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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방을 깨고 나아가자. (힘을 빼고 생각을 넘어)

 

수 잔(邃 潺)

 

7월 초 연니자 숙장에게 별강 부탁(권유)을 받았다. 부탁(beg/beseech)은 하버마스 식으로 말하자면 '발화수단적 행위'. 화자는 청자로부터 어떤 효과를 노리며 이로써 화자의 세계 속에서 모종의 결과가 야기 되도록 유도한다.”1) 숙장에 부탁을 받고 나서 무슨 용기로 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기대감 혹은 들려오는, 또는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수락을 했던 것 같다. 부탁이라는 발화수단적 행위 속에 적시된 욕망의 대상은, 바로 그 부탁이라는 수행을 통하면서 바뀐다.”2) 는 말씀처럼 어떤 수행을 하게 되리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지나고 보니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 발화 수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일상을 돌아보며 생활을 다시금 챙기게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발화 수단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생활을 다시금 챙기게 되는 수행에 접어들었을 때, 이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던 존재의 터전은 더더욱 흔들리며 서늘한 수행을 요구했다. 근래에 들려오던 말들, 혹은 어떤 음성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무의식의 요구일 수도, 도와주는 손길(k선생님)인지 모르겠지만 그 느낌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어떤 말로 정확하게 말할 순 없겠지만 에둘러 표현하자면 의식(생각)으로는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가오고 느껴졌던 체험 아닌 체험을 통해 얻게 된 태도 혹은 작은 변화를 별강으로 말씀드리고 싶었다.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에고와 어떤 관계를 맺도록 훈련하는가 하는 데 있다. '알면서 모른 체하기'도 결국은 바로 이 관계 맺기의 새로운 실천으로서 제시 되었다고 볼 수 있다.3) ... 가장 중요한 태도는 자기 자신의 의식(에고)에 결코 힘을 넣지 않는 조심성이다.4)

 

검도를 배운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왼팔에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하고 왼쪽 앞꿈치 살갗에 물집이, 10원에서 100원으로 이어서 500원으로 커지더니 결국 찢어졌다. 관장은 "그것이 무사의 발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전해줬다. 무사라... 그 말은 검도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갖게 하는 농담(프로이드)처럼 다가왔다. 기본 동작을 반복하며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에 힘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고 호흡도 낮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무게 중심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 동작에 집중하면 스텝이 꼬이고, 다시 스텝에 집중하면 동작이 무너지는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되었다.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우고 있다. 20207월부터 등록하고 꾸준히 다녔으니 이제 2년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 초 연극도 해보고 이어서 단편영화와 상업영화, 넷플릭스 드라마 이미지 단역들도 해보면서 현장도 경험해보았다. 욕심을 부리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 들어(2달 정도) 2인 대사를 하든 자유연기로써 독백을 하든 말이 나오지 않고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계속하고 있다. 학원에서 추구하는 연기 방식이 '머리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말한다.'5)를 지향하고 있어 인물이 처한 극적인 상태를 느끼며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황하거나 놀라고 두려워서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과거와는 다르게 최근에 생긴 일들로 왜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숙에서 공부한 지 세월이 쌓여 어느덧 2년이 지나가고 있다. 20206월부터 등록하고 중간에 긴 휴학이 있었지만 세월은, 시간의 무게는 그렇게 쌓였다. 쌓인 시간에 비해 흘려보낸 개념과 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암연이장(4)을 통해 가슴 아프게 인정한다. 위에 두 경험과는 다르게 장숙에서는 글과 말을 통해 얻은 상처도 현상도 내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극히 적었다. 글과 말을 배우는 곳에서, 세속에서 얻은 두려움으로 인해 글과 말을 멀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의 밖으로 걸어 나오려는 시도는 반드시 몸을 끄--고 자아와 그 완고한 생각의 성채로부터 벗어나 타자들을 향한 개입의 형식을 취하는 일종의 비용을 요구하기 마련이지만, 진지한 비용 치르기에 몸을 사리거나 쉽게 체증을 보이는 구경꾼들은 생각의 보좌에 앉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구경을 일삼을 뿐, 자신의 생활이나 버릇을 매개로 개입하거나 개입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6)

   

이제야 숙인으로서 거울방을 깨고 나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보다 나은 정신의 집을 지으며 살 수 있을까 질문해보게 되었다. 글과 말을 배우기 위해 애쓰며 영도를 향해 낮아지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돌아본다. 낭독을 통해 욕심과 의욕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유심, 유심, 유심의 과정을 거쳐가며 몸에 익어가는 템포와 리듬들을 소중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은 소득을 밑절미 삼아 열등한 깜냥을 인정하고 부끄럽지만 뻔뻔하게, 그렇지만 용기 내고 조심하며 일매지게 거울방을 깨고 나아가고 싶다.


일찍이 러셀은 "사실 과학과 철학의 임무는 일상 언어를 가지고 출발하여 새로운 탐구 과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더욱 날카로워진 언어적 도구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면서 언어적 감성과 훈련을 강조하고7) 선생님께서는 "인문학으로서의 학문하기란 그 자체로 글 쓰면서 학문하기이며 또한 말하면서 학문하기인 것이다."8) 글쓰기에는 왕도(via regia)가 없다요령들이 생기지만이는 적지 않은 실천과 더불어 개인들에 의해 체득된다왕도를 찾아 올라가는 게 아니라 차라리 영도를 향해 낮아지는 게 요령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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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선생님, 집중과 영혼, 글항아리, 2017, 696

2) 같은 책, 699

3) 같은 책, 633쪽 

4) 같은 책, 635

5) 감각적으로 느끼면서 말을 한다.’ 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6) k선생님, 공부론, 샘터, 2010, 225

7) k선생님, 집중과 영혼, 글항아리, 2017, 762(러셀, <서양의 지혜>, 이명숙 외 옮김, 서광사, 1990, 306)

8) 같은 책, 763

9) 같은 책,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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