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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도적 애착관계를 넘어 신뢰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簞彬(단빈)




 '진심'으로 사랑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 그것에 꽤나 진심이었다. 덕분에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여럿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혼도 더러 있긴 하지만 오랜 세월 결혼이라는 제도가 유지되어온 것을 보면 이점이 더 많다는 것인데, 눈에 보이는 이점보다는 여기저기서 한숨섞인 푸념 혹은 원망이 더 많이 들릴 뿐이다. 나 역시도 그런 대열에 합류한 채  어떤 불편한 기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것은 종종 내 삶을 혼란에 빠뜨렸다. 갖은 방법을 모색하며 다른 삶을 희망해 보았지만 벽에 부딪히기는 마찬가지일 뿐이었다. 그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장숙공부를 만났고 그 공부의 초점은 언제나 남편과 나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설 수 있는가에 맞춰졌다. 


 삶의 형식을 조형하는 힘을 지닌 말, 그것을 새롭게 배우고 오해에 대한 변명을 삼가고, 지는 싸움으로 희망을 만들며 이기는 버릇들을 생활속에 구축해 가기 위해 나름대로 몸부림을 쳤다. 선발을 위한 책상에서의 '學'이 아닌  계발을 위한 일상에서의 '習'의 공부로, 대학을 넘어서는 장숙에서의 공부로, 새로운 길을 향해 걷게 된다. 어떠한 곳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 하는 것은 한 개인의 사회적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니 선생님과 동학은 실로 귀한 존재일 수 밖에 없으며 모방의 대상이 된다. 세속에서 알지 못하는 희망과 가능성을 말하고 정신의 자람을 말하는 장숙의 공부는 내 삶에 빛이고 희망이 된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짓누르고 있던 어떤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장숙에서의 배움이 생활에서 증명되면서 남편은 내가 공부하는 것에 있어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더불어 이 공부로 우리는 이전과 다른 관계맺음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엿보았다.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켜 다시 시작하겠다는 부단한 의지를 통해서만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위대한 힘을 부여받을 수 있다.*


 공부를 한다고 하여 단번에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질긴 원념은 사라진듯 하면서도 한번씩 툭툭 불거져 나와서는 나를 괴롭히니 버성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허나 지속적인 공부는 나로 하여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한다. 월별, 주별, 일별 혹은 시간 단위로 잘게  쪼개어서 언제나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삼으며 파별천리의 집심으로 조금씩 이동하도록 한다.



새로운 길을 조형해 나가기 위해 서로간의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의 긴장으로 이드거니 함께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체계와 자아 너머로의 산책에 나선 이들이 동무이며, 

슬기-근기-온기가 수렴되는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을 

모색해 나가기 위해 함께 어긋내며 어울리며 어리눅어 가는 이들이 동무이다.**


동무는 체계와의 창의적인 불화를 통해 '위험한 삶'을 일상화하고, 그 위험이 유혹하는 전염의 자장 속, 그 열린 동무의 지평 앞으로 나를 호출해서 내 삶의 양식을 그 근간에서 뒤흔들어보는 재조합, 재구성의 실험이며, 해체와 갱생의 경험이다.***


 장숙공부를 시작하기 전, 남편과 나는 비슷한 시기에 선생님의 책 <공부론>을 읽었는데 책 속에서 소개하는 '동무'라는 개념이 우리를 치고 들어왔다. '동무'가 품고 있는것이  삶이 된다면 우리는 이전에 걸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고 ,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진 폐단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살짝 뛰었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에게 동무가 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였고 막연하게 동무되기를  희망하였다.


 남편보다 앞서 공부를 하게 된 나는, 내 공부를 남편에게 자주 풀어 놓음으로써  그에게 장숙공부를 알려주는 가교 역할을 해왔는데 그것은 또 다른 소득을 가져다주었다. 들어주는 남편 앞에서 말을 풀어놓는 그 시간은 내게 있어 복습의 시간이 되었고, 생활에 공부를 안착시키기 위한 결심이나 다짐의 시간이 되어 공부를 몸에 익히는데 적잖은 도움이 되기도했다. 공부라는 것이 내게 있어 무엇인가에 대해 정리되지 못한 말이지만 자주 그 말들은 남편을 향해 나아갔고 그 결과 남편은 장독을 통해 발끝을 공부라는것에 담글 수 있게 되었다. 공부가 발끝만 적셔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뿐임을 안다. 그러함에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장숙 공부를 만나기 이전부터 남편은 학인으로서의 길을 향해 아주 미세하게 이동을 하고 있었고 선생님을 만남으로 그 이동 속도가 약간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무로 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동학으로 서기 위해 맞춰가는 과정위에 놓여 있다. 리비도로 결속된 부부에게 이 공부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 나로서도 궁금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이 공부가 나와 함께 살아갈 남편을 구제하는 공부가 되기를 희망하며 평등이 없다는 리비도적 애착관계에서 '현명한 복종과 지배'의 겨끔내기로 새 길을 얻기를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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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347쪽

**k선생님 <공부론> 205쪽

***k선생님<동무론>220쪽 

  • ?
    2022.10.14 09:09
    리비도적 관계에서 신뢰의 관계로 넘어가기 위해 부단히 삶을 조율하며,
    쉽지 않은 길, 남들이 포기한 일을 넘어서보려는 건강한 마음 근육에 박수를 보냅니다.
    많은 사람에게 빛으로 밝히는 그날까지 단빈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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