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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3 속속/ 유재

짧은 베트남 여행기: 그들은 화를 내지 않는다. 

  한국이 한창 봄을 맞이하는 춘삼월의 문턱, 저는 사바나 건기(乾期)를 겪고 있는 베트남 남부를 다녀왔습니다. 고작 6일 남짓 가족과 동행한 일정이었을 뿐 아니라 베트남어도 익히지 못하고 다녀온 여행이었으니 제가 여행기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여행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회의하였던 자로서 관광객이 되지는 않고자 조심하였으며 선생님께서 가끔 전해주시던 여행의 귀한 모습을 모방하려고 애썼으니, 제 모든 언사가 속속의 동아시아 지역학의 공부와 능히 어울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원래 여행을 계획한 지역은 북부(하노이, 하롱베이, 깟바)였습니다. 북부야말로 베트남이 그 기원에서부터 내내 중국과 대결하고, 이어 프랑스, (짧았지만) 일본, 그리고 미국과 싸운 진지(陣地, camp)로서의 땅이지요. 하지만 제가 ‘결국’ 가게 된 곳은 남부(호치민, 무이네, 달랏)였습니다. 그것은 우연이었지만 우연이 아니었답니다. 왜냐하면 ‘남부’는 ‘제가 오해한 베트남’에 관한 어떤 다른 진실을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중남부는 12세기까지만 해도 온전히 참파의 땅이었으며, 더 깊숙이 꺾어 내려가는 남부는 앙코르와 크메르의 땅이었습니다. 남부가 베트남의 일부가 된 것은 반명독립전쟁을 거치면서 레 왕조에서 갈라져 나온 찐씨 정권과 응우옌씨 정권의 분열 이후(17세기 후반)였습니다. 찐씨 정권이 북부의 홍강을 가졌으니 응우옌씨 정권이 메콩강 삼각주로 진출하였던 것이지요. 참파는 잠식되었고 당시 정치적 혼란기를 겪고 있던 캄보디아 왕조는 맥을 못추었으며 명이 멸망하며 망명한 장수들(양언적, 진상천, 막구)은 응우옌씨 정권으로 이래저래 흡수되었습니다. 1862년 제1차 사이공조약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식민통치 역시 코친차이나-안남-통킹의 삼분할을 바탕으로 했으니 남북의 통일현상은 실로 1940년 이후 독립과 임시정부의 수립,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조형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월이 중국문화의 남서쪽 가장자리의 형태를 보여준다면, 광남(廣南)이라 불리웠던 남부는 오히려 인도 문화의 최동쪽 전초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곳은 중국문명과 인도문명의 어떤 교집합이자 베트남의 다수 민족인 비엣족과 멸망한 나라의 잔재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민족의 어떤 교집합,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어떤 교집합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은 스스로 제국이고자 했던 베트남의 꿈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지만 실로 그가 제국이고자 했던 <현장>은 동남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짜로 간 그곳은 베트남(viet족의 나라)이면서 베트남이 아닌 곳이었습니다. 
   만약 제게 베트남 사람들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들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고 말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상한 무심함이 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도보가 주된 이동의 양식이 아니기 때문에 도로에 자전거, 오토바이, 차들이 매우 많이 다닙니다. 베트남 도로는, 처음에는 완전히 무질서해 보입니다. 오토바이와 차와 자전거가 완전히 뒤섞여서 운행하기 때문에 차선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심지어 신호도 잘 지켜지지 않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고가 몹시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질서 속에서도 <잘> 다니는데, 제가 한국에서 운전하며 종종 쓰잘데없이 감동받곤 하는 그 미학적인 질서의 멋은 전혀 없는 반면 완전히 실용적인(practical) 리듬의 맛이 있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템포로 움직이고 있으며 더 실력 있는 사람(=더 빠른 사람)이 나머지를 피해갑니다. 
  그리고 베트남 차들(vehicles)의 클락션 소리는 누그러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클락션 소리가 달라요. 아마도 클락션 소리를 도로에서의 차들 간 소통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리 크지 않는 클락션 소리가 신호-기호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클락션 소리는 보통 '화났음'을 표시하거나 '빨리 가'라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한편 베트남에서 저는 빵빵, 빵빠-빵빠바, 빵바바, 등 갖은 신호들이 분명히 어떤 규칙을 갖고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들은 사후적이지 않고 선제적(先制的)이며, ‘나 먼저 갈게’ ‘움직이지 마’ ‘너의 뒤에 내가 있어’ 따위를 의미합니다. 클락션 소리는 템포의 서로 다른 속도들을 조율하기 위한 하나의 보완물로서만 기능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는 클락션을 울리지 않습니다(솔직히 이 카오스뿐인 도로 속에서 화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하기라도 하는지도 의문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부언하자면, 빨리 가라는 의미에서도 울리지 않습니다(그냥 자기가 빨리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 규제와 언론 보도를 통해 보복 운전이 사라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도로에서 화를 내는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뻔한 현장에서는 두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삿대질 하며 싸우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다소 엄격하고 질서잡힌 도로의 모습은 사람들이 화를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베트남 도로의 무질서는, 만약 베트남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로에서 싸우고 있었다면 개선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나 충돌할 뻔한 위험 속에서도 그들은 움쩍도 하지 않고 각자의 템포대로 무심히 운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베트남의 개들은 도통 짖지 않는다는 점을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께 배운 것 중 한 가지는 '개를 통해' 그 사회의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점인데요, 한국의 개들은 사람에 호기심이 무척 많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싫어하기도 해서 짖어대는 경우도 많지요. 베트남의 개들은 제게 아무 관심이 없는 데다 꼭 베트남 사람들 표정처럼 무심하게 단단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한 번은 길을 건너는 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개는 무척이나 신중하게 통행하는 차들을 응시하며 계산을 했고, 동물적인 즉발성으로 뛰쳐나가는 대신 몇번이고 쉽게 단념하곤 했습니다. 나아가고 금새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하자 마침내 어디선가 행인이 나타났습니다! 행인은 별 말도 별 표현도 없이 개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왔습니다. 개와 행인은 곧 흩어졌는데, 그는 개를 도우면서도 아이취급하지도 동정하지도 귀여워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식당과 노점의 관계입니다. 베트남의 식당들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한결같이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식당 근처에는, 보통 식당도 좌석이 노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의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서 노점을 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가게에서 파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메뉴를 더 저렴하게 파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예 무심했는데, 만약 한국에서였다면, 벌써 가게 주인들은 동사무소에 전화를 했을 것이고, 직원들은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그들을 내쫓았을겝니다. 
  호치민 시 미술관에서 ‘가장 걸작(masterpiece)’으로 생각하는 그림 중 하나인 디엡 민 차우(Diep Minh Chau, 1919-2002)의 <베트남 전쟁 지역에서 낚시하고 있는 호 아저씨>(1951)는 몹시 대담하면서도 무심한 작품으로, 전쟁을 대하는 베트남의 내면세계를 충격적으로 인상적인 태도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림)
이 그림이 표현하는 전쟁 지역에서의 낚시는 전쟁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갖고 있는 호치민의 모습이 아닙니다. 호치민에게 전쟁 상황이란 '낚시와 같다'는 은유 자체를 대담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맥락(context) 위에 돋을새김된 낚시의 존재성과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낚시가 놓인 맥락이 매우 절묘하게 어울리며 위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전쟁에 대한 완벽히 무심한 자신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게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시기적 판단과 연관된 것이었는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세월을 낚는 것처럼) 드러내 줍니다. 실제로 베트남의 근현대 전쟁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시기를 얼마나 잘 독해하고 선용하고 포착했는지를 잘 알 수 있어요. 작품의 완성도는 배경을 전경화할 때 더욱 배가됩니다. 배경은 인상주의적 기법으로 그려져서, 바로 그 배경에 관한 인상(impression)이 우리가 이 그림을 통해 결코 직접적으로는 볼 수 없는 호치민의 표정(expression)에 관한 감상자 각자의 느낌이 되는 것입니다. 배경에 대한 인상이 곧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호치민, 그의 표정인 것이지요. 
  국보(national treasure)로 지정된 또 다른 대가 응우옌 상(Nguyễn Sáng, 1923-1988)의 작품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파티 입장>(1978)에서도 이러한 미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미국과의 전쟁 중 사이공 학생들의 투쟁과 시위를 묘사하고 있는데, (제목과 더불어) 표정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가슴 한복판을 드러내고 있는 청년의 표정 속에는 혁명의 낭만주의도, 슬픔도, 두려움도, 분노도 없습니다. 꼭 저 가슴의 평평하고 단순하고 흰 배경 자체가 표정을 대체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가슴판이 얼굴판이 되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무심한 위엄성을 드러냅니다.
(그림)
  구찌터널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베트남인들이 서구와의 싸움에서 지속적으로 건설, 보수, 증축하며 전술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땅굴’이니까요. ‘땅굴’이라는 기이한 구조물을 전술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도 놀랍지만 그 땅굴의 실제모습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정말 보잘것없는 도구와 손으로 약 250km가 건설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 거리를 이동한 통로가 요구하는 <몸의 조건>이었습니다. 저는 고작 1층의 60m를 걸었을 뿐인데, 배는 욱씬거렸고 땀은 온몸으로 아우성쳤습니다. 1층 통로를 걷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자세는 몸을 반으로 접은 자세에요. 90도 인사 자세로 무릎을 살짝 구부린 다음 어둠 속을 끊임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어둠은 습하고 끈적끈적합니다. 지금은 제거되었지만 본래는 전갈, 뱀, 쥐를 비롯한 온갖 것들이 땅 속에 있어서 검은 진 같은 것을 온몸에 바르고 있어야 한다고 했으니, 이런 것까지 따지면 도대체 이 땅굴이 <요구한 몸>이 어떤 것인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2층, 3층으로 더 깊어지면 <산소가 없다>고 해요. 그러면 숨을 어떻게 쉬는가, 유적지 중간중간 이상한 구덩이에 박힌 커다랗고 기다란 빈 대나무가 있었는데 바로 그 대나무를 통해서 바깥의 산소를 마셨다고 하더군요. 마치 고래가 가끔씩 수중으로 몸을 드러내고 지상으로부터 숨을 훔쳐가는 것처럼 그렇게, 베트남 사람들은 터널의 바다 속에서 숨을 쉬었던 것입니다. 고래의 몸으로, 그 거대한 서양 열강의 나라들의 영토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욱 거대했던 그 대지 밑의 대지, 그 장소 아래의 장소, 그 검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오래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은 저로 하여금 제가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 무심한 위엄의 내면의 내용을 짐작하게 해주는 구체적 추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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