장실에서 신문지를 비벼 뒤를 닦던 열 살 소녀가 뽐낼 수 있는 란 고작해야 꼬삐신(꽃무늬 고무신) 한 켤레 정도였는데 그런 소녀에게 큰오라비가 오일 장이 서는 날  장터에서 먹고 왔다는 짜장면은 먹기도 전에 벌써 최초의 짜장면으로 뇌리에 박혀 버렸다. 그리고 2년 뒤 소녀는 도시로 이사와 당시 한 그릇에 500원 하던 짜장면과 조우할 수 있었는데 상상 속의 자태와는 다른 모습에 어리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의 머릿속에 박혀 있던, 둘이 먹다 셋이 죽어 넘어가도 모른다던 그 짜장면의 모양은 넓적하게 부쳐진 부침개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녀에게 짜장면의 이미지는 언제나 상상과 실재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내게 최초의 짜장면은 상상 속의 이미지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나는 상상 속의 짜장면을 더 사랑하고 있다. 내가 짜장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상상과 달랐던 짜장면의 배신이 안긴 상처때문일테다. 말이 느자구없이 길어져버렸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최초’, 순수에 대한 환상이다.

 

장숙에서 키운 호박을 가지고 몇 가지 디저트를 만들어 보았었다. 호박식혜와 호박죽, 호박스프가 그것인데 호박으로 디저트를 만들며 반드시 거쳐야 했던 작업은 호박을 갈아야한다는 것이었다. 맛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만들어 팔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죽이란 음식이 불러오는 치유라는 메시지에 감화가 되어 한동안 죽과 스프를 생업으로 연결해볼까 하는 공상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호박을 실컷 갈아보며 나는 또 이것을 생업화한다는 것에 만만찮은 저항이 있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간다는 행위 때문이다. 이것은 호박죽을 넘어 호박 스프를 만들면서 더 확연해졌는데 그 이유는 호박스프라는 것이 무한한 분열을 거쳐야만 순수에 도달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호박스프는  분열의 결과물인 것이다. 악에 대한 보편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 보편적인 악은 쉽게 처단될 수 있는 것이기에  교묘한 방식, 호박이 호박스프가 되는 과정을 통해 개별적인 악은 그 성질을 감추며 활동한다. 어쩌면 호박은 호박스프가 된 순간 호박이었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호박이나 호박스프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호박의 환골탈태에 숨겨진 비의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비약이 지나치다. 그러나 호박죽보다 더욱 교묘한 호박스프의 자태를 보며 조금더 묻는다면 악은 모두다수를 향하여 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피해자만이 느낄 수 있는 내밀한 직관’(K 선생님, 동무론,개입, 혹은 동식물과의 신생p547)의 레이더로만 포착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수많은 인드라망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 난입闌入하는 상처를 막을 수는 없다. 그 난장판 속에 존재하는 한 나 또한 누구에게 침입하는 존재이므로.

 

애꿎은 호박죽과 호박스프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전개하게 되어 미안하다. 사실 호박죽과 호박스프는 죄가 없고,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죄가 없다. 단지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불안과 소란을 다스리고, 비틀어진 내게 고요를 주었던가, 왜 그것이 아픈 병자들의 치유식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호박죽이나 스프가 치유식이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음식이 지닌 순한 이미지와 그것을 먹으며 씹는다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열/분기를 통과하며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은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데 병의 발원지는 그곳에 있을 수 있다. 호박죽/스프는 무수한 분열로 다시 순수로 돌아가 ‘순수’란 무엇인가를 인간인 내게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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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신 2022.01.19 08:38
    *이런 글이야말로 '일상의 철학'을 확인시키는 좋은 사례군요. 그러므로 '나쁜 군사가 없고 나쁜 글자가 없듯'(박지원), 오직 나쁜 필자만 있는 셈이지요. 어떤 소재든, 생활의 소사(小事)를 '개념의 갈래'와 접속시키고, 자신만의 스타일과 상상력으로 그 함의를 한껏 펼쳐보는 것은, 일상을 자신의 임상으로 삼아야 하는 학인에게는 또 하나의 (메타)일상일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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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길 2022.01.25 08:10

    실가온이 양갱을 더는 못 만들 것 같다고 했을 때, 환경 오염에 대한 감수성이 작용했던 걸로 기억해요.
    이번 글에서도 어떤 감수성이 반응하고 포착하고 있는 비의를 읽으며, 감히 저는 어떤 詩적인 체질을 읽기도 합니다.

    무엇을 만들어 내면서 만드는 이가 스스로 희생하고 있는 자리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눈 앞에 놓인 것들이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했던 공정 과정을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말처럼 희생이나 배제의 형식이 조건화된 인간이라면, 그 인간의 자리를 사유하고 말하는 장소를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동무는 '서늘한' 관계라고 일러주셨는데,
    이 글을 읽으며 저는 실가온과 잠시 서늘했어요. 실가온이 제기한 물음이 제게도 유용합니다.

    "이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행한 그 배제는, 희생양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일이든 해내기가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말해주고 있다고 말입니다. 터무니없는 배제라는,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하면 제가 행한 이 두 가지 어리석은 짓 때문에 이 책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될 겁니다." (르네 지라르, 『문화의 기원』, 김진석 옮김, 기파랑, 2006,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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