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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得(2)_ 성장 · 성숙 · 성인

 

사람의 성숙은 대개 그가 놓인 자리, 그 틀거리에 의해 구성되며, 따라서 그 모든 공부는 (거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적 궁리를 요한다.” (집중과 영혼, 83)

 

1.

한 때, 일을 도모하고 꾸며 실행하는 재미로 일상을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벌인 일중 하나가, 세 여자가 모여, 팟캐스트를 하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오늘도 성장 중이라는 나름의 행위에 걸 맞는 소재를 가지고 일을 진척시켜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의 물음을 받았다. 그것은 왜 성숙이 아니고 성장이라고 하였는가?’라는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지금 떠올려 보면, 사뭇 경쾌하기 까지 하였는데 그 대답은 다름 아닌, ‘아직 덜 성장했기 때문에, 더 커야 해서 성장이라고 하였습니다였다. 그 때의 내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더 크기에는 이미 다 커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아 둘을 키우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왜 성숙이 아니고 성장이라고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던 당시의 나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갈 일이 있다면 1년에 한, 두 번 정도?) 식탁에 오를 찬거리를 살 때 마다 집 앞의 슈퍼나, 림 같은 생협을 주로 이용했다. 나름의 대형자본과 결탁하지 않는 방식으로 동네 슈퍼, 동네 문방구, 동네 반찬가게 혹은 농민직거래, 생협 등을 애용하며 자본주의와 소소한 신경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때이기도 했다. 한 참이 흐른 후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 와중에 받은, ‘왜 성숙이 아닌 성장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인 아직 덜 성장했습니다.’라는 말은, 이미 성장신화라는 자본의 신화가 은연중에 사고의 형식으로 스며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나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버렸다.(물론 소소한 신경전의 실효는 미미하여, 애용하던 동네 ○○은 죄 문을 닫았다.) 소비자를 유인함으로 성장신화를 일구는 자본가들의 기획에 내맡겨진 소비자들의 소비생활이 자연만큼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여 재론할 가치가 없는 일인 것과는 별개로, 이 발화는 나는 좀 다르게 살고 있다라는 감각이 여지없는 착각이었음을 고백하게 만드는 일종의 사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끝없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학벌을 올려야 하는 인적쇄신의 성장, 각종 SNS를 이용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하는 사회적 성장, 인간성의 종말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과학기술의 성장, 그리고 무엇보다, 먹고 살기의 표징인 자본의 성장이 삶의 목표가 된, 이 성장 지향적 사회 속에서, 세태와 맞물려 내 정신이 닿아있던 곳을 자백하는 꼴이 되기도 하였다. (성장의 풍속은 5년여가 흐른 지금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집밖으로 한 발 자국만 나가 보라, 당신을 성장 시켜준다며 손내미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알 게 된다.)

 

2.

친구 중에 성숙이라는 친구가 있다. 10 시절 어린 내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원숙함의 대명사인 이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하여 혼자 밥을 해먹으며 학교를 다니더니, 고등학교 때는 김장을 담그고 급기야 제사 지낼 준비를 아무렇지 않게 하여 당시의 내게는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친구였다. 이 친구는 내게 알퐁소 도데의 <><좋은 생각>을 전파한 친구이기도 했는데, 어린나이의 설익음을 뒤로하고 어른들의 일을 척척 하곤해서 인지, 아니면 이름이 성숙이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숙이라는 말에는 항시 이 친구가 함께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역시 어디에서 튀어나온지 모를 표상이지만, 풍만한 유방을 반쯤 드러낸 정숙한 여인이 모시 속고쟁이를 입고, 눈을 반쯤 치뜬채 곰방대를 물고 있는 형상, 아니면 현모양처라는 피상적 단어가 성숙이라는 말과 함께 연상되곤 하였으니, 어렸던 당시의 성숙이라는 말에 대한 내 감각의 수준을 알만하였다. 이것은 성년이 된 이후에도 더 깊은 지층을 이루지는 못하였다고 생각되는데, ‘외국어를 모르면 모국어를 알 수 없다는 괴테의 말처럼, 성숙한 어른을 만나, 성숙한 사람에게 피어오르는 숙진 내음을 맡아본 적이 없기에, 성장을 말하면서, 그것을 말하는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있었지 않았나 하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아니면, 스스로의 미성숙한 식견이,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일 수도)

 

3.

성장이 외부의 여건/기대에 맞추어, 목적/목표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외연의 확장이라면, ‘성숙은 사람의 내면을 웅숭깊게 만드는 발열의 과정이다. 끝없는 성장기에 발을 묶고, 성찰과 같은 안을 향한 시선을 은폐시켜버린다면, 필시 이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잘 기능하는 인간을 만들어내게 된다. 제 욕망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여다보지 못한 채,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욕구만으로 점철된 자아란, 자기내면과 이웃을 소외시킨 채 시스템에 얹혀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기능인이 되고야 만다. 주체가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소비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성숙을 도외시한 성장추구의 자아, 그 때, 그 때 외연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되기만을 열망하는 자아는 소비자적 변덕과 마찬가지로, 한 자리, 한 장소에서 깊어지기보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성장의 틀(거리)를 바꿔버린다. 바뀌는 틀거리는, 외부를 만난 반동으로 돌아온 자기를 향한 빛을 훼절시켜버린다. 아니, 외부를 만나기도 전에, 기민하게 틀거리를 바꾸어 자기의 온전함을 유지한다. 그래서 틀을 만남으로 알게 될 자기내면의 근원적 동기도, 증상처럼 번진 자기에고의 번뜩거림도 만날 수 없게 된다. 이 내면을 향한 탐색의 눈이 어느새 자기당위의 합리성에 먹혀버렸기에, 그 합리성 밖으로 나아가 타자와 대화 나누지 못하는 자아란, 자기 생각 속에 상상계의 집을 짓기 마련인데, 이 어린아이의 정서와 태도를 연상케하는 행보는 어느새 자기 정당화의 맥락에서 욕망이 된 제 욕구를 채우려 열중하기도 한다. 반면에 성숙을 향방의 장소로 지향하여, 성장과 성숙의 겨끔내기를 용케 버티는 자아는, ‘정한(혹은 정해진) (규칙)’을 갖고 그 안에서, 방황하고 배회하다 고꾸라지고 부딪치며 제 에고와 심리가 도섭부리는 지점을 기민하게 알아 차리게 되고, 에고가 잠시 흐터진 그 자리에서 제 욕망의 원천이 되는 심원을 만나, 눈 앞의 사태가 무엇인지 비로소 명징하게 보게 되곤 한다. 그리고 이, 자기 존재가 무엇의 덩어리였는지, 자기가 배치 된 곳이 어디인지를 체감하는 자아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타자 혹은 그 외연을 정연히 응시하는 시선을 갖게 되는데, 그 마주침에서 피어오른 관계성은 인문의 현장이자, 공부의 현장, 그리고 성숙의 현장으로 그곳을 장소화 시켜버린다. 대면하는(그것이 틀거리이든, 타자이든), 생생한 현장성을 갖음으로 발열 되어 성숙해진 마음의 상태가 내 자리와 타자의 자리를 살필 수 있는 성인(adult)으로 나아가는 길목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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