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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회 속속 조별토의 발제문] 이름: 전형, 혹은 새로운 성찰

1.

  <귀여운 여인>(체홉)이나 <척척 박사>(모옴)는 모두 인물의 별명, 가외의 이름, 혹은 캐리커처다. 이 명칭은 고유명사이기도 하고 보통명사이기도 한 것이 됨으로써 우리가 어떤 문학적 전이를 감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크 데리다는 고유명의 의미적 등가를 약간의 혼란으로 당장 부여하는 것이 곧 번역으로서의 전이, 혹은 전이로서의 번역이라는 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바벨탑으로부터」), 사실 문학작품의 인물이 가지는 <이름>이란 우리로 하여금 (아마도 작품의) 의미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지적 투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정신분석 치료의 위상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고유한 음가(音價)와 상징을 가진 그 이름 속으로 체홉이나 모옴이 우리에게 준 정보들과 함께 <우리 자신의 문제들>을 던져넣는다. 올렌카와 켈라다는 어디에나 있지만 바로 이 작품 속에만 있고, 이 작품 속에서 귀여운 여인이나 척척 박사가 됨으로써 세계의 전형들(stereotype)이 된다.  올렌카 혹은 올리가는 체홉의 아내의 이름이기도 하다. 모옴은 이름의 문제에 대해 좀 더 상술했다. 오직 그 이름이 가진 소리의 모습과 형태의 상징만으로도 이름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전이시킬 수 있는 일종의 교차로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이름은, 현창을 꼭 닫아서 밤 기운 따위가 전혀 스며들지 않게 하는 그런 인간을 연상케 했다.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14일 동안이나(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코하마까지 가는 길이었다) 한 방을 나눠 써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낙심천만인데다가, 상대방의 이름이 스미스나 브라운이었다면 그토록 당황하지는 않았으리라." (223)

2. 

  <귀여운 여인>은 말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여자다. 누군가 “그녀의 전부를, 마음과 이성의 모든 것을 붙들고 그녀의 사상과 생활에 방향을 찾아주고 식어가는 피를 데워 줄 하나의 애정”(170)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그녀의 존재는 텅 비게 된다. 아버지, 숙모, 프랑스어 선생을 거쳐 그녀는 쿠우킨, 부스토발로프, 스미르닌, 그리고 마침내 사샤를 사랑한다. 그녀가 거치는 네 명의 남자에 대해서도 상세히 분석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겠지만* 여기서는 다른 것에 관하여 말해보고자 한다. 귀여운 여인의 사상과 언어는, 모두 불행하거나(쿠우킨) 독실하거나(부스토발로프), (가정의) 재결합을 상징하거나(스미르닌) 무수한 미래적 가능성을 지니거나(사샤) 하는 남성들에 의하여 조형된다. 여성이란 존재는 자신을 거느리는 남성에 의하여 스스로를 정체화(identify)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문제는 더 복잡하다. 
  올렌카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는 어떤 <대화>다. 올렌카는 어떤 대화 속에서 완전히 직감적으로 자신의 <애정을 받을 가치가 있는 대상>을 결정한다. 두 번째는 그들이 모두 <건넌방의 존재> 즉 우연히 자신의 생활의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일면을 비추어주는 이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어리석을만큼 지독하게도 과장된 형식으로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을 드러낸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건넌방에서 온 타자들이 없이, 그 타자들로 만들어 낸 어떤 지형(affection) 없이, 그 타자들의 효과에 빚지지 않은 채로 자신을 조형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녀는 스스로를 “암탉”으로 지칭하면서도 이상한 여성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잉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닌 <자식>을 얻는다. 그리고 다른 모든 남자들이 그러했듯 사샤 역시도 그녀가 권리 주장을 할 수 없는 무엇, 그녀가 붙잡아 둘 수 없고 오직 자신의 곁에 있음을 감사할 수밖에 없는 무엇이다. 누군가 빼앗고자 한다면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무력함이나 불모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타자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비상한가를 보여준다. (귀여운 여인은 자신의 (형식적인) 아들까지도 애정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위장된 리비도적 욕망을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귀여운 여인은 아버지를 ‘한때 사랑하긴 했었으나’ 아버지는 그녀의 <집>으로 손쉽게 물러가 버렸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하나의 타자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무수한 타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타자의 권력인가 아니면 주체의 권력인가?)
  그녀는 너무나도 <과도하게도> 투명하게 타자에 의존하는 존재다. 이 <과도함>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어서 그것 자체가 그녀를 신경증적이거나 정신병적인 존재로 만드는 대신 도착적인 자로 만드는 것같기도 하다(그렇게 그녀는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넘어가버리는 것 같기도 한 것이다). <꿈>의 문제까지도 그녀는 타자의 일에 의하여 결정짓는다. 이때 그녀가 타자의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방식은, 타자가 그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같지 않다. 연극이나 목재업에서의 성가심이나 스트레스, 불평 따위는 <귀여운 여인>에게는 별로 큰 갈등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연극을 하듯이 행동한다. 그리고 바로 그 속에서 연극도 판자도 심지어 톱밥도 감동적인 시(詩)처럼 나타난다. 자아(에고)의 갈등 없이 오직 타자에게서 받은 것들로만 조직된 존재로 자신을 직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과도하게 타자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나서는 한없이 행복한(그리고 도대체 자신의 욕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지도 않고 그저 당면할 뿐인), 그런 종류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남성들의 눈에는 그런 존재가 한없이 <귀여운 여인>이겠지만 어쩌면 이 전형의 뒤에는 좀 더 의미심장한 무엇, 남성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여성-표상을 <과도하게 선취해버린> 이상한 형상이 어른거리고 있는지 모른다. 

3. 

  다른 의미에서, 막스 켈라다 역시도 타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어디에서도 자신을 전시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해보라-그는 절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타인이 자신을 성가셔 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치근치근하게 굴”면서 “마구 지껄”(225)인다. 그렇다, 그는 일종의 “독단가”인 것이다(227).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들볶”는, “활발하고 쾌활하고 수다스럽고 따지기를 좋아”하며, 마침내 “어떤 일이든간에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척척 박사!(227) 
  하지만 「척척 박사」는 켈라다가 더 이상 <척척 박사>가 아니게 되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선상의 테이블에서 하필이면 켈라다가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주제에 대하여 논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람제이 부인의 목걸이가 진짜 진주인가 가짜 진주인가를 두고 <내기>가 벌어진다. 켈라다는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내기에서 이길 수 없다: 람제이 부인의 <비밀> 때문이다. 바로 그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 켈라다는 내기에서 진다. “공포에 질린 그녀는 크게 부릅뜬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절망적인 애원을 호소하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켈라다 씨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말을 꿀꺽 삼켜 버렸지만,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자기를 억제하려는 모습이 거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 (231) 
  내기에서 이긴다는 것과 비밀을 지킨다는 것, 둘 중 더 깊은 쾌락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척척 박사는 내기에서는 졌지만 사실 그 내기의 이면에는 어떤 소박한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한 사람에게는 가정의 평화가(람제이 부인), 또 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억제가(켈라다), 그리고 ‘나’에게는 한 인간의 품위에 대한 재고(再考)**가 바로 그것이다. 이 소박한 진리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단편에 관해서 말하자면. 

*쿠우킨의 연극, 부스토발로프의 목재업, 스미르닌이 군의 ‘수의관’이라는 점, 사샤가 우화를 암송하며 고전교육을 받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체호프가 러시아 근대극의 효시로 평가받는다는 작품을 집필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지만(연극), 그는 의사이기도 했고, 하필 중학생(작품의 마지막에서 사샤의 나이) 때 아버지가 파산했고-그리하여 힘들게 공부를 했으며, 그 아버지는 농노였다가 잡화상을 했다는 사실도 주지할 만하다. 

**"그 순간 나는 켈라다 씨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쳐 돈지갑을 집더니 그 속에 1백 달러짜리 지폐를 정성스레 집어넣는 것이었다."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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