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SL 수정본,07,06,조영남
나의 엄마
눈이 조용히 내리는 아침이면 엄마가 보고 싶다. 늦잠을 자고 거실에 나오니 엄마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따 영나마 눈와야. 이 놈이 작년에 온 놈인지, 올해 새로 온 놈인지 몰라도 눈 온다이.”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엄마가 부엌이 아닌 눈 내리는 창문을 배경으로 정지화면처럼 멈춰있는 이 장면을 나는 좋아한다. 아마도 엄마가 암 수술을 받고, 5년 후 완치 판정을 받았던 해 언저리이지 않을까 싶다.
소박한 찬과 국이 자주 올라왔던 엄마의 밥상은 빡빡한 살림을 짐작케 했다. 최 헌의 앵두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이모는 나라의 빚이 한 사람의 운명으로 돌아오던 해, 무슨 캐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를 잃고 엄마의 밥상에 앉았다. 카사블랑카의 여주인공처럼 예쁘고, 선한 눈을 가진 큰언니도 형부와의 불화를 짊어지고, 말라버린 눈으로 엄마의 국을 마주했다. 호텔 유니폼을 입은 둘째언니는 음식을 거부한 채 더욱 가늘어진 팔로 엄마의 밥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로 고개를 숙이고 밥상을 마주했을 때, 엄마는 “서울살이가 징그럽게 되야(고되다). 어서 먹어라이”를 혼잣말처럼 했다. 소리 없이 밥을 삼키던 언니들도, 이모도, 그리고 엄마도 서로를 위해 감췄던 서러움으로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밥상을 오가는 말들은 많지 않았고, 셋은 서울로 다시 돌아갔다.
마음만 앞서고 후회만 남는 날들이 쌓이고 쌓일 때면 엄마 생각이 난다. 사는 것이 퍽퍽허먼 다 내불고 목욕탕에 댕겨오면 쪼깨 살아진다고, 뜨건 보리차를 끓여 마시면 뒤집어진 속도 좀 가라앉는다고. 고여 있는 말들을 뱉지 못하고, 전화기만 붙잡고 있을 때면 엄마가 해 줬던 말들이다. 그 사소한 보살핌의 말들이 나를 살게 했다는 걸 안다. 막막했던 날들이 조금씩 환해져가는 동안 엄마의 눈가는 천천히 아득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