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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는 것과 기쁘게 하는 것은 만난다



임미애

 

 

이번 장숙행에서 ()담 혹은 한()시간에 대한 남다른 인상을 받았지만 준비된 말을 야무지게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별강을 통해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두려워하는 것과 기뻐하는 것은 어쩌면 맞닿아 있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후적 관찰 결과를 통해 이들이 만나는 지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부족한 실력이 가차 없이 드러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생존하는 것에 급급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실력을 드러내는 아픔을 각오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합니다.


  

1.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먼저 두려움에 대해 말하자면 저의 그것은 실명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시력 검사를 받게 되면서 부모님의 걱정과 실망을 온 몸에 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복합부정 난시와 중도 근시로 판정 받았고 현재는 하드렌즈와 상황별 안경을 번갈아 사용하며 손이 참 많이 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 두려움은 어떻게 작용했나.

 

당시의 안과 판정은 제 삶의 어떤 조건을 바꿔 버린 전혀 반갑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처음 안경을 쓰던 날 바닥과 벽이 그리고 그 바닥에 우뚝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크고 선명하게 달려들던 느낌이 남아있습니다. 그 느낌이 오래 생생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낯 설은 불편함이었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놀라운 선물 같은 기쁨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생활의 불편함은 당연했겠지요. 생각해 보면, 지금의 시력에 비해 그때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었건만 11살 어린이 나름대로는 살다 살다 처음 겪는 일이었겠지요. 그나마도 기술적 문제로 복합난시는 안경으로 해결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차선으로 선택한 도수 높은 안경은 일상적인 두통과 짓누르는 압박감을 당연하게 강요했고, 딱히 뾰족한 다른 수는 없었기에 꾸준하고 예민한 관리만이 최선이었습니다. 기약 없는 성실함과 까다로움을 요구하는 끝없는 번거로움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눈을 쉬어주기 위해 맨눈으로 지내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데요, 아마도 제 집이 지나치게 깨끗한 것도 동선의 확보를 위해 비워두고 물건을 제 위치에 두어야 편안한 저의 조건이 만든 증상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저를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약한 시력이 저의 모자란 부분으로 판정되어버리면서 달라져 버린 어떤 환경이나 행동반경이었습니다. 아직 어렸지만 어리다고하기엔 늙어가기 시작하던 11살은 아마도 그 때 존재적인 소외감을 처음으로 만났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반증거리를 찾는 무모한 모험이나 나만 춥고 배고픈 고비용 저효율의 짠 한 반항에도 한동안 힘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름대로는 안경 없이도 잘 살았던 11살 인생은 그 영역과 행동반경이 졸지에 졸아들어버린 것에 억울함으로 항의합니다. 저의 두려움은 어떤 상실감이었고 이것은 세상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뒤집힌 것에 대한 불안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을 테니까요.

 

제법 많은 시간을 들여 결국 나름의 영역을 수복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기까지 어른과 협상하던 아이는 어떤 생존의 기술도 익히지만, 아직은 알 필요가 없었을 어른들의 상처들도 목격하게 되면서 일찌감치 냉소로 흐르기도 합니다. 어찌 봐도 명백한 실패와 그에 비해 논란의 여지가 다분해 측은한 성공의 경험들이 집중적으로 있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럭저럭 이제 중학생이 된 소녀는 좀 더 늙어 있었고, 부모님은 더 이상 의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해나 협조의 대상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만 냉소에 먹혔던 것일까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발견은 이후로도 저의 인간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불가능할 최선보다 힘을 뺀 차선의 선택은 기대보다 큰 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두려움이 기뻐하는 것을 만나게 되는 출발점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이 발견에 감동한 나머지 멀쩡히 보이는 큰 길을 멀리 돌아가기도 했었다는 후유증과 부작용은 아직도 임상실험 중이니, 재배치하고 뚫어내야 할 숙제로 현재진행중입니다.

 

3. 두려움은 어떻게 기뻐하는 것을 만나게 되나

 

결국 하고픈 말이 될 것입니다. 두려움과 동시에 놀라운 선물은 항상 함께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선명하고 안정적인 시야는 가슴 떨리는 시원함이었고 머얼리 보이던 앞산도 비 온 뒤 맑게 게인 날의 그것처럼 볼 때마다 새삼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갑자기 배경이 싱그러워졌지만, 이것은 어떤 동화나 희망 제조는 아닙니다. 어떤 고통이나 상처로 가라앉을 때 바닥에 매몰되기 전에 의식적으로 눈을 들어 멀리 보는 것으로, 세상이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환기하는 것으로, 잊었던 숨 쉬기를 다시 이어나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렇게 이어나간 숨은 생각지 못한 선물을 주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지나친 사후적 재구성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이왕 올라탄 김에 달려 보자면, 빛의 속도를 탐하며 과속을 일삼는 병증의 용의자를 두려움을 제어하고픈 몸부림으로 지목해 봅니다. 빠르게 뭉개져 지나가는 풍경과 대비되는 정면 초점의 선명함. 그것은 인공적인 눈과 생눈의 그 양 극단과 닮았습니다. 그 양 극단을 모든 감각을 동원해 컨트롤 하는 데서 오는 그 승리감은 어쩌면 저의 소심한 복수일까요. 아니면 그 양 극단의 아름다운 조화를 기원하는 저만의 의식일까요.

두 물음 중 어떤 것이 적당한 설명인지 모릅니다. 이럴 때 저는 둘 다를 일단 가져가기로 결정하곤 합니다.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 공부하며 알아 가겠지만, 저의 시각적 결핍이 다른 감각의 증폭을 가져왔다는 생각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두려움은 기뻐하는 것과 만났고, 양 극단은 만나고, 두려운 것은 좋아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4.. 나는 어떤 무늬를 얻었는가.

 

어쩌면 안경 없이 잘 살았던 짧지만 짧지는 않은 그 기억이 살아가는 내내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안경이나 렌즈 없이 생눈으로 사물을 보고 있을 때 그럴 때 저는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나만 아는 그것은 저에게 어떤 쌈짓돈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위안 삼고 위로 삼다보니 그 정도가 과해 다치기도 많이 다쳐봤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역시 이 상처와 경험들은 또 다른 경험과 실험의 배짱이 되어 주었으니, 역시 비용 없이는 무엇도 알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한계나 두려움은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곁에 두고 그로인한 비용을 치르는 중에 예상치 못한 수확도 허락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옹이 투성이에 반듯하지 못한 제 무늬가 땔감으로 쓰이기보다는, 어느 멋진 장소로 이어주는 문지방으로라도 쓰이려면 제 공부의 '길은 멀고 날은 저무는데 눈은 어둡'습니다.

   

 

5. 고백.

 

틈만나면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저를 붙들어주시는 선생님과 선배들을 뒷배로 믿고 일단 달려는 봤습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제 공부로는 아무리 풀어 봐도 설명 해 봐도 저조차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을 쓰고 있었습니다. 고백은 반칙이지만 제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주시는 비평을 붙잡고 땅으로 내려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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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길 2022.08.22 09:58

    '낯선 불편함'을 다르게 감각하며, 개념과 타자를 만나고 더불어 희망을 조형하는 세계로 전회(turn)한 동학의 힘찬 에너지가, '좋은 느낌'으로, 도움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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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와개의시간 2022.08.22 20:40
    전회라니요. 틈만나면 되돌아 가 버리고
    제 발에 자빠지는 구멍 투성이지요.
    또 한 발 나아가자~는 선배의 넉넉한 비평으로 듣겠습니다^^ 날은 어둡고 갈 길은 멀지만
    그렇지만 이 길은 곳곳에 길동무라는 보물들을, 그 희망들을 품고 있습니다.

  1. <적은 생활...> 서평, 중앙일보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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