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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SL. 2024-02-17.

긁어 부스럼

 

사물을 가만히 만진다는 것은 하나의 덕()일 것이다. 사물이란 부득이 사람의 폭정 아래 내맡겨져 있기에 그를 잘 만진다는 것은 그와 다르게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의 물질성을 공대하는 형식이다.

 

타자를 만진다는 것은 애무(愛撫). 레비나스에 의하면 모든 것이 거기에 있는 세상 속에서 결코 거기 있지 않은 것과 놀이하는 방식”(윤리와 무한, 86)이 애무다. 애무로써 타자를 만지는 주체는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자를 가만히 만진다는 것은 일종의 삼가는 행위, 즉 신()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나를 만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령 아토피처럼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을 동반하는 피부병은 자신을 어떤 특정 형식, 즉 오직 긁는 형식으로 만지라고 명령한다. 마침내 그 명령에 복종하여 긁기 시작하면 가려움은 특이한 종류의 통증이 되고 마치 화마처럼 환부는 아래로, 옆으로 퍼진다. 모든 피부병은 긁으면 극심한 부스럼을 일으킨다. 만지면 절대로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 모든 피부병은 내가 나를 만지는 방법은 오직 나를 절대 만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셈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사물과 타자를 만지는 나의 손에 관한 하나의 무서운 진실도 드러내 준다. 어쩌면 그들을 만지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그들을 만지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 없다면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손에는 가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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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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