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없는) 아침 일기
수 잔(邃 潺)
140회 속속이 끝나고 차담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혼자만 가지 말고 함께 갈 수 있도록 작은 소득이 있으면 나누어요.” 제게 하신 말씀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생님의 말씀이 잊히지 않고 고이 남아 일상에서 계속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에서 얕고(淺) 엷지만(薄) 제가 나름 해오고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21년 과거, 제가 다녔던 연기학원 원장은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학원생들에게 한 가지 행동을 독려했습니다. 그것은 '모닝 페이지'1)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A4용지 3쪽 분량의 글을 쓰는 것인데요. 처음엔 저항이 있어서 참여하지 않다가 2021년 1월 30일, 한 번 시도해 보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작은 소득의 시작은 '모닝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학원 원장과 저자는 연필로 글 쓰는 것을 추천했지만 저는 제가 쓴 것들을 나중에 되찾아보기 위해서 아이패드에 있는 필기노트 어플을 켜고 시간을 정해 적바림 하였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작성하는 글에는 꿈 내용이 들어가기도 하고 어제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상태들이 내용으로 적히며 쓰레기통 역할도 했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무의식 저편에 숨어있던 상처들이, 생각들이 떠올라 그것들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넘어 2년이 되어가면서 그리고 장숙에서 배운 것들을 통해 이러한 행동들이 정신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너무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오히려 형식의 중요성을 알아가게 되면서 '모닝 페이지'는 '몸/마음 일기'로, 다시 '아침 일기'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기'는 모닝 페이지의 형식을 어느 정도는 차용하고 있습니다만 ㅡ아침에 쓴다는 것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ㅡ 이전과는 다른 형식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침일기가 지향하는 형식은 기존 일기의 형식과 비슷하면서도 하루를 연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하루를 반성하고 오늘 하루를 연극적으로 보내기 위해 시각화해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2)과 는길 선배의 조언3)을 적용해 보았습니다. 근래에는 연암 박지원의 문장4) (鷄鳴而起, 闔眼跪坐, 溫其宿誦, 潛復繹之 - 계명이기, 합안궤좌, 온기숙송, 잠복역지)을 만나면서 아침 일기의 형식은 조금 더 풍성해 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천(淺)하고 박(薄)한 자의 실천과 거기에 뒤따라오는 작은 소득에 대해 말씀드리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첫째, 아침에 일어나서 정한 예식을 치르고 가만히 책상에 앉아 눈을 감은 뒤 자판을 두드리며 어제의 자신을 돌아봅니다. 일기라는 형식대로 반성하는 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꼴을 시각화하여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족하(足下)의 토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둘째, 연암 박지원의 문장을 떠올리며 다시 어제 배운 것들을 생각해 복습하고 글로 작성해 봅니다. 아침 일기라는 형식 안에서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게 되고 깜냥껏 이해된 만큼의 말들을 적바림 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하루의 계획을 상세히 적어보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지 적음으로써 제 욕심과 마주하게 되고 그러한 욕심을 줄여 자신이 부과한 형식에 맞추어 연극적 실천에 나설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완벽히 실천되지는 않지만 운이 좋은 어느 날에는 형식의 흐름대로 생활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넷째, 글쓰기 습관을 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글과 정말 거리가 먼 사람임에도 아침 일기 덕분에 글쓰기에 저항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또한 글과 자신과의 관계에서 옳은 위치5)를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글에 힘이 들어갔는지, 방향성에 대해, 머리로 알게 된 것을 발랄하게 적고 있는지, 글이 대신 죽어주고 있는지, 뜬 글인지 혹은 어떤 감각의 물질성을 얻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이상 별것 아닌(없는) 아침 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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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손으로 3쪽씩 글을 쓰기. ‘당신만 볼 것’. 내가 ‘모닝 페이지’라고 부른 이유는 이 창조성 회복의 기본 도구는 그야말로 무슨 내용이든지 아침에 3쪽씩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모닝 페이지를 당신이 보낼 하루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동차 와이퍼라 생각한다.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청미, 정영수 옮김, 2020, p10)
2) "하루를 경건하게 시작해 봐야 한다." (K선생님)
3) "다큐멘터리 '길 위의 인생 - 봇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봇카들이 매일 옮겨야 하는 짐을 균형에 맞추어 차곡차곡 지게에 쌓듯이, 그런 의례로써 상상하게 되었답니다." (는길 선배와의 대화 중에서)
4) 鷄鳴而起, 闔眼跪坐, 溫其宿誦, 潛復繹之 - 계명이기, 합안궤좌, 온기숙송, 잠복역지 / 새벽닭이 울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감고 앉아, 어제 읽은 글을 생각하며 가만히 그 이치를 다시 궁구 해본다. 『선인들의 공부법』, 창비, 박희병 편역, 2013, 201쪽)
5) 우치다 타츠루는 ‘올곧음’의 상태를 이야기하며 그것을 신체와 언어, 그리고 글에도 적용합니다. “옳은 위치는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항상 바뀌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 맞는 위치와 각각의 상황에서 마주하는 옳은 위치는 다릅니다. 선택지가 많은 위치, 자유도가 많은 위치, 신체적으로 올곧다는 것, 다 같은 결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10.31, 강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